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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체 Apr 15. 2021

사라진

Vanished

지금껏 너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가 몇 번이고 지웠다. 너를 반추하는 건 누구에게 드러내 놓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나는 너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꺼낸 적 없다. 네가 떠난 뒤로 무려 5년이나 흐른 지금, 너는 아직도 20대 중반으로 남아있고 나는 30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1년에 한 번, 너의 빈소를 찾는다. 난 네가 잠든 그곳에 찾아가는 게 두려웠다. 그곳에 찾아갔을 때 너를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 봐. 그래서 일부러 너의 기일도 생일도 아닌 때를 골라 남몰래 너를 만나고 왔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고립되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그렇게 너를 만나고 돌아가려는데 봉안당 복도에서 벤치에 앉아계신 너의 어머니를 마주쳤다. 5년 만에 뵙는 얼굴이 전보다 수척해보였다.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하지. 안녕하실 리가 없는데. 우리나라 인사말엔 왜 안녕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걸까. 열심히 말을 고르는데 어머님께서 먼저 알은체를 해주셨다.


어머, 안녕? 그동안 잘 지냈어?


익숙한 미소와 목소리. 미소는 이전처럼 자상하셨는데도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을 드리지 않은 나를 원망하시면 어떡하지. 왜 기일에 맞춰 찾아오지 않았는지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드려야 하지. 왜 너만 잘 지내느냐고, 우리 아이는 이미 세상에 없는데 왜 너는 잘 지내느냐고 하시면 어떡하지. 사실 그렇게 잘 지내지도 못했는데.


...아니요.. 아니요, 어머님. 잘 지내진 못했어요.


어머님은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셨다. 어쩌면 한참이 아니라 다만 몇 초였을지도 모르겠다.


...잘 지내야지. 왜 잘 못 지냈어. 우리 5년 만에 본다 그렇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여는 게 왠지 너무도 죄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서.


시간 괜찮니? 같이 밥이나 먹자. 근처에 콩국수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어. 너 콩국수 좋아했잖니.


나는 감히 거절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님과 나란히 콩국수를 주문하고 앉았다. 오랜만에 뵙는 어머님은 얼굴이 수척해지신 것 말고는 예전과 다름없이 밝고 유쾌하셨다. 왜 5년이 넘도록 연락조차 하지 않았는지, 왜 그동안 기일에 맞춰 찾아오지 않았는지 같은 것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아까 한 걱정들이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그저, 왜 이렇게 말라졌냐고, 밥 좀 잘 챙겨 먹고 다니라며 걱정만 해주시는 어머님 앞에서 나는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거니. 황송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을 때,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사실은 어제 우리 애가 꿈에 나왔어. 처음에는 꿈인 줄도 모르고 그저 기쁘고 그저 반가웠는데, 문득 우리 애는 죽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꿈이라는 걸 알겠더라.


마침 주문한 콩국수가 나왔고, 어머님과 나는 국수 그릇이 테이블에 놓이는 걸 가만히 바라봤다. 어머님은 종업원이 얼마간 멀어진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래서 내가, 너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된다고, 얼른 가라고 쫓아냈어. 그렇게 꿈속에서 한참을 울다가 깼는데, 내가 울고 있는 거야. 왜 그렇게 울었을까 생각해보니까...


어머님의 가녀린 어깨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어머님 쪽을 바라보지 않은 채 애먼 국수만 뒤적였다. 어머님의 모습을 봐 버리면 나도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아서. 우리는 꽤 한참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참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어머님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주름이 가득한 손이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어머님...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내 목소리에서도 이미 젖은 소리가 났다. 내민 내 손을, 어머님은 아플 만큼 꽉 움켜쥐셨다. 손톱 끝이 하얗게 물들었다. 어머님은 참아지지 않는 눈물을 애써 눌러 담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서 그랬나 봐. 내가 너무 매정하게 쫓아낸 것 같아서. 꿈에라도 밥 한 끼 먹여서 보내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어서. 너무 후회가 되고 미안해서.


그래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려고 찾아왔다고 하셨다. 그러고 돌아 나오려는데 내가 들어가는 걸 보셨다고,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셨다. 나라도 만나서 밥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어머님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씀하셨다.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그건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이미 죽은 사람을 언제까지 끌어안고 살아갈 거냐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느냐고 주변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신경질을 냈다. 자꾸 그런 소리할 거면 연락도 하지 말라며 주변 사람들을 밀어냈다. 나에게 있어서 너를 보낸 그날 이후의 삶은 덤이었다. 너와 관련된 것이라면 어느 하나 잊어버리지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내 안에서 너를 아주 조금도 비워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너는 많이 가벼워졌을 텐데 나마저 널 갖고 있지 않으면 정말로 너는 0그램이 되어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어머님, 저는 그러고 싶지가 조금도 않아요. 저마저 잊으면...


그 순간 어머님의 눈빛을 보았다. 나는 차마 뒷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어머님보다 깊은 슬픔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거든. 누구도 슬픔의 정도를 척도화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슬픔이 더 깊고 얕은지 판단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눈에 담긴 건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이의 슬픔이었다. 그것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애끊는 슬픔일 것이다. 나는 감히 예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짙고 깊을 것이다.


우리 애를 이토록 오래, 소중히 간직해주어서 정말 마워. 하지만 이제는 보내주자. 그 애도 우리가 이렇게나 오래 슬퍼하면 편하게 쉬지 못할 거야. 다정한 아이잖니.


언젠가 둘이서 멍하니 달빛이 물결에 반짝이던 한강을 바라보다가 너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에게 나라는 존재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깊고 아픈 상처로만 남는 건 싫을 것 같아.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이 아름다운 야경을 보면서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문득 불안해졌다.


헤어지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상처는 아닐까?


나의 불안이 느껴졌는지 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너의 품은 포근하고 따뜻했지만, 그렇다고 불안이 모두 날아가 버리지는 않았다. 너는 나를 안은 채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만약에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저 좋기만 해도 부족한 시간에 왜 그런 얘기를 하는 거니. 왈칵 눈물이 터졌다. 너는 그런 나를 토닥여주면서, 나쁜 의도란 조금도 없이 그저 나의 행복을 바라서 하는 얘기라고 했다.


우리가 함께 행복한 게 최선이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너 없이 나 혼자서는 절대로 행복하지 않을 거니까 그런 소리 다시는 꺼내지 말라고 하는 나를 보면서, 너는 알겠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도 다정해서 마음이 아렸다. 왜 갑자기 이 장면이 떠오른 걸까. 어머님을 바라보았다. 이 얘기를 해주려고 일부러 어머님의 꿈에 나타났던 거니. 그날 이후로 멈춰버린 내 시계를 다시 돌려주기 위해서? 


우리 아주 조금만 가벼워져보자, 응?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어머님은 나를 보고 다정하게 웃어주셨다. 어머님의 미소에서 너의 미소가 비쳐 보였다. 그래, 이번엔 내가 졌다. 어머님을 향해서 고개를 조금 끄덕이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아마 굉장히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미소였을 거야.


어쩌면 내가 억지로 붙들고 있는 바람에 너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조금씩 너의 무게를 덜어내 볼 생각이다.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너의 부탁이었으니까. 가끔은 너를 잊어버려도 서운해하기 없기. 다음에는 너의 기일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방문해볼게. 가벼운 눈인사로 우리가 처음 만났듯,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너를 만나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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