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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체 Mar 14. 2021

그때의 나는 혼자가 되려고 발버둥 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과정 중에 한 번쯤 거쳐가는 시기가 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설레 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 것처럼 술을 마신다. 사람들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겠지만, 그건 대개 스무 살을 전후해서 대학교 신입생 때 이뤄진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나를 설레게 하던 건, 과거의 나를 알지 못하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였다.


그때의 나는 어딘가 스스로의 성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들은 이렇게 작은 부분에서 상처를 받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유난히 상처 받기 쉬웠고 바보같이 유순했다. 분명히 어딘가 장점도 있을 테지만,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 성격의 모든 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싶었는데, 그러자면 과거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편이 좋았다. 일종의 과거 세탁이겠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되면, 내 삶의 남은 시간들은 무조건 아름다운 방향으로 변화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당시의 내게는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스무 살에게는 술, 담배, 늦은 귀가의 자유는 있었지만, 인간관계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남에게 상처주기 쉬웠고 무례했으며 거칠었고, 나도 그랬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서 내가 변한 건 아니니까, 나는 이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외부 자극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를 고민해봤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걸 재현해낼 순 없었다. 결국 예전과 비슷한 관계가 반복되었고, 이제 새로운 사람은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이제 그들도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알게 됐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동기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학기 초반에는 그렇게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술을 마셔대던 애가 싸이월드도 닫고 네이트온에도 잘 접속하지 않게 되니까, 어디선가 스멀스멀 요상한 소문이 퍼졌다. 누구랑 싸웠다더라, 술 마시고 실수를 했다더라 하는 따위의 것들이었다. 그런 소문들의 속성이 으레 그렇듯,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태의 소문. 스스로 먼저 거리를 두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스무 살의 나는, 상처를 받았나 보다.

'어른이 됐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니구나. 나는 뭘 기대했던 거지.'

어차피 모든 인간관계가 이토록 피로하고, 앞으로도 피로할 거라면, 혼자가 나을 것 같았다. 혼자서는 비록 좀 외로울지언정 상처 받을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서로 전혀 다른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려고 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니까. 그러면, 타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직 혼밥, 혼술이라는 말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혼자서 영화를 예매한다든지, 학생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뒤통수가 따갑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선들을 꿋꿋이 이겨내고 나는 혼자서 영화도 잘만 보러 다니고, 밥도 잘만 먹었다. 나중에는 혼자서 뷔페도 가고 고기도 굽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러다 보니까 정말로 혼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아무리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고도로 발달된 현대 문명에서는 사람과 맞닿지 않은 채로도 어떻게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영화를 틀었다. 당시에 한창 영화에 빠져있던 내가 선택한 영화는 "비포 선라이즈"였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혼자 기차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은 없었거든. 특별한 고민도 없이 청량리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끊었다. 모두가 연초에 해돋이를 보러 떠나는 데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겠지. 완전히 낯선 곳에서 혼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혼자여도 좋을 것이다. 그걸 증명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천천히 철길을 달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창 밖을 본다.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니 시간이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네 시에 출발한 열차가 여섯 시간을 내리 달리는 동안 옆에 앉은 사람이 세 번 바뀌었고, 나는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 생각했다.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으면서, 매번 옆 사람이 바뀌는 것에 주의를 뺏기는 내가 우스웠다.

'셀린느와 제시처럼 운명적인 만남이라도 기대했니?' 

그런 일이 일어날 리도 없고, 일어난 대도 믿지 않을 거면서 빈 옆자리가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의식하고 만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결국 사람은 사람과 부딪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단 게, 미치도록 싫었다. 누군가와 부대끼지 않고도 혼자서도 잘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떠났던 여행이, 결국은 누군가를 원한다는 것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그러지 못하는 건 나의 서투른 대인관계 때문이라는 아픈 사실도 함께.




밤 10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정동진 역은 숙박 업소에서 나온 호객꾼들로 만원이었다. 어찌어찌 구한 모텔방은 보잘것없었고, 어딘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방에만 틀어박힌 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해변을 좀 걸어야겠어.'


맥주를 몇 캔 사서 방향도 모른 채 하염없이 해변을 걸었다. 5월이라고는 해도 밤 바닷바람은 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해변 아무 곳에나 주저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규칙적으로 오고 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난 혼자가 되길 바란 게 아니었어.' 

상처를 받는 것이 싫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 게 싫은 만큼 상처를 주는 것도 싫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데 대체 다들 어떻게 괜찮은 거지. 내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를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게 비참했다. 상처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했다. 아니면 정말로 어딘가에 고립되어 살아가거나.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그런 힘이 있을까. 어느 것도 선택할 자신이 없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쌓여가는 건 무기력이었고, 돼먹지 못한 자신에 대한 염오감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숨이 거칠어졌다. 파도소리도 사나워진 것 같았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까 하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잠시 신분증 검사를 해도 되겠습니까?"


놀라 돌아본 곳에는 군복을 입은 군인이 세 명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강릉 쪽으로 무장공비가 침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밤에 혼자 이쪽을 돌아다니면 간첩으로 오인받기 쉬우니 동행자가 없다면 가급적 큰길을 이용해서 이동하라고, 군인들은 일러주었다.

혼자서는 편하게 감상에 젖지도 못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서러워졌다. 모래가 잔뜩 묻은 맥주캔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숙소에서 미지근하게 식어갔다.




다음 날 아침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눈을 떴다. 도망치듯 방을 나왔다. 해변은 밝았고 듬성듬성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둘러 서울로 돌아가는 열차를 끊었다. 피곤하지 않았지만 억지로 눈을 붙였다. 혼자서는 즐거울 수 없었다. 나의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 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서울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과, 낯선 곳을 혼자 마주하는 건 전혀 다른 성질의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혼자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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