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의 과학 에세이
중력은 우리의 우주에서 가장 공평한 힘이다. 그것이 크든 작든, 무거운 것이든 가벼운 것이든 똑같이 대우를 받는…. 뉴턴의 떨어지는 사과나, 테이블 위에서 떨어지는 잔, 하늘에서 내리는 비, 심지어는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기에도 똑같이 작용한다. 항상 높은 곳에서 떨어뜨릴 때 모두에게 같은 힘으로 잡아당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부정하거나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아인슈타인에게 이것을 고민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 이론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완벽한 이론에 대해 처음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뭔가 빠진 것은 있었다. ‘도대체 그 힘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였다. 그 힘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 힘이 왜 생기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빌헬름 빈에게 보낸 편지에서 중력이 자신을 미치게 할지도 모른다고 표현할 정도로 혼란스러워 했다.
그는 태양이 지구를 잡아당기고 또 지구가 태양을 당긴다는 게 사실이라면 만약 갑자기 태양이 사라진다면 어떨까도 고민했다. 지구나 태양계의 행성은 태양의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멀리 달아나지 않고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뉴턴은 이 잡아당기는 힘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우리의 지구도 그 즉시 우주로 날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중력에 대해 고민하면서 ‘우주에는 다른 어떤 것이 작용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만약 높은 지붕 위에서 한 남자가 떨어진다면 그 남자는 자신의 몸무게를 어떻게 느낄까?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중력을 따라가며 내려가기 때문에 몸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땅에 떨어지면 지구의 당기는 힘인 중력과 떨어지는 힘이 더해져 무게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저울 위에서 위로 뛰어 올랐다가 내려오면 저울의 눈금은 더 올라가게 된다. 이 생각은 20세기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론의 출발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생각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엘리베이터였다. 만약에 엘리베이터의 줄이 끊어져 지구 중심까지 한없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아주 끔찍한 상황이 될 것이다. 실험을 할 수는 없지만 머리속으로 상상해 보자. 엘리베이터의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은 무거운 물통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없이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질 때 그 사람의 몸무게나 물통의 무게는 어떻게 될까?
앞에서 갈리레오의 실험을 기억할 것이다. 갈릴레오는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나 공기의 저항이 없다면 똑같이 떨어진다고 했다. 우리가 책과 깃털을 떨어뜨리면 동시에 떨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력은 무거운 엘리베이터와 가벼운 사람 모두 똑같은 힘으로 잡아당긴다. 그래서 그 안의 사람은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안에 떠 있을 것이다.
그럼 생각을 지구 밖 우주로 확장해보자. 우주 공간의 우주선 안에서는 어떨까? 우리가 TV에서 보면 우주인들은 우주선 안을 둥둥 떠서 날아다닌다. 우주선 안에 있는 우주인은 잡아당기는 중력이 없으니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처럼 둥둥 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선이 날기 시작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우주선 안의 사람은 우주선이 날고 있는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어떤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면 우리의 몸은 아래로 당겨지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주선이 같은 속도로 날아가면 그 안의 사람도 동일한 속도로 날기 때문에 다시 둥둥 떠있게 된다. 그래서 계속해서 중력을 느끼려면 속도를 갈수록 더 올려줘야 한다. 바로 가속도이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보고 지구의 중력이나 우주선의 가속도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좀 어려운 말로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라는 것이다. 이 원리는 그의 새로운 연구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럼 가속도가 사람이 중력을 느끼는 정도 이상으로 계속 증가하면 어떻게 될까? 우주선의 뒷부분에서 안에 있는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도 높아질 것이다. 결국 질량이 증가하는 것과 같다.
질량이 크면 중력이 세다는 것은 지구와 달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구는 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잡아당기는 중력도 그만큼 더 크다. 만약 태양에 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태양의 중력이 지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우리가 태양에 간다면 걷기는 커녕 일어설 수도 없고. 납작 업드려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세포들이 바닥에 달라붙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선의 가속도가 마침내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어떻게 될까도 생각했다.
빛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빠른 것이다. 절대 속도의 빛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을 설명할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절대 속도의 빛은 무엇을 말해줄까?
갈릴레이가 말한 ‘속도덧셈법칙’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서 있는 사람이 보는 지나가는 차의 속도는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것이다. 움직이면서 옆으로 달리는 차를 볼 때의 속도는 달라보인다. 만약 내가 서 있는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를 달리는 차를 보면 100킬로미터가 맞지만 내가 60킬로미터 속도의 차를 타고 가다 나를 추월해가는 100킬로미터의 차를 보면 그 차는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다. 만약 반대편에서 오며 나를 지나치는 차는 시속 160킬로미터로 보인다. 이렇게 지나가는 차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보인다.
빛은 어떨까? 서 있는 사람이 볼 때 이 빛은 초속 30만킬로미터로 달린다. 그런데 60킬로미터로 운전하는 사람이 볼 때 옆을 지나가는 빛도 30만 킬로미터로 달릴까? 만약 변한다면 30만킬로미터-60킬로미터=29만999…킬로미터로 느려보일까?
그렇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럼 거리는 속도×시간이기 때문에 빛의 속도가 변하지 않고 이동 거리도 그대로라면 하나가 달라져야한다. 바로 시간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만약 빛의 속도로 달까지 간다면 달까지의 거리가 변함이 없으니 결국 시간이 멈춰야한다.
이렇게 빛이 우주 공간에서 같은 속도라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시간도 천천히 흐르거나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선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어갔다. 만약 우주선이 속도를 계속 올리게 되면 우주선의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우주선의 어딜 비추게 될까?
우주선이 빛의 속도만큼이나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면 빛은 우주선 창을 통해 들어와 그 창보다 낮게 반대편 벽에 비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빛이 결국 휘어진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러한 가속도로 빛이 휜다면 앞에서 얘기한 등가원리에 따라 중력도 빛이 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중력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발상이었다. 뉴턴이 말한 중력이론처럼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행성간에 잡아당기는 작용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에서 멈추기 않고 더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로 중력과 시간, 그리고 공간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뉴턴의 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은 전혀 달랐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과연 공간과 아무 관련이 없을까를 생각했다. 그는 공간을 말하는 ‘차원’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이제 그 고민을 따라가며 시간과 공간은 과연 별개의 것인가를 찾아볼 것이다.
차원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사는 공간을 3차원이라고 한다. 3차원이 있다면 1,2차원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1차원은 무엇일까? 바로 선과 같은 세계이다. 위도 없고 옆도 없는 앞과 뒤만 있는 공간이다. 우리가 실을 하나 빨랫줄처럼 매달아 놓고 개미를 한 마리 그 위에 올려놓아 보자. 개미는 그 실 위의 공간만을 오가게 된다. 실 위의 개미로서는 그 외의 세계로 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1차원의 세계이다.
2차원은 이러한 1차원 실이 모여 만들어진 면의 공간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천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천은 실이 가로, 세로로 엮여 만들어진다. 천이나 종이처럼 평평한 공간이다. 만약 우리가 종이 위에 개미를 올려놓으면 그 개미는 평면 위를 오가기만 할 뿐 위나 아래는 생각하지 못한다. 2차원의 면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우리가 사는 3차원의 공간으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사는 공간은 왼쪽과 오른쪽, 혹은 앞과 뒤라는 평면의 공간에 위와 아래라는 수직의 공간을 더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입체와 같은 공간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공간에 시간이란 것을 더했다.
우리가 책상 위에 시계를 하나 올려 놓았다. 그런데 내일 다시 돌아와서 시계를 보았을 때, 그 시계는 어제의 그 시계일까? 엄밀히 말해 그 시계는 어제의 시계와는 다른 시계이다. 어제의 그 시계가 놓인 후 시간이 흐르면서 매 시각 새로운 시계로 존재한다. 바로 어제의 시계, 어제 밤의 시계, 오늘 아침의 시계, 지금 현재의 시계처럼 시간이 더해진 새로운 시계인 것이다.
그럼 우리가 친구와 야외로 놀러가기 위해 외출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약속 장소를 서울역 광장 앞이라고 정했다. 그리고 먼저 약속 장소에 와서 친구가 올 때까지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시간이 흐르더라도 기다리는 사람은 한 공간에 그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의 차원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보면 다르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매 초 단위로 사진을 찍으면 어떨까? 같은 배경에 같은 모양으로 있을 것이다. 단지 지나가는 사람이 달라지고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진다. 하지만 맨 처음 찍은 사진과 맨 마지막에 찍은 사진 사이에는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시간이 다르다.
그 사람은 시간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약속 장소에서 다음 시간으로 이동하고 또 그 다음 시간, 또 그 다음 시간…. 우리가 공간 속에 있어도 이렇게 시간은 항상 함께하고 있다.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면 우리는 시간의 차원을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공간이다.
뉴턴 이후 시간과 공간은 별개라고 했던 것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시공간의 세계를 계속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시공간이 휘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도 생각했다.
우리는 앞에서 우주선 이야기를 했다. 우주선이 빛의 속도로 가면 시간이 느려지고 거리가 줄어든다. 시공간이 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우주선의 가속도는 중력과 같다고 했다. 그의 결론은 시공간이 휠 경우 중력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아인슈타인에게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뉴턴이 얘기한 대로 중력은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것이 것이 아니라 물체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지는 것이고, 이 휘어진 시공간이 중력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그의 중력 이론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우주를 보는 시각이 이제 뉴턴의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누구도 풀지 못했던 문제, 즉 중력이란 것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가 명백해졌다. 바로 휘어진 시공간이었다.
우리는 연못이나 호숫가에 놀러가 물속으로 돌을 던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적당한 크기의 돌을 물에 던지면 잔잔하던 물은 돌이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잔물결이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처럼 돌멩이가 연못에 닿으면서 시공간의 잔물결이 퍼져나가는데 이것이 바로 중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물질이 없는 시공간은 원래 평평하지만 물에 떨어진 돌처럼 별이 어느 자리에 나타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거대한 별이 출현하면서 평면이던 시공간이 움푹 파이게 된다. 그리고 그 별에 가까이 다가간 물질은 시공간에 별이 만든 홈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우리의 지구도 태양이 만든 시공간 상의 홈을 따라 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 뛰어 놀던 트렘폴린을 떠올려 보자. 보통 때 트렘폴린은 평평하게 펴져 있다. 그런데 그 위에 사람이 올라 가면 움푹 패이게 된다. 그곳에서 뛰어 놀다 어느 순간 멈춰 서서 주머니 속의 구슬을 떨어뜨려 보자. 그럼 그 구슬은 트렘폴린의 움푹 패인 지점을 중심으로 돌며 점점 안쪽으로 모인다.
무거운 물체가 만드는 중력도 이러한 트렘폴린처럼 공간을 움푹 패이게 만든다. 그리고 행성들은 그 패인 홈을 따라 이동하며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다. 빛도 이러한 시공간 상의 홈을 따라가며 우주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중력이론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이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힘이 아니다. 그보다 더 복잡한 어떤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는 중력을 기하학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한 행성이 태양에 대해 인력을 가지는 이유는 두 천체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힘 때문이 아니라, 태양에 의해 시공간이 휘었기 때문이다. 즉 태양이라는 공이 주위에 홈을 만들고 지구는 그 주변을 도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제 앞에서 아인슈타인이 고민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는 태양이 지구를 잡아당기고 또 지구가 태양을 당긴다는 게 사실이라면, 만약 갑자기 태양이 사라진다면 어떨까도 고민했었다. 뉴턴은 이 잡아당기는 힘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우리의 지구도 그 즉시 우주로 날아갈 것이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답을 찾았다. 태양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우리 지구에서는 8분 29초 후에 태양이 사라진 것을 볼 수 있고 사라진 중력도 그때서야 지구에 작용을 해 우주 밖으로 튕겨지게 된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너무나 혁명적인 것이었고, 누구도 이것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그의 이론이 발표되고 얼마되지 않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1919년에 있었던 달이 해를 가리는 개기일식 때였다. 태양이라는 거대한 물체에 의해 빛이 휘어지는 것이 에딩턴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영국인 천문학자 에딩턴은 개기 일식이 바로 태양이 빛을 휘게하는 지를 알아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아프리카 프리시페 섬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관측한 결과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바로 별이 보이는 위치와 실재 위치가 달랐던 것이다. 태양에 의해 빛이 휘었던 것이다.
물체에 의해 빛이 휜다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을 에딩턴이 증명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새로운 우주를 이해하는 절대적인 자리에 우뚝 선 것이다.
그의 이론은 먼 우주에 있는 행성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만약 멀리 있는 별에서 빛이 지구로 올 때 앞에 행성이 없다면 이 빛은 직선으로 지구에 도달할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행성이 가로막고 있다면 중력이 생겨 시공간이 휘고 빛도 휘어질 것이다. 이것을 ‘중력렌즈 현상’이라고 한다. 이것이 있어 이 넓은 우주에서 빛을 내지 않아 볼 수 없는 지구 크기의 작은 행성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별들의 중력으로 휘어진 빛을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빛으로 시작된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간과 공간이 무너졌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우주를 생각하게 한다.
4차원의 우주는 우리가 어느 차원에서 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보인다.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을 가진 우주가 아니라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주에서의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흰다는 중력의 원리는 일반적으로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원리가 우리 생활에서 직접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위성항법장치인 GPS와 지구의 시간을 정확히 맞추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있어야 계산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