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3. 화를 잘 조절하는 사람 되는 법

버럭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아

by 이경희

제가 학창시절이면 벌써 거의 20년전이네요. 매일 8교시까지 하고 야간자율학습 후에 학원까지 가면 하루에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잖아요. 일부러 비교한건 아니지만 종일 앉아서 매 교시 들어오는 샘들을 가만 보니 샘들마다 인성이 딱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교권이 많이 낮아졌지만, 그때는 선생님이니까 학생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 그랬을까요. 자기 기분 나쁘면 괜히 엄한 애들 잡는 쌤들이 많이 있었어요. 오늘 그쌤한테 잘못걸리면 죽는날. 칠판 안 지운게 무슨 대단한 잘못이라고 주번부터 군기 잡는. 수업 전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는. 그때는 선생님이 꿈이 아니었는데도 ‘내가 만약 선생님이 된다면, 절대 기분 따라 학생들을 대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 이후로도 내가 아랫사람이거나 약자인 입장에서 기분이 태도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정말 별로였는데.. 지금은 반대로 내가 약자인 아이에게 그러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심리 분야 베스트셀러인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책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기분과 태도는 별개다.

좋은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충분히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8년전쯤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 휴대폰을 일괄적으로 걷었어요. 휴대폰을 제출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몰래 사용하면 압수당했죠. (지금은 인권으로 휴대폰을 강제적으로 걷는 학교는 많이 줄었을거예요.) 학생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휴대폰이다 보니 실랑이가 한번씩 벌어지곤 했어요. 제 수업시간에도 휴대폰을 몰래 사용하다가 들킨 남학생이 있었어요. 학생에게 교칙에 따라 휴대폰을 내라고 말했다가 면전에다 “x발” 이라는 욕을 들었네요. 두 눈을 부릅뜨고 저를 잡아먹을 기세더군요.


정말 기분이 나빴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그 학생때문에 내 수업시간 전체를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배움이 고픈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싫었고요. 내가 학생일 때부터 기분 따라 학생을 대하는 선생님들을 정말 싫어하기도 했고요. 학교에서 근무하며 무례한 학생들이 종종 있어서 다양한 일로 화가 날 때가 있었는데 최대한 잘 누르고 지냈어요. ‘아 나 정도면 화를 잘 참을 줄 아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육아를 해보니 그 때 그건 완전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더라고요.



아이가 말을 안들을 때 (나를 완전 빡치게 했을 때) 장소가 밖이거나, 남편이나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이성적으로 화가 참아졌어요. 반대로 나와 아이가 단둘이서만 있을 때는 잘 참아지지가 않았어요. 남들이 볼 때는 아이를 때린 적이 없는데, 둘만 있을 때는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꿀밤한대 때리게 되더라고요. 짜증도 내고 막말도 하고요. 그러고는 내가 이중인격자 인가 싶어 괴로웠어요. 그 광경을 아무도 안 봤지만 내가 다 알잖아요. 아이와 둘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는 아직 말도 잘 못해서 누구에게 말한적도 없고 그때 왜 그랬냐고 왜 때리냐고 나에게 되물은 적도 없었는데. 화를 한번 세게 내고 나면 그 잔상이 오래가면서 나를 괴롭히더라고요. 내가 이거 밖에 안되는 인간이었구나. 진짜 나 스스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많이 있었어요.


나는 그동안 화를 잘 참고 있던게 아니라 체면을 차리고 있었던 거예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화를 내면 나쁜 사람이라는 평가가 두려워서.


그리고 화는 참는게 아니라 조절하는 거였어요.




이전 글에서 ‘화가 잘 안나는 사람이 되는 법’을 썼어요. 화가 잘 안나는 것과 화를 잘 안내는 것은 다른거예요. 화가 잘 안나는 것은 몸과 마음이 여유가 있어서 화가 나는 역치 자체가 높아지는 거죠. 반면 화를 잘 안내는 것은 화가 나더라도 그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이고요.


엄마는 감정을 조절 못하고 자주 화를 내면서, 아이에게 화를 내지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아이들은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학습합니다. 툭하면 욱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마찬가지로 감정조절이 어려워지겠죠.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우잖아요. ‘아이는 나의 거울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나부터 감정 조절의 능력치를 키워야 합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지나영 교수님의 책 <본질육아>에서는 ‘자기조절력’이라고 하더라고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육아, 엄마부터 자기조절력을 키워보자고요.



1. 화가 나려고 할 때, 빨리 인지한다.


‘나 지금 화가 날 것 같아.’ ‘조금 더 있음 폭발할 수도 있어.’ 화가 올라오는 순간을 빨리 알아차리고 잠시 멈추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화가 많이 난 흥분상태를 가라 앉히는데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요. 반대로 화의 초기단계에서 진정시키는 것은 훨씬 쉽죠. 작은 불씨는 잘 잡히잖아요. 큰 불은 걷잡을 수 없어지지만요. 크게 번지기 전에 빨리 알아차리고 조치를 취하는거예요. 그 상황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면화는 금방 누그러질 수 있어요. 그리고 ‘내가 왜 화가났지?’ 생각이 들면 엄청나게 화 낼 일 따위는 아니구나 싶으면서 괜찮아져요.


15초 심호흡하면 화나는 순간의 아드레날린이 가라 앉는대요. 사실 15초까지도 필요없어요. 화났는데 누가 15초 세고 앉아있나요. 그냥 크게 숨 몇 번만 들이쉬고 뱉어보세요. 심호흡 몇 번만 해도 마음이 가라 앉을 수 있어요.


내 감정을 빨리 알아차리고 상대방에게 말을 하는 것 만으로도 효과가 있어요. 아이가 똥기저귀도 안 갈고 계속 도망을 다닌다거나, 양치하고 자야하는데 계속 물장난만 치고 있을 때. 아이에게도 정색 때리며(화내는거 아님 주의) 얘기합니다. “00아 그만해. 엄마 이제 화가 나려고해.” 그럼 아이도 엄마의 감정을 알고 어느 정도는 문제 행동을 그쳐주더라고요. 엄마가 폭발하는건 아이도 싫은가봐요.ㅋ



2. 화가 나는 경우를 미리 생각하고 대비한다.


사람이 모르고 당하면 엄청 당황스러운데, 알고 당하면 조금이라도 대처가 가능하잖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화가 나는 순간이 언제 인지 미리 생각해 보는거예요. 화가나는 순간에 이유를 캐치해서 기억하면 더 좋구요. 항상 화가나는 상황에 당하고만 있지 말고, 예상 가능한 부분은 미리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는거죠. 어짜피 일상생활은 반복의 연속이니까요. 잘 생각해보면 맨날 빡치는 포인트가 패턴처럼 몇 개 정해져 있어요. 아이는 내 맘 대로 안되니까, 내가 사전에 대비를 하는거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그리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서 적어보면 꼭 아이 때문에 화가나는 건 아니더라고요. 화풀이 대상이 아이가 될 뿐.



“나는 언제 화가 잘 날까 / 대처방법“

(이글을 읽으시는 분도 한번 써보세요!)

아이가 밥 먹을 때 흘리고 쏟고, 먹는걸로 장난칠 때

→흘리면서 먹는건 어쩔 수 없으니 최대한 사무적인 일처리라고 생각하고 무덤덤해지자. 먹는걸로 장난치기 시작하면 바로 치워버리자.


아침에 등원 늦을까봐 마음 급해질 때

→아침에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일어나자. 아침밥은 물기 없는 음식으로 치우기 간편하게.


재우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때

→빠른 육퇴 후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조급함을 버리자. 아이가 늦게까지 안자면 내가 먼저 잠들어버리고 차라리 아침 일찍 시간을 활용하자


남편이 야근이나 회식하는 날

→혼자서 둘을 재우려고 하니 더 힘들다. 특별한 날이다 생각하고 영상 펑펑 틀어주고 나도 쉬엄 쉬엄 다같이 늦게까지 놀아버리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어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매번 나의 노동을 더해주는 것들이 없어지니 훨 나아집니다. 아이들 탐색하는 거라고 놔두라는 말도 있는데, 꼭 고양이 똥이나 엄마의 비싼 화장품 말고도 탐색할거 집에 천지빼까리예요. 내가 싫은건 미리 차단하는 센스!


-아이가 고양이 화장실에 자꾸 들어가길래 펜스를 설치하고는 괜찮아졌다.

-주방 서랍장을 너무 다 열고 깨를 쏟고 참기름을 만지고 지퍼백 다 뽑고 난리라서 일부 잠금 장치를 하고 괜찮아졌다.

-나의 비싼 화장품을 쏟아버려서 화장대가 아닌 높은 곳에 올려놓고 쓴다.

-두아이가 늘 쟁탈전을 펼치니 저렴한 물건이라면 같은 것을 두 개씩 산다.



3. 습관적인 화를 줄여보자.

화를 내는 이유를 생각했을 때, 그리 화낼 일이 아닌데 자꾸 버럭했다면 습관적인건 아닌지 생각해보세요. 화내는 것도 습관이 되요. 살다보면 만나는 다양한 캐릭터 중에 늘 버럭하는 사람 있잖아요. (옛날 아부지들 중에 많죠.ㅎㅎ) 우리아이가 나를 늘 버럭하는 엄마로 생각하는건.. OMG! 생각만해도 슬프네요.

마음에 악마가 한번 자리잡으면 자꾸 튀어나오더라고요. 제가 쓴 방법은 집에 CCTV가 있고 방송 중이라고 생각하는거예요. ‘슈퍼맨이 돌아왔다’ 예능을 우리집에서 찍고 있다고요. 전국민이 보고 있는데 아이한테 욱할 때 마다 화낼 수가 없죠. 그럼 습관적으로 내던 화를 좀 줄일 수 있어요. 열 번 화내던게 세번 정도로 줄어들다가, 화라는 감정이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그 후에는 ‘화’와 ‘내’가 분리되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구요. 내 속의 악마가 점점 작아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있을 거예요. 이젠 별일 아닌 정도는 유쾌하게 넘어가져요. 예능을 찍고 있으니까요. 온갖 임기응변을 동원해서 아이를 잘 구슬리는 방법도 터득하게 됩니다. 화 조절도 되고, 힘든 상황 벗어나는 능력도 올라가고, 아이와의 관계도 좋아져요.


해소되지 못한 화가 쌓이면 결국은 폭발하는거니까요,

평소에 스트레스 관리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서 그때 그때 내 부정적 감정의 쓰레기통을 자주 비워주면 좋아요. 쓰레기통이 꽉 차 있지 않도록 관리하는거죠. 그럼 습관적인 화도 줄어듭니다. 명상이나 요가로 긴장 푸는 것도 좋고, 산책이나 달리기와 같은 운동도 좋고요. 가까운 친구와 수다를 떨 수도 있고요. “그만하길 다행이다” 하는 감사의 마음도 좋고요. “아 그때 너도 힘들었겠다.” 하는 역지사지로 아이의 마음을 자주 헤아려보면 화가 누그러지면서 기분이 좀 부드러워져요.


예전엔 참았던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어요. 필름이 끊기고 이성을 잃어야 살 것 같았죠. 고주망태가 되어 애미 애비도 못 알아보던 흑역사 시절. 이젠 안뇽. 세상에는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해소할 재밌는 방법들이 아주아주 많답니다. 저는 글쓰기와 서핑이라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우리는 아이도 남편도 있으니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해요. 약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