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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Sep 25. 2023

쉬지 않는 부부의 리스크

“나오늘 생리터졌어”

“그래~”

금요일 저녁, 방금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첫마디를 생리터짐 고백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반응이 내가 기대한 반응은 아니다. 무슨반응을 기대한건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남편은 이미 알고있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대꾸해버렸다.


“내가 말했었어?

생리터진거 분명 오늘 말한적이 없는것 같은데?“

“응. 말안했어. 내가 그래~ 라고 대답한건

그냥 당연하다는 반응이야.

우리에게 셋째가 생기지 않은게

특별한 일이 아니고 새삼스럽지 않다는 뜻.“


남편의 대답이 묘하게 거슬렸다

주말마다, 어떨땐 주중에도 관계를 하면서

공장문을 닫지도 않았으면서

피임도구를 따로 쓰는것도 아니면서

임신아니라서 다행이다가 아니라

당연하다고 저리 대충 말하는지.


칼같은 주기지만

가끔 며칠 미뤄지기라도 하면

혹시- 설마-하며 살짝 긴장되기도 한다.


오로지 남편의 조절능력 하나만 믿고 관계를 가지니

혹시나 셋째가 생기게 되더라도

놀랄것도 아니라는 마음과

삶이 진짜 힘들게 될것 같은 부담을

나만 늘 한켠에 지니고 있는것 같아

괜히 억울함과 심통이 살짝 올라온다.


생리 터진날.

배아프고 허리아프고 머리까지 아픈데도

약간은 홀가분한 이느낌.

얼~마나 내가 마음이 놓이는지

얼~마나 다행이다 싶은지

남편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리가 없다.


어쩌면 이번주말은 못하게 되었다는 아쉬움이나

와이프 컨디션이 안좋으니 알아서 조심해야겠다는

피로감 같은걸 먼저 느꼈을지도.

(쓰다보니 내가 더 아쉬운건가 싶기도 하다)

생리날 평소보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약간 더 다정하고 젠틀하게 대해주는 걸로

남편은 매달 찾아오는 위기를 눈치껏 모면한다



누군가 이글을 보면서

그렇게 임신이 부담이면

피임하거나 안하면 안되요? 할수도 있겠다.


더이상 임신은 싫지만 사랑은 하고픈 부부다.

쉬는부부가 아니라 쉬지 않는 부부다.

임신중에도, 갓난아기가 태어났을때도,

각각 애를 한명씩 데리고 자느라 각방을 쓰면서도

우리는 여태 한번도 쉰적이 없다.


연년생 키우며 둘만의 시간 갖기가 정말 어려운데

짧고 굵게 체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간의 회포가 다 풀리는걸 안다.

이어지는 육아속에서

항상 초췌하고 낭만이랄것도 없어졌지만

살부대끼면서 몸의대화를 나누고 나면

가정을 이어가는 에너지가 다시 차오른다.


쉬지 않는 부부의 리스크는 아무래도 높긴높다.

수술을 몇번 권해보았지만

남편은 아무래도 내키지가 않는가보다.

피임약을 먹거나 피임도구를 쓰지 않으며

질외사정만으로 즐기는데 이는 내 선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에따라 셋째가 생긴다면

그건 우리 부부의 조심성 없는 쾌락적 행동에 대한

벌이나 댓가가 아니라

우리 부부의 찐한 사랑에 대한 어쩔수 없는 결실로 받아들일것 같다




예전 결혼전에 점보러간 곳에서(천주교입니다만)

남편과 나의 사주 사이에는

딸하나 아들둘이 있긴 있는데

다 낳을지 말지는 둘이서 정하면 되고

내 수명이 82세라고 말했던 것이 불현듯 떠오른다.

결국 내가 애를 세명이나 낳아서 백세시대에 빨리 죽나? 싶은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전혀 셋째를 낳고 싶지는 않지만

셋째에 대한 마음은 한켠에 늘 열려있는.

이마음 아실랑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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