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상남자로 보이는 멋진 남성이 보조석에 탄 여자 친구를 바라보며 폭풍 후진을 한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추고 남성이 차에서 내린다. 차 문이 열리고 내리는 사람은 어른 양복을 입은 울상이 된 어린아이. 곧이어 나오는 광고 카피는, 상남자도 사고 앞에는 연약한 아이 마음. "엄마 나 어떡해..?"
꽤 오래전 광고인데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아무리 상남자라도 사고가 나면 아이가 되어버린다는 설정의 자동차 보험 광고였다. 코믹하게 표현한 광고였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어른으로 살다 보면 순식간에 아이가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리면 어디선가 엄마가 나타나 따뜻하게 안아주며 "괜찮아 우리 아가" 하고 등을 토닥여 줄 것 같은 그런 때.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아이처럼 주저앉아 울어버릴 수 없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는 어디쯤 있는 걸까.
[ 애어른 : 하는 짓이나 생각이 어른과 같은 아이 ]
굳이 말하자면 나의 어릴 적 모습은 아이다운 아이는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여야 했던 나는 착한 아이여야 했고 그러기 위해 말 잘 듣는 얌전한 아이가 돼야 했다. 뭘 가지고 싶다고 떼를 부리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마음으로 삼켰다.
나를 꼭 빼닮은 내 아이의 투정 부리는 모습을 볼 때 문득 내 마음속 자라지 못한 작은 아이가 고개를 내민다. 나는 저 나이 때 어떤 아이였을까. 저렇게 마음껏 투정 부리고 어린양을 했을까. 그랬다면 내 마음속 작은아이는 자라서 씩씩한 어른이 됐을까?
[ 어른이 : 하는 짓이나 생각이 어린아이 같은 어른 ]
'어른'이 되어 보니 그 단어의 무게가 참 무겁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먹고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된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찰 수록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가짜 어른'이라도 돼야 한다. 시간에 떠 밀려 어른이 되다 보면 어느 한 부분은 미처 자라지 못한 채 어른이 되기도 한다.
한 날은 약주를 드신 아빠가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를 하면서 '꺽꺽' 소리 내어 우셨다. 강해 보이기만 하던 아빠도 그럴 땐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날 아빠의 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던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린다.
'애어른'과 '어른이' 사이. 시간적 거리는 멀지만 그들은 맞닿아 있다. 불행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서, 애어른으로 자라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 강인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어떤 순간엔 모두 어린아이 같다.
어릴 땐 꾹꾹 눈물을 참던 아이였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잘 운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 버튼이 작동하지만 잘 웃고 잘 우는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강하게만 보였던 누군가의 모습 뒤에, 숨어있는 작은아이가 보일 때면 기꺼이 내 앞에서 어린아이가 될 수 있도록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싶다.
내일, 곰돌이 빵 작가님은 '디지털시계'와 '아날로그시계'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