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oment designer
Jun 29. 2021
주말 저녁, 빠른 육퇴 후 남편이 야식으로 비빔면을 준비하고 부른다. 나는 얼른 식탁에 앉아 군침을 꼴깍 삼킨 후 젓가락을 집어 들고 호로록 소리를 내며 비빔면을 빨아들인다. 비빔면을 먹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다.
"하... 참 손 많이 가는 스타일이야.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
평소에 잘 흘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에게 남편이 종종 하는 말이다. 밑을 보니 비빔면을 빨아들이면서 튀긴 양념들이 하얀 식탁 위를 장식하고 있다. 쿨하게 인정한다. 나는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니까.
"그렇지? 내가 좀 손이 많이 가긴 하지. 근데 우리 여름이(나를 쏙 빼닮은 딸)도 그럴 거 같은데 어떡하지?"
"괜찮아, 나 같은 남자 만나면 되지"
참나. 어디서부터 나오는 자신감인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태연하게 말하는 남편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부부 사이엔 종종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나니까 여보랑 사는 거지.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어봐라"
"누가 할 소리? 나도 마찬가지거든~ 나 아니면 진짜 여보랑 못 산다"
엄마도 말한다.
'엄마니까 아빠랑 살지~ 다른 사람은 못살아~'
언니도 말한다.
'너네 형부 성질 진짜.. 너는 몰라서 그래~ 나니까 사는 거야~'
우리는 왜 배우자에게 '나니까 너랑 산다'라는 말을 할까?
어쩌면 이 말은 배우자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는 말 아닐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나는 너에게 꼭 맞는 사람이야', '우리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야'라는 숨은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나를 애처럼 바라보며 저런 말을 할 때면 마음이 조금 말랑해진다. 나의 모자란 부분을 너그럽게 봐주고 챙겨 주는 한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워져서 작은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부부로 살다 보면 그들만의 언어가 생긴다. '사랑해' 나 '고마워' 같은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속에 애정이 담뿍 담겨있는 그런 말들.
"나 같은 남자 만나면 되지"라는 남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코웃음으로 대답했지만 좋아하는 노래 멜로디가 떠올랐다.
아빠,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까?
이다음에 언젠가 내가 그런 때가 되면 아빤 내게 뭐라고 얘기해 주게 될까?
안된다. 아니면 때가 됐다 생각할까?
그 사람이 어느 누가 될지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다정하고 지혜로운 그런 남잘 거야.
하지만 나는 아빠가 좋아. 그래도 꼭 만나야 된다면 아빠 같은 그런 남자 만날 테야.
아빠가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사랑에 빠졌을 때,
널 낳았을 때, 널 키울 때가 생각이 나.
우리 공주님 어서 자라서 멋있는 사랑도 하고 말이야. 그래야지. 그럴 거야. 꼭 그러렴.
아빠와 함께 왈츠를_김현철
아빠와 딸이 주고받으며 부른 이 사랑스러운 노래가 그 타이밍에 떠오른 건 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두 딸이 자라서 짝을 만난다면 남편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고 잠깐, 아주 잠깐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내일은 음감님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작가 4인이 쓰는 <남편이라는 세계>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