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아이와 네일숍에 다녀왔다. 다섯 살 꼬마가 자기도 여자라고 네일숍을 지날 때마다 '엄마 나도 저기 가서 예쁜 손톱 하고 싶어' 하고 말했던 게 생각나서 둘째와 셋째 아이는 남편에게 맡기고 딸아이와 작은 사치를 부려봤다. 딸아이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 나는 시원한 코랄 블루 색으로 발톱을 물들였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우리 발톱 봐봐라~ 이쁘지?"하고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남편이 하는 말. "와 진짜 예쁘다. 우리 딸이랑 엄마랑 이런 거 하려면 아빠가 돈 많이 벌어야겠네." 별 대단한 말도 아니었는데 조금 행복해졌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나에게 자주 다정한 말들을 해준다. 일상적인 언어도 언제나 친절하고 부드럽다. 물론 다툼이 있을 땐 툴툴거리기도 하지만 나에 비하면 대체로 모든 말들이 다정한 편이다.
"여보~ 출장 왔는데 풍경이 예뻐서 사진 찍어 보내요. 다음에 같이 와보자."
"이 노래 여보랑 같이 듣고 싶어서 플레이 리스트에 넣어놨어. 같이 들어보자."
"오늘 대리점 사장님이랑 어국수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더라. 여보 다음에 같이 먹자."
무뚝뚝한 나는 저런 다정한 말에도 "응~그래~" 정도의 무미건조한 대답을 한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이렇게 글로나마 고마운 마음을 기록할 뿐 남편에게 살가운 표현이나 따뜻한 말들을 하는 건 참 어렵다. 그래서 새해 다짐 리스트에 등장하는 단골 리스트가 하나 추가됐다.
1. 영어공부
2. 다이어트
3. 남편한테 예쁘게 말하기
이 리스트들의 공통된 특징은 항상 지켜지지 않고 어김없이 1월 1일 수첩에 다시 적힌다는 것이다. 내게는 참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나의 가정을 가지게 되면서 나는 '편안한 마음'을 알게 됐다. 남편은 언제나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웬만하면 나의 의견에 동의해 주며 건강과 관련된 잔소리 외에는 특별히 내 행동을 제약하거나 본인 의견을 나에게 관철시키려 하지 않는다. 남편이 해주는 많은 배려 들이 당연하고 쉬운 일들이 아니라는 걸 함께 살면서 더 알아간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누군가가 '결혼할 때 봐야 할 딱 한 가지'만 얘기해 달라고 하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두 개도 아니고 세 개도 아니고 꼭 한 가지만 꼽아야 한다면 '다정한 사람과 결혼하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치르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소하고 평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결혼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배우자의 '말투'가 결혼생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말이다.
결혼을 앞둔 모든 분들께 제가 드릴 조언은 단 한 가지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보면 그 끝엔 우리 모두 다 비슷합니다. 우리는 모두 늙고, 같은 얘기를 수십 번씩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과 결혼하세요.
영화 어바웃 타임 _아버지의 축사
어느 영화 대사처럼 우리는 어차피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하며 매일을 살아가고 그 매일이 쌓여 일생이 된다.
그러니 오늘은 매일 하는 같은 얘기들에 '다정함'한 방울 씩 넣어보는 건 어떨까.
내일은 음감님이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작가 4인이 쓰는 <남편이라는 세계>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