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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Nov 28. 2019

마음의 아픔을 겪고 있는 당신이 지금 당장 해야할 일

우울증 대처 매뉴얼 A to Z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슬픔에 갇히면 세상은 어둠이 돼 버린다. 아무리 헤아려봐도 현실을 벗어날 방법은 찾을 수 없고 긴 침묵만이 함께 할 뿐이다. 우울, 조울, 공황 등 아픔을 겪으면 나 자신이 아니라 질환이 인생의 중심이 된다.


끔찍한 과거를 돌아보면 신이 나를 저주한 것만 같고 앞으로도 고통은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어느날부터는 수시로 생을 마감할 생각만 떠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 불치병에 맞딱드린 것처럼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잘못한 사람은 누구인지'를 고민하다보면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절망으로 가득 채우고 만다. 그리고 그 절망은 다시 아픔의 연료가 된다. 급기야 실패한 과거는 자주 꺼내보는 낡은 바이블이 되어 계시적 예언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은 저주나 예언이 아니다. 무소불위의 절대자가 수십 억의 인구 중 당신만을 위해 준비한 가시밭길이 아니다. 당신에게 진리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특별한 고통이 아니다. 우울증은 수많은 신체 질환 중 하나일 뿐이다. 골절상이나 타박상이 뼈나 피부에 대한 압력으로 일어난 결과이듯 우울증은 우리의 뇌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것이다. 다른 병증들이 그런 것처럼 우울증과 정신질환은 역사적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겪은 일이며 사회문화적으로 그리고 병리학적으로 상당한 발전과 진전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독 정신적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골절은 깁스를 통해 뼈를 붙게 만들면 되고 타박상은 피부가 재생하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처럼 다른 신체 질환들은 상대적으로 명확한 치료 방법이 구축되어 있고 사회 일반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병원에 가는 순간 환자가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아도 치료의 메커니즘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진료-진단-치료-수술-완치 등의 과정이 자연스럽다. 환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으며 개입할 경우 오히려 치료 과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행동이 된다.


정신과에서는 진단을 받으면 그때부터 혼란이 시작된다. 원인이 무엇인지, 언제 완치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잘 맞는 약이 유독 나에게만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다른 스펙트럼의 약물이 효과가 있어 특정 약물을 통해 새로운 진단을 찾아내는 일도 발생한다. 또한 향정신성 약물의 특성상 부작용의 체감이 뚜렷한 편이다. 붕뜬 기분이 어색할 때도 있고 꼬박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자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약물은 식욕이 떨어지게 하며 구역감을 동반한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어떤 약물은 충동성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겪게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질감을 느끼고 혼란에 빠진 환자들은 여러 약물을 시도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몇 개월간 뇌와 신체는 부작용의 폭죽이 만발하는 불꽃놀이의 현장이 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이다. 그때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거대한 물음표로 다가온다. 주변의 경험자들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보지만 소용없다. 몇몇 사람들은 정신과에 다니면서도 자신의 진단명이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자신이 먹고 있는 약이 무슨 작용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본인 증상의 심각성을 내세우며 훈수를 두기도 한다. 가족들은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비난을 하거나 되려 느긋하게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매뉴얼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그런 것이 존재 하지 않는다면 문제를 발견한 사람들은 모두 지금처럼 자아와 질환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면서 혼란스러워 해야 하는 걸까? 또 나와 타인에게 자책과 원망의 불쏘시개를 들쑤시는 일을 반복해야 할까? 공적인 메뉴얼이 없다면 사적인 경험담이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대처했을 방법을 기록해 둔다면 어쩌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1. 정신과를 가야만 하는 사람?


우울하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면 정신과에 가야만 할까? 정신과를 가야 하는 사람과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신과 진료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리고 주저하고 있다면 한 가지 명확한 기준을 기억해야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치료를 권유하는 조건 중 가장 확실한 것은 당사자가 사회적, 신체적 기능을 잘 유지하고 있느냐이다.


매일 우울감에 빠지지만 학업 성적이 좋고 연인과 관계가 돈독하며 직장 생활에 무리가 없다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울증 및 정신질환의 치료는 우리 뇌의 각종 호르몬 분비를 조절해 환자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우울감과 지나친 걱정으로 정신과에 갈 경우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 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른 신체 질환과 달리 정신과 질환은 신체를 통해 진단을 하지 않는다. 자신 신체의 부정적 사인을 과장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한다면 부정확한 진단으로 이어지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신이 전처럼 잘 '기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연애에 실패하고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며 성적이 떨어진다면 그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이런 일에 어떤 방식으로 대처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당신이 과거 실패했을 당시 적절한 소통과 자기관리를 통해 항상 잘 극복해왔다면 현재의 무너진 상황은 위험 사인일 수 있다. 과거에는 몇 개월이 걸렸을지언정 몸을 일으켜 다시 시도했었지만 현재는 어떤 노력을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건 우울증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렇다고 해도 절망의 낙차는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진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더 반응하고 절망적 사건에 더 예민하다. 몇 개월 전까지 일상이 나쁘지 않게 흘러왔고 성취한 일들이 많았다고 해도 당장의 사소한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절망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전과 달리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꼽아봐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출근을 하지 못해 월차를 쓴다면 그리고 그 횟수가 많아져 자신의 일상이 위태로워 진다면 그때가 병원에 가야 할 때이다.


2. 정서적 지지 자원을 최대한 확보할 것


당신이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질환에 대해 공부하기 이전에 그리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이전에 당신 주변에 있는 인간관계를 살펴야 한다. 가족, 친구, 연인 등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이해해 줄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꼽아봐야 한다.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고 어떤 문제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최고의 면역을 갖고 있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앞서 말했듯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적절히 기능하고 있는지이다. 사회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타인과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는지로 판단할 수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단독적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로 판단한다. 만약 당신이 10명 내외의 직원이 있는 회사에서 완벽한 괴짜이며 상종하지 못할 사람으로 평가받는다고 해도 주변 10명의 사람이 당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다면 그건 당신이 충분히 잘 기능하고 있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반대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의 총량을 늘린다면 당신은 그만큼 타당한 존재이며 보통의 사람보다 더 나은 인격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3. 주변 사람을 내 고통의 인질로 삼지 않을 것


하지만 그런 사람이 애초에 정신적 문제를 겪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이 정신과를 찾아가고 질환을 진단 받았다면 아마도 그만큼 외롭고, 힘들고, 자원이 바닥나고, 비틀린 세상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주변에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잘 찾아보면 나를 일부라도 이해해주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먼저 당신이 친구라고 생각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진솔한 모습을 거부할 거라고 무턱대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나와 타인을 바꿔서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된다. 내가 만약 나의 친구라면 내가 힘들어 하는 일들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나를 싫어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최대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당신의 고통과 자학을 책임져야 하는 인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게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자녀 입장에서 좋은 부모를 원한다면 부모 역시 좋은 자녀를 원한다. 고통스러운 상황은 피하고 싶어하는 게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힘이 든다고 해서 또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도와줘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도 당신처럼 자신의 아픔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 아픔이 당신보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타인의 죽음보다도 소중하다. 그러니 자기연민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소모하게 만드려는 생각은 애초에 접어 두는 편이 좋다.


쉽지는 않다. 경계를 정하는 게 특히 어렵다. 누군가는 내 토로와 호소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비웃음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니 결국 자신의 몫이다. 요령도 필요하고 절제도 필요하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울음을 터뜨려도 좋지만 일부에게는 적정한 선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라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그러니 당신은 이 가용한 자원을 절대적으로 지킬 필요가 있다.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 차라리 더 도움이 된다. 마음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타인의 감정이나 마음을 살피지 못한다. 나의 고통이 아니라 마주한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자. 그가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인지?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문해야 한다. 최대한 노력해야 다른 사람만큼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챙겨주고 위해주는 일을 할 때 우리도 고통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 그 관계 자체에서 많은 힘을 얻게 된다. 좋은 관계를 만들어간다면 우리의 상황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아픔을 토로하기 보다 상대방과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자. 그와 함께 카페에 갈 것인지, 영화를 볼 것인지, 운동을 할 것인지.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다보면 분명 서로 배려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4. 정신과 의사는 스승이 아니다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정신과 의사가 진심 어린 상담으로 자신을 이끌어 주고 이 상황을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리라는 기대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신과 의사는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치료에 있어서 상담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의사의 역할은 당신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하고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을 처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가 결과적으로 더 좋은 상황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사는 당신의 아픔에 공감하고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가 아니다. 당신 인생에 일어난 엄청난 불행과 기구한 풍파를 아무리 드라마틱하게 전달한다고 해서 그가 감동하거나 슬퍼하거나 전적으로 공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의사가 있다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감정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온갖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하루에 수십 명씩 만나는 사람이다.


당신은 의사에게 공감이 아니라 의료적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정신과는 다른 분과보다 진단의 어려움이 있다. 언어적 진술을 통해 진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환자 역시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들은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감정적인 서술보다는 사실을 가감없이 전달할 필요가 있다. 창피와 수치 혹은 자존심 등을 이유로 겪은 일을 말하지 않을 경우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 과한 기대는 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의사를 도와야 한다. 새로운 문제를 겪고 있지만 의사가 머뭇거릴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나아진 점이나 나빠진 점이 있다면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의사가 나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


5. 신중하고 끈질기게 자신에게 맞는 약물을 찾을 것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정신과 약물은 작용 기전이 정확하지 않은 편이다. 또한 어떤 약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만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개개인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는지는 예측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우울감을 줄이기 위해 세로토닌을 늘려주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처방한다고 하자. 이때 당신의 뇌에서 세로토닌의 영향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과 다른 기분으로 당신이 보다 적극적으로 되었을 때, 당신에게만 나타나는 행동의 변화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다.


기전이 동일한 약물이 환자마다 다른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이 누군가에는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희박한 확률로 나에게만 일어나는 부작용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는 약이 나에게는 별다른 반응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적극적으로 맞는 약을 찾아야 한다. 당신이 이미 정신과에 진단을 받으러 왔다면 그리고 치료 하기로 마음 먹을 정도로 생활에 큰 불편을 느꼈다면 현재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다만 신중해야 한다. 약간의 부작용 만으로 의사가 처방한 약을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 의욕이 사라졌다고 다른 약으로 빨리 대체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문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에 섣불리 먹고 있는 약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한동안 먹던 약을 급작스럽게 중단할 경우 우리 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오히려 정신과 약물의 부작용보다 약물을 중단했을 때 우리 뇌에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정신질환은 어차피 장기전이다. 이왕 치료를 시작했다면 끈질기에 물고 늘어져야 한다. 약물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면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아야만 한다. 또한 의사가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해주지 않을 경우 해당 약물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정도는 스스로 찾아봐야 한다. 위약효과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일반적으로 플라시보 효과는 긍정적 효과만 가져온다고 생각하지만 부작용의 플라시보 효과도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 약을 통해 잠깐 부정적인 반응이 생겼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6. 심리상담 치료를 병행할 것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에서 저자 앨릭스 코브는 심리치료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뇌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정신과 약물과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약물 치료와 함께 심리상담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정신과 의사는 환자와의 상담이 아닌 약물을 통해 치료한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대상은 사실상 심리상담사가 유일하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당신의 고통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있다고 해도 그들이 당신의 모든 상처를 고려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당신의 고통과 고통의 원인, 당장의 슬픔에 대해 토로하고 싶다면 그리고 해소하고 싶다면 심리상담사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


정신과와 달리 심리치료는 당신의 신체가 아닌 사고와 인지를 통해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사소한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타인들이 자신을 나쁘게 보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면 치료적 수정을 통해 개입한다. 상담 역시 치료의 과정이기 때문에 당신의 이야기에 집중해주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당신의 생각을 섣불리 교정하려고 하고 무성의한 일반론 혹은 심리학적 지식으로 개입하려고 할 수 있다. 심리상담사는 일반적으로 우리보다 정신과 심리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지식을 통해 당신을 원하는대로 규정하고 개별적 상황을 무시한다면 과감히 다른 치료사를 찾아 나서야 한다.


독립서적으로 세상에 나와 기성 출판사를 통해 다시 출판된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전지현)라는 책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흔든다. 책의 제목대로 실제로 정신과에 대한 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구글 지도를 찾아 본다면 별점 몇개로 이루어진 말 없는 평가를 확인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분과의 용한 의원들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는 것에 비하면 정신과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정신적 문제를 수치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이다. 환자들은 자신의 정보나 병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후기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맞는 치료자나 잘 맞지 않는 치료자가 있다.


'정신과는...'에서는 우울증에 걸려 처음 병원을 갔던 작가가 자신에게 맞는 의사를 찾기까지의 과정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그가 만난 의사들 중에는 치료자의 자격이 의심되는 특이한 의사도 존재한다. 실제로 나 역시 겪은 일이다. 그러니 당신이 의사나 상담사가 불편해 치료를 중단한다면 그리고 다른 병원을 찾아 나선다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우울해서 유별나게 굴거나 병이 있는 이상한 사람이라서 분노하거나 화가 치미는 것이 아니다. 당신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잘 맞는 치료자를 찾아 나설 권리가 있다. 당연한 일이다. 치료는 서비스다. 돈을 받고 진단과 처방을 제공한다.  


7. '철학 하지 않기'와 '에세이 하지 않기'


꼭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당신의 질환은 감성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고통스러운 상황과 사고를 절망적 감성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당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고 과거를 파헤치거나 감정적 혼란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 달리 완벽한 삶의 동기가 있고 고통 없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완벽한 삶은 누구에게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고통을 알기 위해 과거의 원인을 파헤치면 필연적으로 사고의 폭주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거나 곱씹으면서 윤리와 정의에 대한 강박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다시 미워할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며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도 줄어든다. 계속해서 자신 안으로 파고들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을 높이고 다양한 삶을 긍정하는 '철학하기'가 아니라 '부정적 세계관을 고착하려고 노력하기'가 된다. 공고한 자신만의 성을 만들어 다른 삶의 방식이 틈입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의 폭주는 사유가 아니고 자신에 대한 과몰입은 철학이 아니다.


심리학 서적이나 에세이를 읽으면서 위안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 이상은 위험하다. 자신 문제의 타당함을 탐색하고 뼈를 세우고 살을 붙여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관념체계를 만드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주 독특하고 굉장히 거대한 불행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기만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통해서 끔찍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라면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당신은 그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당신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당신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고통의 특별함이 아니라 고통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자신 역시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의 이유를 찾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다. 사실상 확고하고 명확한 불행의 원인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있다해도 과거는 현재가 어떻게 과거를 불러오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유기체다. 그러니까 반은 종교적이고 반은 선민적인 불행에 대한 창조에서 벗어나자. 대신 자기 자신과 세상을 용서하고 진정으로 다양한 삶을 받아들이는 '철학하기'를 시도하자. 새로워진 시각으로 세상의 다양한 면모들을 발견하고 놀라워하고 기록할 수 있는 '에세이 하기'에 도전하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보다는 오늘 하루를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자.


8.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당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


건강하게 살아가기는 보통의 사람에게는 옵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이나 정신의 문제를 갖게 된 사람들에게는 의무가 된다. 되도록 건강하게 살려고 하는 노력이 없이는 삶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건강하게 살아야만 하니 평소에 우리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너무 큰 압박을 주는 일은 거부할 필요가 있다. 너무나 바라는 일이라고 해도 건강에 방해가 된다면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울증 등을 치료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이 당신을 불행으로 몰고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을 더 유리하게 바꿔줄 수도 있다. 경제적 필요는 몸을 움직이는 데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된다. 어떤 일이라도 경제적 활동은 도움이 된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경험치를 쌓을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얻는다. 당신이 부유했다면 정말로 집 안에서 꼼짝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그 편이 더 지옥 같은 일일 수 있다.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해야만 하는 활동들도 도움이 된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책을 읽고 어떤 이들은 영화를 본다. 또 어떤 이들은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자신을 보살피기 위한 활동은 단순히 몸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성장과 사회적 자아를 키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절대로 자신이 남들보다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도 잘 살고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핸디캡을 갖고 살아간다. 모든 우연이 최적의 조합으로 작용해 그야말로 최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어떤 고민도 없이 살아간다고 해도 아주 일부일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시야를 확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정말 평범한 편이다.


9.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몇 개월 간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침대 위에서 시체처럼 누워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얼마나 불행하건 또 어떻게 생각하건 여전히 세상은 아름답다. 세상에는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답고 좋은 점이 너무나 많이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다른 사람들보다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연구가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우울증을 겪고 있으면 부정적인 사실 역시 정확히 바라보게 된다. 더 심화되면 부정적인 상황에만 집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터널 시야'라고 하는 현상이다. 현실은 암울하게만 보이고 미래에는 나쁜 일들만 일어날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당신이 세상을 잘못 보고 잘못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건 당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의 인과관계를 좀 더 믿을 필요가 있다. 슬픔에 압도되면 이 세상은 모두 우연이 지배하고 있는 것만 같다. 혹은 우리의 미래는 불행할 것이라는 완벽한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역시 잘못된 믿음이다. 인생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때때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울에 빠져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아무리 우울해서 세상을 암흑으로 보고 있다고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이 자신의 몸에 좋은 행동을 하면 당신은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10.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이 없으면 죽거나 죽을만큼 아파할 것만 같은 가족, 연인, 친구들이 있다고 해도 실제로 당신이 없어진다면 어떻게든 살아나갈 것이다.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모든 세상이 구성된다. 당신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당신을 위한 일을 시작하도록 하자.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내자. 그리고 그 일을 매일 스스로에게 선물해줘야 한다. 소비해야 한다면 소비해야 한다. 일탈해야 한다면 일탈해야 한다. 미워하고 싶다면 미워해야 한다. 당신 외에 당신을 윤리적으로 지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즐거움 그리고 자신의 양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매일 매일을 선물로 만들 사람은 당신 뿐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즐거운 일을 찾아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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