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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앨리스 09화

변신 I

앨리스의 이상한 능력

by 유하



"넌 누구니?"


- 이상한 나라의 애벌레가, 앨리스에게.






체셔 고양이의 '머리'를 논하며, 타인에 대한 불신을 의지와 선택을 통한 믿음으로 바꾸었던 시간을 기억한다. 불신의 근원을 파고드니 타인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 태어나서 한 번도 마음 놓고 누군가를 믿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깊이 믿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라는 믿음일 테다. 여기서 '그 누구'라는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가족으로부터, 부모로부터, 친구로부터, 남자로부터, 조직으로부터 분리되어 오롯이 내 힘으로 일어날 수 있는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자 결심한 이후로 뼈저리게 느껴 왔다. 나는 보기보다, 예상보다 훨씬 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불안 속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삶에 대한 책임과 근력, 해석, 그러니까 '힘'을 조금씩 획득해 나갔다. 글은 (때로는 마법의) 지팡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혼자 일어서기에 나약하지 않다고. 따라서, 앞으로 어떠한 방면에서도, 적어도 '나약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렇게 충분히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획득한 나의 힘이 내 안의 어떤 구멍으로 계속 빠져나갔다. 처음에 그 구멍은 '사람'으로 밝혀졌다.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목표와 글과 이야기에 대한 꿈에 매진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부분을 놓치고 살았던 것이다. 더불어 차마 완치되지 못한 관계에 대한 상처와 본연의 성향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파고드니, 구멍의 정체가 더욱 자세하게는 '불신'으로 밝혀졌다. 타인에 대한 불신, 그것을 증명하는 나의 여러 행동 양식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발견하게 된 나 자신에 대한 불신. 살면서 은연중에 느꼈던 그것을 확실한 형체로 재확인하고야 말았다.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으로부터, 그런 심리적인 상태를 기초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으로부터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던 것 같다. 더 강하게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래, 내 삶에서 발생한 거의 모든 문제들이 이 사실에 기인한다. 때때로 외부적인 풍경과 사건, 타인에 대해 심히 무심한 (척하는) 태도, 그러다가도 엉뚱할 정도로 해맑은 태도, 고쳤다 생각했는데 도지는 지각병, 너무 가까이 다가오려는 사람을 실망시키는 무의식적인(이제는 의식하게 된) 행동, 뭐든 혼자 해결하려는 습관, (이제는 극복했지만 언제고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우울과 지독한 외로움 등. 원인은 다 불신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본연의 힘을 추동한 것 역시 불신에 기인한다. 거리두기를 통한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 다양성에 대한 광범위한 수용력, 상황과 상대에 따라 변모하는 유연한 성격, 때때로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인 판단, 독립과 주체성에 대한 격렬한 열망과 추구, 내면의 세계에 대한 깊숙한 몰입, 멈추지 않는 질문들과 그에 따른 꾸준한 성장 등.



이제 '변신'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 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그것이 세계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며 일으킨 '변신'이라는 신비한 힘에 대하여.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① 목이 길어진 앨리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작에서 "넌 누구니?"라는 애벌레의 물음에 앨리스는 답한다. "이제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는 분명히 내가 누구인지 알았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바뀐 것 같아요. […] 보다시피 전 지금 제가 아니거든요."(더스토리, 68-69쪽.)




디즈니 / 캐럴 : ② 흰 토끼의 집에서 몸이 커다랗게 변한 앨리스.




내가 나에 대해 확신한다면, 감히 다른 형태로, 다른 존재로 변할 수 있을까? 나에 대한 아주 강력하고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면 굳이 변해야 할 필요성도 의지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나 외의 다른 모습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모습인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내가 나로서, 현실이 현실로서 불충분하기 때문에 이상향을 만들어 변화를 꿈꾸고,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좇는다.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변화하기를 강력하게 소망한다.



미국에 거주했던 십 대에 수업 과제로 소설 두 편을 쓴 적이 있다. 그중 하나의 제목이 '나를 바꾸는 것(Changing Myself)'이었다. 세련된 제목을 짓기보다도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주제 의식을 전면에 내세울 만큼, 어린 나는 나 자신을 무척이나 바꾸고 싶었나 보다. 이후에도 드라마틱한 변화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책과 영화 속 이야기들은 꾸준히 나를 가슴 뛰게 만들었다. 불신 안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와 세계에 대해서 부단히 질문했고, 때로는 과감하게 꺾이기도 했다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결국, 불신은 나로 하여금 다른 것들을 제쳐 두고 하나의 이야기를 쓰도록, 그 이야기에 모든 열정을 쏟아 내도록 만들었다.




디즈니 ③ : 흰 토끼의 집에서 도마뱀 빌을 쳐다보는 앨리스의 거대한 눈. / 캐럴 : ③ 흰 토끼를 향한 앨리스의 커다란 손.




확실하다. 불신은 변신을 불러일으킨다. 더 나아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불신은 자아의 힘을 분해하는 것이고, 변신은 그렇게 해리된 힘을 한데로 응집하는 것이다. 분할된 것들이 뭉쳐졌으니 강력할 수밖에 없고, 괴이할 수밖에 없다. 앨리스의 목은 뱀처럼 늘어나고, 팔과 다리는 외계의 식물처럼 흰 토끼의 집 곳곳을 뚫고 나온다. 그리스 신화의 외눈박이 거인인 듯 창문 안으로는 그의 커다란 눈알이 굴러다니고, 통통한 손은 거대한 불가사리처럼 꿈틀거린다. 변화된 앨리스를 앞에 두고 이상한 나라의 동물들은 마치 앨리스가 괴기스러운 '동물'인냥 놀라 까무러친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의 변신을 부추기는 것은 먹을 것들이다. 앨리스는 '날 마셔요.(Drink me.)''날 먹어요.(Eat me.)'의 태그가 붙어 있는 주스, 비스켓, 혹은 버섯을 섭취함으로써 커졌다가 작아지는 몸의 변화를 겪는다. 개인적으로도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먹거리가 꿈에 등장하는 것을 자주 경험했다. 식욕이라는 본능적인 욕구에서 피어오른 이미지들일 것이다. 아이의 경우, 이 먹거리들이 아주 단순한 욕구를 의미하는 데서 그치기보다는 아직 세분화되지 않은 더 깊은 욕망을 내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순식간에 변하는 앨리스의 변신을 보고 있으면, 그가 현실에서 얼마나 자신의 힘을 불신하고 자신을 빠르게 성장시키고 싶었는지 유추해 보게 된다. 어른들이 부여하는 규칙과 명령 안에서 얼마나 자신의 존재가 의심스럽고 나약하게 느껴졌을까. 어른이 된 지금은 역으로 내면과 체력적인 힘 모두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한 해맑음과 열정이 월등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 아이 본연의 에너지와 현실 속 억눌린 욕망이 합쳐져 앨리스 그 이상의 앨리스가 탄생했다.



나는 왜 앨리스가 더 악랄해지길 바랄까? 왜 그가 이상하고도 악랄한 능력을 더욱 더 거침없이 발산하기를 원할까? 적어도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만큼은 더욱 비대해졌다가 아주 미세해지며, 그렇게 유연하게 움직이며 짐승들을 압도하기를 바란다. 정작 앞으로 닥칠 스스로의(나비로의) 변화에는 무지한 채, 애벌레가 던진 철학적인 질문. 넌 누구냐는 묵직하고 오만한 질문 앞에서 모르겠다고, 내가 내가 아니라는 아이의 솔직한 대답. 당돌한 불신. 브라보, 앨리스! 나는 그의 괴상한 변신 앞에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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