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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Mar 28. 2019

하늘에 매달린 다리를 건너 만나는 도시, 론다

#1      

스페인 말라가의 일출과 새벽에 취해 아직은 어두운 광장에서 서성이다가 론다에 예약해둔 호텔을 취소할 수 없어 시동을 걸었다. 나는 여행에서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거나 또는 마음에 들지 않은 곳을 만났을 때 경로와 일정을 변경하기 위해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론다의 숙소는 위치도 가격도 모두 좋아 미리 해두었는데 피카소 미술관만 살짝 보고 지나치려던 말라가의 광장에 이렇게 끌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론다의 숙소를 취소하고 말라가의 숙소를 당일 예약하기엔 출혈이 너무 컸다. 다시 올 이유를 남겨둔다는 마음으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자동차가 달리는 중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점점 거세졌다. 차창과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아주 컸다. 음악을 크게 켜고 속도는 조금 늦추었다. 비가 내려 론다로 가는 길이 오래전 다녀온 낯익은 곳처럼 느껴졌다. 구불거리는 산길은 미끄러워 속도를 더 늦출 수밖에 없었다.      

론다는 맑고 파란 하늘이었다. 전체적으로는 회색 돌로 만들어졌지만 흰 건물과 낡은 주황빛 건물의 조화로 따뜻하고 소박한 마을이었다. 누에보 다리를 건너 원형 교차로의 가장자리에 잠시 차를 세웠다. 짙고 푸른 하늘에 매달린 것 같은 누에보 다리와 그 아래 협곡은 신비롭고, 무섭고, 아름다웠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협곡은 아찔해서 나도 모르게 난간을 꼭 붙잡았다. 현기증이 일었다.

                

#2

예약한 호텔은 누에보 다리를 건너 투우장 건너편 골목 안에 있었다. 호텔의 옥상에 올라서면 투우장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투우장 안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투우 경기가 열린다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은 단정해 보였다. 빈 투우장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방으로 내려왔다. 사실 난 투우 경기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리 황소를 잔인하게 죽이는 행위가 갖는 의미를 모르겠다. 황소 한 마리와 사람 한 명이 싸운다면 그나마 용감한 인간이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스포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어찌 됐든 공정하지 않은 경기는 스포츠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방은 좁은 편이었지만 테라스를 통해 론다의 골목길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스페인어도 그냥 즐겁게 느껴졌다.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냄새만 맡아도 즐거워지는 것, 자꾸 웃음이 비실비실 배어 나오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니까. 아래층 바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왁자한 목소리를 침대에 누워 듣다가 골목 구경을 하러 방을 나섰다.


#3

아찔할 정도로 좁고 깊은 협곡을 사이에 둔 마을은 다리를 통해 이어져 있다. 협곡을 내려가면 반대편 마을로 가는 길이 있지만 인간은 불편을 지속적으로 감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곳에 다리를 놓았는데 현재의 다리는 원래 있던 다리가 무너지고 새로 지은 다리라는 뜻으로 ‘누에보-새로운’ 다리이다. 하지만 이 누에보 다리가 지어진 것은 이미 200년이 넘었다. 1751년에 시작해 42년이나 걸린 공사는 협곡 아래에서 시작해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올렸다. 힘든 공사를 마치고 완공되자 감격한 건축가는 다리의 한쪽 면에 자신의 이름과 날짜를 새기려다 추락했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아찔한 추락의 유혹도 품은 다리의 시작을 알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이곳 론다를 ‘사랑하는 연인과 머무르기에 가장 로맨틱한 도시’라고 말했던 헤밍웨이는 여름이면 론다에 와서 살았다. 절벽 가장자리에 있는 가파른 길은 헤밍웨이가 산책했던 길이다. 어쩌면 론다는 헤밍웨이 덕분에 더 유명해진 도시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론다의 어딜 가도 이곳은 헤밍웨이가 지냈던 집, 헤밍웨이가 자주 들른 카페, 헤밍웨이의 길이라는 표시는 없다. 론다는 헤밍웨이를 팔아 장사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쩌면 론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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