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종훈 Apr 01. 2020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도시, 스페인 레온

#1

사실 주식이 빵인 유럽인들에겐 신기한 일이 아니지만 유럽 캠핑장의 아침은 버터를 듬뿍 바른 빵과 고소한 커피향으로 시작된다. 늦잠을 자려 해도 텐트 안을 파고드는 냄새 때문에 도저히 일어나지 않고는 못 배겼다. 부스스 일어나 텐트 지퍼를 내리니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이 펼쳐졌다. 바게트가 가득 담긴 종이봉투를 끌어안은 아들을 자전거 뒷자리에 태운 금발의 멋진 아빠가 씨익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고 지나간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유럽에서 아침을 맞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레온 대성당이 있는 시내로 나갔다. 큰 캐리어를 끌고 여행하는 일이 불편한 순간이 오면, 낯선 외국에서의 운전 중 겪었던 사고의 경험과 복잡한 도심에서 주차장을 찾느라 고생하며 반나절을 날려 버린 일을 떠올렸다. 어떤 일도 편하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여행 속에서 자주 느낀다. 여행에서 일어나질 않길 바라는 불편한 경험을 아주 많이 한 사람의 여유라고 해야할까?


버스에서 내려 대성당 방향으로 조금 걸으니 어느새 중세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마차가 골목을 돌아나오고 창과 방패를 든 기사가 곁을 지나칠 것 같았다. 


#2

나는 시간이 가득 쌓인 골목을 참 좋아한다. 가야할 곳이 있어 빨리 걷고 싶어도 눈이 여기저기를 살펴보느라 금세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특히 유럽의 구시가지 골목길로 들어서면 다음 걸음으로 옮기는 걸 잊지 않아야 앞으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니 골목길 사랑이 유별나긴 하다. 


골목을 지나고 지나 멀리 골목 끝에 레온 대성당이 보였다. 옛 사람들도 이 길을 걷거나 약속 장소를 잡을 때 항상 성당을 기준으로 했을 것 같았다. 빛을 받은 대성당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3

레온 대성당의 내부는 웅장하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부족할 정도였다. 사방에 펼쳐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있으니 거대한 만화경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빛과 어둠이 이루고 있는 조화가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다가 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작은 홀을 들여다봤다. 카톨릭 신자도 아닌 내가 미사에 이끌린 이유는 지금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자석에 끌리듯 유리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알아 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미사였지만 엄숙하고 온화한 신부님의 얼굴과 목소리에 편안함을 느끼고 곧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내 흐느끼는 소리가 꽤 컸음에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고 신부님의 목소리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느새 앉은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카톨릭 미사의 의식이나 기도 방법 등은 몰랐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을 위해 기도하고, 평생을 아픔에서 살아가실 부모님을 위해 기도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음과 기도로 보내고 나는 들어올 때처럼 조용히 일어나 나왔다. 


성당 안에 있는 기념품점에서 레온 대성당 사진이 프린트된 엽서를 몇 장 샀다. 여행 중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샀는데 첫 엽서를 나 스스로에게 쓰고 싶었다. 광장을 내려다보니 여행자의 뒷모습이 외롭기도 하고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엽서와 펜을 꺼내 그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일상 속에서 힘들고 지칠 때, 동생이 그리워질 때,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이 보고 싶어질 때, 이 엽서를 꺼내보면 언제든 레온 대성당의 이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전 06화 여행자의 등을 토닥이는 도시의 빛깔, 포르투갈 리스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