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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Jul 04. 2019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마법의 도시, 포르투갈 포르투

#1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여행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를 배려한다고 해도 하루 종일 함께 활동하는 일은 큰 스트레스를 만들어낸다. 여행 일정 안에 ‘따로 또 같이’를 적절하게 배치하면 사람 간에 발생할 수 있는 감정 충돌을 줄일 수 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얻은 작은 노하우라고 할까?


나는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일행과 오후에 만나기로 하고 아침 일찍 숙소를 빠져나왔다. 오늘 일정은 해리포터의 모티프가 되어 더 유명해진 렐루서점과 마제스틱 카페가 전부라 느긋하게 골목길을 걷고 광장에 앉아 사람 구경이나 실컷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광장에는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활기찬 웃음이 가득해 에너지가 넘쳤다. 광장 한편에 다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옆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버지와 딸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올라(Ola)" 나는 주뼛거리며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유럽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면 항상 웃으며 인사를 한다. 부러웠다.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것은 비단 나에게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고쳐보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았다. 내가 함께 웃을 때까지 눈을 떼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이는 소녀의 웃음 앞에 내 차가운 마음이 조금은 녹는 것 같았다. 마침 고개를 든 딸의 아버지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사람들이다. 알 수 없지만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조앤롤링과 해리포터가 유명세를 보태지 않았어도 렐루서점은 너무나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실내 조명과 오래된 나무 서가와 의자, 벽면을 가득 채운 책만으로도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비밀통로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계단에는 붉은색 천을 입히고 구불구불 회전하는 것처럼 만들어진 형태는 보는 순간 모든 이의 마음을 흔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렐루서점의 역사를 담은 그림동화책 한 권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 중앙 계단과 서점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사진을 찍느라 바쁜 여행자들 틈에서 무심한 듯 책을 펼치고 읽는 기분이 좋았다.  


#3

서점을 빠져나와 다시 광장으로 걸었다.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았다. 광장 한 켠에 어떤 장면을 표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푯말을 들고 어떤 소식을 전하고 있느 소년 동상 앞에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 동상보다 동상이 팔을 얹고 있는 빨간 우체통에 계속 눈이 갔다.


서점에서 산 렐루서점 사진이 프린트된 엽서를 가방에서 꺼냈다. 여행 중 이번 여행을 함께해준 동행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쓰려고 샀지만 첫 엽서는 나 자신에게 보내고 싶어졌다. 여행에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보낸 위로의 엽서를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 한국에서 받는다면 언제든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들고 지칠 때,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 그리워질 때 이 엽서를 보면 언제든 포르투의 이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4

마제스틱 카페와 렐루서점은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었지만 카페는 밤에 오고 싶었다. 카페를 제외하고 건물 대부분의 전등이 꺼진 순간을 보고 싶단 생각이 여행을 출발하기 전부터 들었었다. 상상 속의 순간을 보기 위해 카페가 영업을 마치기 30분 전에 도착했다. 비교적 늦은 시간이라 예상대로 건물 대부분의 조명은 꺼져 있었다.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곳은 해리포터의 영향 때문인지 ‘마제스틱 카페’라는 글자를 보면서도 ‘매직 카페’라고 읽혔다. 


내 마음과 같은 사람들이 또 있는 것일까? 카페 앞에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내부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거나 치워둔 빈 의자에 앉아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카페가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 서서 상상 속의 순간을 끄집어냈다. 카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운 이를 떠올리고 카페로 들어서면 동화처럼 만날지도 모른다는 내 멋대로의 상상.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저녁에 숙소에서 만나기로 한 동행들이 웃으며 나를 불렀다. 순간 내 얼굴엔 작은 아쉬움이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쳐있는 나를 위로하려고 내 마지막 행선지를 예측해 기다려준 사람들의 마음에 울컥하고 고마운 울음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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