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비효율이 만들어내는 신뢰와 차별성, 그리고 CX의 본질
요즘 ‘자동화’와 ‘효율’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CX(고객 경험) 여정을 설계하다 보면 때로는 ‘효율’이라는 덫에 빠질 위험이 있다.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고객의 불편함을 간과할 수 있고, 반대로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고객과 내부 리소스를 모두 지치게 할 수 있다.
CX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과 비효율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고객을 위한 ‘의도적 비효율’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다.
코로나 시기에 정부가 진행한 비대면 소통 지원사업은 CX 전략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계기였다. 우리 회사는 이 사업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는 기회를 얻었고, 내가 그 프로젝트를 진행한 리드였다.
당시 고객들은 복잡한 정부 지원사업 절차와 잦은 지침 변경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외부에서는 "비효율적"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정부지원 사업 대상의 모든 고객들에게 전화로 모든 과정을 안내 할 수 있는 팀을 꾸렸다. 당시 코로나로 대부분의 회사의 전화 상담은 축소 되었을 때였다. 또한 본 사업 주관 부서에서도 별도 상담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회사에서 본 정부사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내 할 수 있는 팀이 있어야한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약 3개월간 전화로 모든 과정을 안내하고, 불편함을 하나씩 해결해주며, 꼼꼼한 매뉴얼과 문자로 내용을 반복 확인하는 절차로 사업을 꾸렸다. 사업 담당 부서에서 해주어야하는 답변도 직접 다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팀 내 정보력과 상담 실력을 업그레이드했다. 본 방식은 초기에 외부에서 보면 전혀 효율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는 단 한 통의 전화로 복잡한 절차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신뢰를 얻었다.
이 전략은 회사 내에서 성공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그때처럼 팀을 꾸려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 잡았다. 물론 같은 전략을 지금 다시 적용한다고 해서 동일한 성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험은 CX에서 효율만이 답이 아니라는 교훈을 남겼다.
흥미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던 회사들조차 우리 방식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비효율적인 접근이 단순한 고생이 아니라 CX의 본질을 꿰뚫는 전략적 선택임을 입증한 셈이다.
이 사업에서는 고객 중심의 ‘의도적 비효율’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겉으로 보기에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들을 활용해 고객의 복잡한 절차를 단순화하고,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효율성을 이유로 채팅이나 챗봇 상담을 도입하던 시점에, 우리는 전화 상담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특히 관리부서 담당자처럼 온라인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에게 큰 효과를 발휘했다.
전화 상담은 즉각적인 문제 해결 수단일 뿐 아니라, 고객이 놓치기 쉬운 절차를 세심하게 안내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후 중요한 사항은 문자로 한 번 더 정리해 발송하여, 고객이 잊어버리지 않고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은 고객의 실수를 줄이고, 업무의 원활한 진행을 도왔다.
전화 상담은 단순히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상담 과정에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안하며 자연스럽게 영업 기회를 확보했다. 이는 고객과의 신뢰를 쌓고,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접점이 되었다.
고객과의 상담 이후에도 문자로 내용을 다시 정리해 발송함으로써 고객이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정부 지침 변경 사항을 빠르게 전달하여 고객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했다. 이 과정은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객별 진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중요한 시점마다 상태를 체크하며 추가 안내를 했다. 이를 통해 고객은 절차에서 헤매지 않고, 우리의 체계적인 서비스를 경험하며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은 내부적으로 다소 비효율적이었다. 상담 시간이 길어졌고, 반복적인 매뉴얼 제작과 문자 발송 등의 추가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나 고객 효율을 극대화한 결과,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고, 한번 연락온 고객의 이탈율이 60%이상 감소 했다.
우리의 서비스를 받은 고객들은 "요즘 이런 회사 드문데.. 참 믿고 쓸 수 있겠어요" 라고 이야기했다. 고객들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받는 것을 넘어 친절하고 체계적인 서비스에서 우리의 차별성을 분명히 느꼈다.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인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더 많은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높은 퀄리티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내부 직원들의 부담을 최소화 해야 했다. 고객 만큼 일이 늘어난다면, 조직 내 불만이 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난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해 부담을 줄였다.
매뉴얼과 문자 발송 템플릿을 체계적으로 설계했다. FAQ를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담원들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했다. 고객 스스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제공하면서도, 상담원은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었다.
1인 1역 체제를 도입해 팀원 각자가 맡은 역할에 집중하도록 했다.
상담 담당자: 고객과의 소통과 문제 해결에만 전념.
결제 담당자: 결제 및 행정 처리 전담.
매뉴얼 제작 담당자: 고객 문의 사항을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료를 제작.
이를 통해 각자가 자신의 업무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전체적인 속도와 정확성을 높일 수 있었다.
매일 오전 오후 팀원들에게 현재 진행하면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구간이 있는지 체크 했다. 그리고 의견을 받아 즉각적으로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일을 했다. 이 부분은 다소 번거로울 수 있지만, 긍정에너지를 발산 해야하는 팀원들에게 신뢰를 줌으로써 고객에게 보다 좋은 경험을 선사할 수 있었다.
CX에서는 효율과 비효율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효율만을 추구하면 고객의 불편함을 놓칠 수 있고, 모든 것을 비효율에 맡기면 내부 리소스가 소진된다. 중요한 것은 고객 중심의 관점에서 의도적 비효율을 전략적으로 선택할 지점과 효율화를 극대화할 지점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결국, 고객을 위한 작은 고생이 큰 신뢰로 이어지고, 이는 조직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다. 고객 경험을 위한 의도적 비효율은 CX의 핵심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