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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기 Sep 07. 2019

미국이 싫은 걸까 미국인이 싫은 걸까  

유럽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미국인들 

어렸을 때는 '미국'은 '외국'일 뿐만 아니라 '외국'은 '미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국과 외국의 개념이 항상 헷갈렸으니 말이다. 국가와 영토의 개념이 들어서기 전부터 미국은 어린 내게 이미 익숙한 나라였을 뿐 아니라 외국 전체, 세계와 다를 바 없었다.


한국에 살다 보면 미국을 최고의 선진국일 뿐 아니라 정의로운 국가이자 우방국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친미 성향을 갖거나 미국 중심의 세계관을 형성하기 쉽다. 거시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적인 체계나 미디어의 영향을 피해 갈 수 없고 집에서는 반공 교육을 받았던 부모님의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니 된 뒤에야 나라 밖 세계에 대한 나의 관점이 얼마나 협소하고 편향된 것인지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유럽인들을 처음 만난 것은 갓 스무 살이 되어 참여했던 미국 워크캠프에서였다. 2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유독 미국인 언니와 프랑스 소녀 사이에 계속 신경전이 오가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놀랄 일도 아니었지 싶다. 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공공연한 신경전을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이후에도 학업과 유럽 병으로 인해 유럽에 오가고, 유럽인들과 교류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곱지 않은 감정이다. 프랑스 독일에서도 그랬고, 여기 스페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나 은근한 못마땅함, 미묘한 감정이 묻어나는 걸 여러 번 느끼게 된다.


에피소드 #1,

빠에야 쿠킹 클래스에 참여한 나는 미국인 부부, 유럽계 캐나다인 커플, 그리고 현지인 요리 선생님이 함께 둘러앉아서 빠에야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빠에야 수업인 만큼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빠에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글쎄! 일주일 동안 이곳을 여행하고 내일 떠난다는 미국인 부부가 아직 한 번도 빠에야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하소연을 듣게 된다.

 
'도대체 왜?'


'우리가 들어가서 먹으려면 재료가 떨어졌다거나 영업시간이 아니라거나 이런 식이어서 항상 못 먹게 되더라고. 내 생각엔 다른 이유가 없고 그냥  우리가 미국인들이라 해주기 싫었던 것 같아.'


이쯤 되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라며 위로를 해주어야 할 텐데 오히려 '아하ㅋㅋㅋ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반응들이 오간다. 자학개그를 할 만큼 이곳의 반미정서를 미국인들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에피소드 #2,

커피가 맛있다는 아주 작은 커피 전문점을 찾아갔다.(바르셀로나에서는 의외로 괜찮은 커피를 먹기가 어려웠다!) 워낙 협소한 공간이라 카운터 바로 앞 좁은 바에서 프랑스인과 나란히 앉게 되었고 우리 사이에는 소소한 대화들이 오고 갔다. 그러던 중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나왔는데, 뜨거운 커피는 손잡이나 홀더도 없는 유리잔에  담겨 나와 적잖이 난감해하던 차였다. 


컵을 그냥 잡기에는 너무 뜨거워서 냅킨을 찾았더니 옆에 있던 그 프랑스인이 바리스타에게 말했다. 


'당신, 아메리카노 컵을 바뀌야겠는데? 이 아가씨가 미국인이었으면 당신을 고소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을 거야! (영국인이었다면 공짜 쿠폰을 달라고 요구했을 테지 하하)'

미드 중에 법정 드라마가 유독 많은 것도 이쯤 되니 이해가 될 것 같다. 




에피소드 #3,

뮤지엄데이를 맞아서 미술관들이 무료라고 하길래 찾게 된 MACBA. 마침 북스 위크 기간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북스 위크라기보다 코믹 북스 위크인 듯했다.


쓱 둘러보던 만화 삽화들 사이로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풍자하는 작품이 보였는데, 문제의 그 미국 대통령은 멧돼지의 형상으로 풍자되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반미보다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반감과 비하로 여겨야 할까? 살짝 헷갈리긴 하지만, 뭐 그래도 그렇게 묘사된 인물이 미국을 대표하고 있는 거니까 미국에 대한 감정이 섞여 있는 것으로 하자. 

출처: pixabay



에피소드 #4,

판초스 바에서 만난 호주인 부부, 한참 자신들의 스페인 여행 얘기를 전해주면서 은근슬쩍 스페인어 자랑을 곁들인다. 여행 시작 전에 스페인어를 조금 공부해서 왔다고 한다.

 
'우리는 미국인들처럼 어딜 가든 (현재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영어를 쏟아내진 않거든(윙크)'

그렇다. 외국어에 대한 무관심. 당연히 영어가 국제 공용어이고 모두가 영어를 할 것이라고 여기는 오만함과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 특히 유럽인들에게 미국인들이 비호감이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출처: Flickr




남을 흉보는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다더니 글이 길어진 듯하다. 


유럽에서 발견하는 미국, 아프리카에서 바라보는 유럽, 동남아에서 만나는 한국. 이렇게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평소에 의식하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내 사고의 경계를 의식하게 되는 데 여행의 묘미가 있다. 

오늘도 또 이렇게 한 뼘만큼 경계 안의 세계와 경계 밖의 세계를 알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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