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파트 뒷마당에 텃밭을 만든 적이 있었다. 상상만으로 미리 만들어 본 나의 텃밭은 채소와 열매 수확이 가능하고 나의 아이들이 즐겁게 체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런 상상만으로 시작한 나의 텃밭은 결국 실패로 끝나버렸다.
잡초들이 무성한 뒷마당을 있는 힘을 다해 일구었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 자연의 날 것 그대로였다.
모종을 심을 곳의 모든 풀을 다 뿌리째 뽑고 그 주변까지 다 정리하느냐고 손에 물집이 잡히고 기진맥진해 있었다.
옆집 아저씨가 보시더니 그런 잡초들은 성인 남성도 뿌리 뽑기 힘들다며 그렇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낫으로 베어야 한다고 한다. 아저씨의 뜻은 모종을 심을 곳이야 뿌리째 뽑아야 하지만 그 주변까지 무리해서 뿌리째 뽑는 건 미련한 행동이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이미 텃밭에 마음을 다 빼앗긴 채로 텃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의 고단함을 생각하지 않고 정리를 마쳤다.
시장에 가서 고추, 상추, 수박, 딸기, 토마토, 고구마, 파까지 심어보고 싶은 모종은 모조리 사 와서 열심히 심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지렁이를 피해 가며 열심히 심고 보니 참 뿌듯했다. 그러나 텃밭 초보가 너무 많이 욕심을 부리다 보니 관리가 되지 않았다. 본격 여름이 시작되자 무성히 자라는 풀들을 보고 감당이 안되기 시작했다. 모기는 정말 얼마나 많은지 텃밭에 가는 건 모기에게 헌혈을 하러 가는 일이 되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텃밭을 등한시하게 되었고 물을 주지 않아 점차 모종들이 말라가기 시작하고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작물들을 보게 되었다. 그 해 나의 텃밭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친정 엄마의 텃밭 채소들은 그렇게 잘 자라던데. 특별히 해주는 것 없어도 너무나 잘 자라는 작물들을 보고 큰 희망을 품었던 것인데.. 내 텃밭은 이상하게 더 풀이 잘 자라는 것 같고 더 잘 시드는 것 같아 속상하기만 했다.
텃밭의 달인이 돼보고 싶은 마음에 엄마의 텃밭을 관찰해 보러 갔다.
친정 엄마의 텃밭은 무엇이 다른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신 후로 농사일을 내려놓으시고 텃밭을 꾸려 나가고 계신다. 아파트 앞 공터에 작은 공간에 작물 심기 시작하셨다. 늘 받아먹기만 했지 밭의 실체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그저 고층 아파트에서 알려준 친정 엄마의 텃밭을 보기만 했을 뿐. 친정 엄마가 나눠줄 때마다 늘 하던 생각은 그 작은 텃밭에 참 별게 다 나온다였다. 상추, 깻잎, 콩, 오이, 호박, 파, 도라지, 가지 등이 늘 많이 나와 아주 넉넉하게 나눠주신다. 정말 신기했다.
친정 엄마의 텃밭의 실체를 보러 밭에 갔다. 약 8미터 정도 되는 공간이었다. 길이가 길쭉할 뿐이지 넓이로 봤을 땐 좁은 공간이었다. 좁은 입구를 들어가기 위해선 풀들을 지나쳐야 한다. 좁은 공간이지만 참 정갈하게 작물을 심어 놓으셨다. 입구에는 물을 언제든 줄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저것 심어 놓은 텃밭을 보며 엄마는 계속 보이는 잡풀들을 제거하며 쉬질 않는다. 아침에 오이를 땄다고 얘기하면서 또다시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면서 놓친 작물이 있나 계속 살펴본다. 차마 못 본 다 커버린 오이를 발견하자 아이들과 함께 수확한다. 그렇게 8미터의 텃밭을 지나는 동안 쉼 없이 잡풀 제거도 하고 작물 확인은 필수로 생각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엄마를 발견했다. 상추의 수확시기가 끝나버려 무성히 자라기만 하는 상추를 왜 베어버리지 않았냐고 묻자 씨앗을 받으려고 그냥 두고 있다고 한다.
관리를 안 하는 듯 보여도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의 텃밭관리는 끊이질 않는다. 잡초제거는 필수요. 주기적으로 물을 주기 위해 아빠에게 잔소리를 하고 수확할 작물들의 수확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시로 확인한다. 혹여라도 영양이 부족할까 효소도 줘 가며 정성을 다하고 계셨다.
또한 시기가 지난 작물들은 씨앗을 받기 위해 꽃이 필 때까지를 기다린다.
이런 과정을 텃밭을 가꾸는 봄부터 가을까지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텃밭도 참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일이고 한치의 쉼 없이 작물의 상태를 살펴야 하는 참 고단한 일이다. 그런 텃밭 관리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마음의 열정만으로 시작하다 보니 당연히 실패했던 것이다. 텃밭을 하는 내내 그래도 상추 정도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상추도 못 건진 걸 보면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친정 엄마의 텃밭과 나의 텃밭은 정말 확연하게 큰~~~~~차이가 있었다.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친정엄마의 작물들은 그냥 스스로 자라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엄마가 아니면 아빠의 손을 타서라도 제대로 열매를 맺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열매를 만드는 그 인고의 과정을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고만 있었던 나 자신이 참 한심스러웠다.
결과만큼 중요한 과정을 잊어버리지 않게 마음에 다시 새겨야겠다. 더없이 빛나 보이는 결과물이 되기 위해 꾸준히 아낌없이 노력하는 누군가의 등판이 아쉽지 않을 수 있도록 인정해 주는 노력을 기울여 보기로 하자.
비록 나 하나의 노력이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