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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20. 2024

왜 나는 글을 쓰는가

프로포기러지만 글쓰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프롤로그

   나는 프로포기러다. 한국표준협회에서 경영컨설팅 용역을 수행하던 대행사를 5개월 만에 그만두었고, MICE 대행사에서 8개월을 일하다 그만두었으며, MICE 인력 관리 대행사에서 1년 7개월을 일하고 그만두었다.


   일이 안 맞는다, 급여가 적다, 사람이 별로다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성격도 한몫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게 말하면 호불호가 뚜렷하고, 나쁘게 말하면 귀찮은 것은 딱 질색하는 성격이었기에 쉽게 포기하곤 했으니까. 이를테면 중고등학교 시절 과학 공부나 예체능이 그랬고, 수영, 미술, 태권도, 컴퓨터, 단소 등등의 학원도 조금 다니다가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일이 한 가지 있다. 글쓰기다. 2017년 8월부터 지금까지 약 800편에 가까운 글을 써내려 왔다. 처음에는 매번 광탈하는 자기소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보겠다고 쓰고 있다.


   일주일에 3편 이상씩 꾸준히 글을 쓰고는 있지만 솔직히 흔들릴 때가 많다. 김훈 작가처럼 대단한 필력도, 봉준호 감독 같은 크리에이티브도 없는 내가 글쓰기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도 내가 봐도 재미가 없다거나, 논리가 안 맞는다거나 할 때가 종종 있고 그때마다 헛구역질과 두통에 시달릴 만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퇴사를 결심할 때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할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얀 종이를 채워나갔다. 이상했다. 왜 다른 것들은 조금만 힘들고, 귀찮아도 쉽게 포기했으면서 글쓰기만큼은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단순히 좋아해서?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지 않나.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 그 답이 있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라 할 수 있는 아우슈비츠 등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는 니체의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극한의 환경을 더 잘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수용소에서 전염병이 돌았을 때 모두가 기피했지만 빅터 프랭클 박사는 기꺼이 환자를 관리하는 역할을 자원했다고 한다. 어차피 수용소에서 죽을 운명이라면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다 죽는 편이 무의미하게 강제 노역을 하다가 죽는 것보다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누군가는 수용소에 끌려오면서 헤어진 아들, 누군가는 완성하고 싶었던 과학 논문을 떠올리며 버텨냈고, 빅터 프랭클 박사 본인도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헤어진 아내를 떠올리며 버텨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의미치료’라는 새로운 심리 치료 방법을 고안하여 환자들이 정신적, 물리적 고통을 버텨낼 수 있도록 도왔다. 쉽게 말하자면 힘들고 지칠 때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으면 이겨낼 수 있다.’라는 거다.


   내가 왜 퇴사했는지, 다른 여러 과목들을 왜 포기했는지 단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급여나 여타 조건들을 떠나서 나에게는 회사에서 버티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왜 그렇게까지 글을 쓰고 싶어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내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글거리기 짝이 없지만 굳이 써 내려가는 이유는 하나다. 나처럼 여러 갈림길 위에서 방황하고, 주저앉은 자신을 책망했던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스스로의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조금은 그 사람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 또한 내가 찾은 삶의 의미 중 하나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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