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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Oct 13. 2024

감정 1

감정 1


제목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몰라 일단은 ‘감정 1’이라 칭하고 글을 쓰도록 하겠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쓴 작가나, 맞춤법이 틀린 글을 그대로 책이 나왔다는 어떤 작가나 그리고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상실한다는 것>을 쓴 Steven K. lee 라는 작가나 모두 솔직한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고 쓴 작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엊그제 노벨상을 받은 작가 한강 또한 그런 작가 중 하나이지 않을까? 아직 그녀의 책을 모두 읽어보지 못했다. 예전에 <채식주의자>의 첫대목을 읽었을 때는 바로 책을 덮고 싶었다. 턱 하고 가슴에 거대한 돌덩이가 얹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탓이다. 답답하고 묵직한 불편한 감정의 정체를 그때는 몰랐다. 아마 지금도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다. 여러 해가 지나 이제 그녀의 책을 다시 읽는다면 어쩌면 나는 이제 상당량의 감정을 소화해 낸지라 오히려 감동을 받지 않을까 한다. 요즘 들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가들의 표현력에 마음이 후련해지는 걸 느낀다.


로스코의 검붉은 색의 작품이 불편했던 과거와는 달리 가슴속 답답한 무언가가 해소되는 느낌이다. 한없이 솔직해도 되는 감정의 바다에서 신나게 해수욕을 하는 느낌이다. 최근 들어 또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고도 그랬다. 피가 흘러내리는 그림에서 나는 왜 희열을 느꼈을까.

그동안 꽁꽁 메어 두었던 감정이 도망칠 여건을 마련해 준 듯하다. 크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사회의 수많은 프레임을 시원하게 벗어 던지는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을 가졌다. 인간은 어쩌면 그리도 모두 다를 뿐인지 정말이지 개개인은 독특한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 그렇게 자연은 설계되었다.


감사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 이면에는 내가 그토록 저주해 왔던 어둠으로 가득한 나의 내면도 있었다. 과거의 나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선과 악 중 ‘악’, ‘악마’ 같은 나의 마음이다. 지질하다는 귀여운 표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검고 고요한 깊고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존재였다. 5년 전만 해도 나는 선과 악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상대적으로 너무도 힘들었던 현실. 그 검고 차가운 현실을 담기 위해 어쩌면 나는 악마라는 존재를 창조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철저히 내 안의 악마를 숨겨야 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꽁꽁 동여매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버려 두어야 했다. 절대로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다. 일그러진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철저히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내 안의 검은 정체를 풀어줬어야 했는데. 세상에 착한 사람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착한 마음만 있을 수 없다. 그게 팩트이다. 당시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과 달랐으며, 몇몇 상황들이 불편했을 뿐이었다. 이제라도 나를 보듬어 줄 수 있으니 다행이지 뭔가. 지금도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다.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는 악마가 아님을 안다. 오히려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한 존재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좋다.

오늘 책을 읽다 나의 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글을 쓸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죄책감 없이 나의 어두운 면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2024. 10.1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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