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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도 Sep 08. 2022

경쟁하지 않겠다

추접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3

 평생을 적들에게 둘러싸인 긴장감을 버텨낼 수 있을까? 경쟁중독이다. 경쟁하지 않으면 세상이 멈출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경쟁을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여기고 경쟁하지 않는 상태를 초조해한다. 경쟁해야만 발전한다고 믿고, 성취는 승리에서 느끼려 한다. 마땅한 경쟁자가 없으면 자신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쟁은 미움을 불러오고 미움은 적을 만든다. 당연시된 경쟁은 많은 사람의 인생을 괴롭게 운명 짓는다. 그렇게 삶은 고통이 되어간다.  


 경쟁은 눈치 없는 손님처럼 필요 없는 자리에도 비집고 들어와 안 끼는 곳이 없다. 아주 초라한 모습의 내가 아주 근사한 사람의 손을 잡고 대중 속으로 걸어갈 때, 그 손을 놓지 않고 떳떳이 걸어갈 자신이 있는가? 민망해하지 않으며, 동행인의 몰골을 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며, 바라보는 이들이 우리 둘을 비교하고 있다고는 전혀 의심치 않으며 해맑게 같이 거리를 거닐 수 있는가? 그 한 번뿐인 산책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가? 경쟁의 태도는 한 번 마음에 자리 잡으면 물리치기 어렵다. 전혀 경쟁이 필요 없는 자리에도 경쟁심을 불러와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 한다. 인간에겐 서열이 없다. 태어나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은 우주를 확장해가는 내면의 축제다. 관계에 비교의 잣대를 가져와 우위를 정하는 순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기적 편견이 생긴다. 편견은 타인의 우주를 온전히 여행하지 못하게 한다. 경쟁은 그렇게 관계를 병들게 한다. 건강한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 학습되어 내면화된 경쟁심을 의식적으로 몰아내야 한다. 나와 타인은 경쟁자가 아니다. 우연히 지구라는 같은 별에서 우연히 같은 시간에 우연히 같은 인간 종족으로 만난 동료다. 이런 마법 같은 황홀한 만남을 오롯이 즐겨야 한다. 경쟁심 따위는 하등 필요 없다. 


 경쟁으로 보이는 수치를 얻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잃는다. 경쟁은 수치를 동반한다. 수치화할 수 없는 성품의 영역마저도 점수를 매긴다. 참가자들은 어리둥절하지만 이내 의문을 접고 점수를 얻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은 측정 불가능하다. 인간의 능력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다. 인간의 능력은 우발적이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변화한다. 능력의 발현은 시간과 장소, 운이 결합된다. 이러한 점을 깡그리 무시하고 시장은 인간을 상품화하기 위해 수치를 내세운다. 노동시장에 느닷없이 출현한 숫자를 간판으로 얻어내기 위해 시간을 쏟고 교육상품을 소비하며 때로는 권력을 사용하여 부정을 저지르기도 한다. 왜 인간의 능력을 수치화해야 하는 것인지, 그 측정방법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일은 이겨야만 살아남는 경쟁에선 사치다. 쏟아지는 수치는 사색과 반성의 틈을 주지 않는다. 개성과 주관 같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가려버린다. 수치를 얻기 위해 다양성의 가치를 잃고 있다.  


 경쟁은 미움을 심는다. 경쟁에서 누군가 이기면, 누구는 진다. 이긴 자는 악의 없이 진 자에게 피해를 입힌다.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의 다행이 되는 상황에는 미움과 초조함이 들어선다. 선의의 경쟁이란 없다. 선함에는 승과 패, 서열 또한 없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잃을 때에는 다른 무언가를 얻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의 경쟁에선 잃은 것만이 가득하고, 시련은 성장의 씨앗이 되지 못하고 상처만 남길뿐이다. 상처를 떠올리며 자신을 한계 짓고, 무기력해지거나 악에 받쳐 누군가를 상처 낼뿐이다. 경쟁은 꼭 필요한 자리에만 들어서면 될 일이다. 규칙은 아주 공정하여 지더라도 분노하지 않아야 하며, 과정은 배움의 장이어서 실패로도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패배를 상처가 아닌 성숙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얻은 패자는 승자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경쟁은 인간의 삶에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경쟁은 승자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한 소비의 장이 되고 있다. 승자는 특권을 독식한다. 패자는 승자를 미워한다. 미움은 관용을 불가능하게 한다. 더불어 사는 것을 방해한다. 불필요한 미움을 만들어내는 경쟁을 멈추어야 한다. 경쟁을 멈추면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경쟁은 서럽다. 경쟁은 참가자의 마음을 경쟁하는 그 순간에 사로잡아 박제해버린다. 승리자는 쟁취의 순간 속에, 패배자는 수모의 순간 속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경쟁의 순간은 인생의 미련이 되어 평생 동안 마음속의 골목대장 행세를 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평정을 들쑤신다. 이런 상흔을 남기지만, 대부분의 경쟁은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 많은 수의 경쟁들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치러지기 때문이다. 숭고하지 않은 경쟁의 참가자들은 안타까워질 뿐이다.   


 경쟁은 나쁜 환경의 환상의 변명이다. 경쟁은 차별을 합리화한다. 경쟁은 저항하지 못하게 한다. 경쟁은 마치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었단 듯이 착각하게 한다. 불리한 누군가의 입을 점수로 막아버린다. 경쟁은 점수를 얻는 데 몰두하게 해 주체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빼앗는다. 경쟁은 타인에 대한 의심을 낳는다. 경쟁은 의지할 곳 없는 외로움을 만든다. 경쟁은 일상의 여유를 파괴한다. 그런데 왜 사회는 경쟁을 권하는가? 경쟁하려면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정보를 얻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소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소비한 사람이 이길 확률이 올라간다. 시장은 소비를 원하고, 경쟁은 소비를 부추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경쟁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불안감을 주입하면, 사람들은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경쟁시장에 뛰어들어 소비한다. 누가 경쟁을 원하는지, 경쟁으로 득을 보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지, 경쟁의 시간이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지, 지금의 경쟁이 내가 원하는 일이고, 경쟁의 결과가 성장이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면 헛 된 경쟁의 바다에 떠밀려 뛰어들지 않게 될 것이다. 악한 의도가 없어도 살기가 힘든 것은 내가 경쟁에서 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환경이 불편하게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환경은 서로 힘을 모아 개선해나가면 될 일이다. 승자에게만 편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혹은 탈진한 승자가 되기 위해 고생할 이유가 없다. 


 경쟁하지 않는 것은 나태, 무기력, 체념, 회피, 나약함과 다르다. 오히려 기존의 경쟁체제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무기력한 것이다.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되지 않은 경쟁은 인간의 우열을 가리어 등급을 매기는 상품화 작업일 뿐이다. 경쟁하지 않겠다는 것은 회피가 아닌 인간상품화에 대한 저항이다. 경쟁은 인간행동의 진정한 동력원이 아니다. 개인 고유의 욕망이 자신을 움직여야 한다. 경쟁은 불안감으로 인간을 채찍질한다. 채찍질당하는 것은 노예다. 인간은 노예가 될 수 없다. 경쟁시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면 경쟁에 동참하지 않는 우직한 용기가 필요하다. 경쟁으로부터 도피자가 되는 것은 인간상품화 시대의 용감한 저항자가 되는 것이다. 


 경쟁으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빠른 속도다. 속도가 가져다준 것은 무엇인가? 풍요다. 그렇다. 우리는 풍요를 원했다. 풍요로워져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나와 타인을 넘어 동물과 식물 등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편안한 상태에 두기 위해 우리는 풍요를 원했다. 생명의 위협이 없는 안전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빈곤의 족쇄로부터 자유를 누리기 위해, 죄책감 없는 인생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풍요로워지길 바랐다. 그러나 풍요를 원하는 갈망에는 끝이 없었다. 풍요로움에 우위를 정하기 시작했고, 남들보다 많이 가지기 위해 경쟁을 끌어들였다. 우리는 평안을 얻으려 했으나 불신으로 인한 불안을 얻었다. 풍요로 얻을 것은 평안이다. 평안은 평화를 가져온다. 경쟁은 풍요를 위해 사용됐던 도구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것을 해치지 않으며 풍요 속의 안정과 공평을 이루어 낼 도구를 생각해내야 한다. 풍요로운 세상에서 경쟁은 낡은 도구일 뿐이다.  


 승리는 삶의 구원이 아니다. 영원한 승리는 없다. 마지막 경쟁은 없기 때문이다. 욕심 있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경쟁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경쟁이 상품인 시대니, 승리는 다른 경쟁들의 탄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나의 승리가 주는 환희의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이다. 이번만 이겨보자는 순진한 믿음은 다음 경쟁에서의 패배를 더욱 아프게 만든다. 변덕스러운 경쟁에 인생의 향로를 맡길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때에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일이 경쟁이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경쟁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한 생은 절대 타인이 되어볼 수 없으므로 자신밖에 알지 못한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나밖에 알지 못한다. 상대, 특히 패자의 역할이 꼭 필요한 경쟁은 구원의 길이 될 수 없다.     


 어떤 이의 빛이 나의 그림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경쟁 없이 태평하다는 것은, 타인의 능력 발현이 오롯이 나의 기쁨이 되는 것은, 상대의 웃음이 꼴 보기 싫지 않다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은, 삶의 충만함이 오로지 나의 기준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런 것들은 언제 오는 것일까? 얼마나 세대를 거치면 경쟁 없는 성취가, 경쟁 없는 자유가, 미움 없는 정진이 일상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세상을 원한다. 원하므로 행동하겠다. 경쟁하지 않겠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고유한 인생의 빛깔을 빚어내기 위해 정진하겠다. 경쟁을 주목하지 않겠다. 경쟁자 대신 뜻 모를 미움을 권하는 시대를 미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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