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카메라 없는 핸드메이드 여행일기
2003년 여름, 엄마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 - 오사카 - 나라 - 교토. 하나투어의 알짜배기 일본 여행 상품이었다.이다님의 [ 내 손으로, 교토 ] 를 보니 무려 13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 내 손으로, 교토 ]는 교토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앞의 60페이지 정도가 교토에 가기 전 내용이다. 어떻게 교토에 가게 되었는지, 가기 전의 사전조사 내용, 그리고 짐을 싸는 과정 등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이다 님과 여행메이트 모호연 님이여행에 앞서 준비하는 것은 나와 정말 비슷했다.
나는 여행지와 날짜가 정해지면 그 나라의 전반적인 내용(역사/문화/기후 등)을 알아보고 서점과 도서관을 기웃거리며 관련 서적을 모조리 구입한 후 포스트잇과 형광펜으로 열심히 표시해가며 읽고 또 읽는다. 그러고 나서 가장 가고싶은 곳 위주로 동선을 짠 다음에 경비에 맞게 숙소를 예약하고, 예산을 짠다. 현지의 최신 정보를 알고 가기 위해 구글링을 엄청 많이 한다. 특히 지도를 굉장히 많이 보는데, 여행지에서 처음 타 보는 대중교통이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까지 반복한다. 구글맵으로 모든 동선과 이동 방법을 저장해 놓는 것은 기본. 그리고 여행지가 배경이 된 영화나 책이 있는지도 찾아본다.
서점과 카페,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 등에 관심이 많은 반면, 음식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는 내용을 보고 지난 삿포로 여행이 떠올랐다. 이디야에서 구입한 인스턴트 커피가 가격도 저렴하고 선물용을 적당할 것 같아 몇 세트 구입해갔는데 캐리어 안에서 눌려 살짝 찌그러진데다가 포장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 상태로 내밀기 쑥쓰러웠지만 다들 너무 잘해주셔서 안 드릴 수 없었다. ㅜ
삿포로 여행기 (에어비앤비)
>> Sapporo airbnb_Yuka's Cozy Apartment 01
>> Sapporo airbnb_Yuka's Cozy Apartment 02
이다 님이 교토 여행 드로잉에 가져가신 그림도구들에 대한 설명도 있는데, 16일 북티크 서교점에서 열린 사인회에서 직접 도구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특히 금색펜은 정말이지 영롱했다. 그 반짝임이란 ㅜ 책에서는 반짝임까지 표현되지 않아 원화를 직접 본 것이 뿌듯했다. 그리고 클립보드에 집게와 찍찍이를 이용해 만드신 수채화 키트는 엄청 멋졌다. 고체 물감도 엄청 신기했고 안쪽에 물이 채워진 물붓도 정말 신기했다. 그림을 정말정말 가끔 그리는 나에게도 매력적인 도구들이었다.
그리고 사인회에서 책속의 수채화키트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었다!
첫번째 관광지는 금각사다. 책 두 페이지를 가로지르는 큰 입장권이 있는데 보는 순간 나 역시 보관하고 있는 입장권이 떠올랐다. 여행박스를 뒤져 13년 전의 입장권을 찾았다! 내가 가진 입장권은 성인용과 학생용 두 장인데 학생용은 80퍼센트 정도 사이즈다. 그냥 특이하게 생긴 입장권이구나, 정도로만 여겼는데 진짜 부적이었다.
한여름의 더위에 녹아내릴 듯 했던 금각사가 생생하다. 이글이글한 태양열을 잔뜩 머금어 쨍한 금빛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이렇게나 더운데 금이 녹아버리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하는 순진한 중딩이었다. 물론 절대 한여름 더위에 금각사가 녹아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느라 금각사 사진을 찾아보니 내 기억에서처럼 번쩍번쩍한 황금빛은 아니었다. 아마도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기억 속에서 <천년 수도의 찬란한 황금빛 절, 금각사> 정도로 화려하게 변신해 있는 듯 했다.
이다님의 그림은 하나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지만 [ 내 손으로, 교토 ] 에서 가장 맘에 든 그림 중 하나는 호센인의 정원 그림이다.
와,
작년 보길도에서 본 풍경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그렸던 그림도ㅋㅋㅋ
내가 그리고 싶었던 바로 그 그림이었다.
책의 퀄리티에 대해 말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지만 JR 전철 역에서 찍은 스탬프가 뒷장에 비쳐 보이는 것까지도 고대로 책으로 재현된 것은 몇 번을 봐도 멋지다.
+덧 : 내가 찍은 스탬프는 제대로 안 찍혔는데 ㅜ
여행을 할 때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작은 행운이 무척 반가울 때가 있는데 관광 책자에는 실려있지 않은 동네 벼룩시장이 그렇다. 여행자들을 위해 내놓은 물건들이 아니라 “진짜 그 골목 사람들이 자기 집 앞에 물건을 내놓고 파는 진짜 벼룩시장”.
'뭐라고오오오오오오오 - ' 내면의 감탄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다님의 글이 좋다 ㅋㅋ 이다님 표정 봐 ㅋㅋ
여행지에서 구입한 물건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지만, 이렇게 교토에서 나고 사용되기까지 한 물건은 뭔가 좀 더 '교토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게다가 저렴한 가격까지!
이 페이지는 원래 접시를 쌌던 포장지가 붙어있었는데 (이다님께서 설명해주심 :>), 포장지로 쓰인 종이의 반짝이는 질감은 표현되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철학의 길의 마지막, 수로각 그림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데다가 고요하고 멋지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의 교토에 마음이 들떴다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붉은 벽돌의 수로각에 등을 기댄 '작은 이다'를 발견하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책은 이다님의 여행하는 동안 이다님의 머릿속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듯 하다. 특히나 음식과 관광지에 대한 이다님의 감탄사는 정말이지 큰 공감이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손으로, 교토]는 솔직하다. 관광지에서 안내원의 무례에 빡침 게이지가 상승한 것, 하지만 이내 친구와 껄껄거리고 웃으며 잊어버리고 끊임없이 감탄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오, 놀라워, 아름다워' 하는 관광지 예찬이 아니라, 여행하면서 누구나 느낄법 한 소소한 감정들이 드러나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래서인지[ 내 손으로, 교토 ] 는 이다님의 여행 일기지만 마치 나의 일기와도 같았다. 이다님은 2015년의 교토/오사카를, 나는 2003년과 2014년의 교토/오사카를 다녀왔다. 이다님과 나는 다른 시간, 다른 장소의 교토를 여행했지만 우리는 모두 '교토'를 알고 있다. 작가님과 같은 추억을 공유한다는 기분이, 무척 좋다.
북티크 서교점에서 열린 사인회에서 직접 본 원화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그리고 이 책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 있었다. 원화와 직접 비교를 해 보니 15,000원(노트포함)에 이 정도로 훌륭하게 재현된 것이 참 신기하다. 괜히 책을 요리조리 들춰보게 되고 이 책을 구입한 것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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