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와 구슬 하나에 울고 웃던, 100원으로 일구는 골목길의 추억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국민학교 시절, 하굣길의 참새 방앗간은 단연 학교 앞 문방구였다. 1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손에 꽉 쥐고 문방구 미닫이문을 열면, 그곳은 우리만의 작은 월스트리트이자 카지노였다.
그 시절 우리는 주머니를 묵직하게 채우는 구슬과 딱지, 그리고 팽이에 열광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해가 지는 줄도 모른 채 친구들과 경쟁하며 따내던 그 작고 소중했던 나의 '재산'들을 추억해 본다.
유리구슬은 그 자체로 코흘리개에게는 보석과 같은 재산이었다. 투명한 유리 속에 소용돌이치듯 박혀 있는 색색의 무늬를 햇빛에 비춰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묵직한 '쇠구슬(베어링)'이나 크기가 두 배만 한 '왕구슬'을 가진 녀석은 골목의 권력자였다.
① 구슬 따먹기 : 발걸음 재기와 치밀한 협상
아파트 현관 앞, 완만한 경사가 있는 계단 빗면의 갈라진 틈은 우리들의 훌륭한 출발선이었다. 그 틈에 구슬을 올려두고 차례로 밑을 향해 굴려 보낸다. 가장 멀리 굴러간 구슬의 주인이 선공을 쥐고, 상대방의 구슬을 향해 자신의 구슬을 힘껏 튕긴다. (이때 욕심을 내서 너무 세게 치려다 빗나가기라도 하면, 내 구슬만 저 멀리 하수구 쪽으로 굴러가 영영 잃어버리는 대참사도 다반사였다.)
이 놀이의 진짜 묘미는 구슬을 튕긴 직후 벌어지는 '거리 측정'에 있었다. 내 구슬이 멈춘 자리에서 상대방 구슬까지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가늠한 뒤, "이거 세 발짝 반 거리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상대가 순순히 "오케이"를 외치면 그 구슬은 내 차지가 되지만, "에이, 말도 안 돼! 줄여!"라고 반발하면 그때부터는 숨 막히는 정밀 측정이 시작됐다.
뒤꿈치와 앞코를 바짝 붙여가며 한 발, 두 발 신중하게 거리를 재던 그 시절, 흙바닥에 코를 박고 매의 눈으로 판정을 내리던 우리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훌륭한 측량사였다.
② 구멍 돌기(?) : 정교한 구슬 날리기
야구장 부럽지 않았던 '구멍 파기' 흙바닥에 야구의 1, 2, 3루와 홈 베이스처럼 작고 오목한 구멍 3~4개를 파놓고 도는 게임도 있었다. 엄지와 검지로 구슬을 튕겨 순서대로 구멍 안에 쏙쏙 밀어 넣는 쾌감이 일품이었다. 홀인원을 노리는 골퍼처럼 바닥에 바짝 엎드려 각도를 재느라 무릎과 팔꿈치는 늘 흙투성이였다.
③삼각형 알까기 : 구슬 맞출 때의 쾌감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커다란 삼각형을 그리고, 그 안에 각자 판돈(구슬)을 내어놓는 것이었다. 멀리 그어진 선에서 내 구슬을 던져 삼각형 안의 구슬을 맞혀 선 밖으로 밀어내면 그 구슬은 내 차지가 되었다. 가장 쫄깃한 순간은 상대방의 구슬을 직접 맞추는 '알까기(혹은 힛뜨)'였다. 내가 애지중지하던 쇠구슬을 던져 친구의 구슬을 경쾌한 "짝!" 소리와 함께 튕겨냈을 때의 그 쾌감은 지금의 골프 홀인원 부럽지 않았다. 물론 반대로 내 왕구슬을 잃었을 때는 세상을 다 잃은 듯 며칠을 앓아누워야 했다.
기타로 홀짝 짤짤이 등...
겨울이 오면 문방구 앞 바닥은 팽이의 계절로 돌변했다. 당시 88 서울 올림픽의 여파인지 윗면에 오륜기가 자랑스럽게 새겨진 플라스틱 줄팽이가 대세였다. 팽이놀이의 핵심은 '줄을 팽이에 얼마나 찰지게 감느냐'에 있었다. 바닥을 향해 냅다 내리꽂으며 줄을 확 당길 때 팽이가 내는 "웽~" 하는 파공음은 소년들의 가슴을 마구 뛰게 했다.
자비 없는 팽이판의 콜로세움, '도끼 찍기'
처음에는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 뒤, 누가 더 오래 도는지 시합하는 평화로운 놀이로 시작한다. 그러다 손기술이 좋은 녀석들은 맹렬하게 도는 팽이 밑으로 줄을 걸어 이동시키며, 마치 액션 영화의 자동차 추격전을 방불케 하는 '옆 치기'를 시도했다.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두 팽이가 엉켜 안타깝게 동반 사망(?)하는 대참사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찍기' 고수들이 합류하면서 시작된다. 평화롭던 놀이판은 이내 잔혹한 콜로세움으로 변했다. 상대방의 팽이가 돌고 있을 때, 내 팽이를 허공에 띄워 상대 팽이의 정수리를 무자비하게 내리찍는 이른바 '도끼 찍기'를 시전하는 것이다. 고수들의 일격이 제대로 꽂히면 상대 팽이는 저 멀리 튕겨 나가 비틀거렸고, 영락없이 반쪽으로 쩍 갈라지기도 했다.
당시 200원 남짓하던 소중한 전 재산이 산산조각 났을 때의 그 허망함이란… 쪼개진 팽이를 바라보는 친구의 눈동자도 함께 바사삭 부서지곤 했다.
문방구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희귀 자산도 있었다. 바로 아파트 단지 놀이터나 해안가 모래밭에 파묻혀 있던 작은 조개껍데기들이었다. 돈 한 푼 안 들지만,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모래를 파헤쳐야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광물이었다. 우리는 흙투성이가 되어 발굴해 낸 조개들의 모양에 따라 저마다 그럴듯한 계급과 능력치를 부여했다.
타이거: 부채살 모양의 주름진 조개.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하는 밸런스형 강자였다.
코브라: 날렵하고 길쭉하며 위가 봉긋 솟은 조개. 뾰족한 모양 덕에 공격력이 탁월했다.
거지: 넓적하고 주름진 얇은 조개. 이름처럼 방어력이 약해, 상대의 힘을 빼기 위한 이른바 '몸빵용' 총알받이로 쓰였다.
삿갓: 뾰족하고 둥근 희귀템. 두께가 일정 수준 이상만 되면 절대 깨지지 않는 최강의 방어 병기였다.
(참고로 꼬막이나 굴 껍데기 같은 생태계 파괴종은 아이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로 출전을 엄격히 금지했다.)
무자비한 조개 격파와 원정대
가위바위보로 공수를 정한 뒤, 수비하는 친구는 바닥에 조개를 내려놓고 그 위로 공격하는 조개를 마주 보게(조개 윗면이 맞물리게) 올려놓는다. 그리고 왼손바닥으로 조개들을 단단히 덮은 뒤, 오른손 주먹으로 도장 찍듯이 "쾅!" 하고 무자비하게 내리친다. 조심스레 손을 치웠을 때 산산조각이 난 조개의 주인은 패배의 쓴맛을 삼키고 다른 조개를 다시 내밀어야 했다.
상대의 조개의 약한 부분을 보기 위해 한쪽 눈을 감고 햇빛에 비추어 보기도 하면서 약한 부분을 공략하는 것이 필승의 비법.
조개가 다 박살이 나면 억울함을 삭이며 다시 강력한 조개를 줍기 위해 모래밭을 미친 듯이 뒤졌다. 이 놀이에 꽂혀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있던 날이면, 손바닥과 손가락에는 조개에 눌리고 깨진 파편에 긁힌 상처들이 영광의 훈장처럼 덕지덕지 남곤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놀이가 끝난 텅 빈 놀이터. 바닥에 흩어진 처참한 조개의 잔해들을 볼 때면, 치열했던 전장의 허무함이 구슬프게 노래하는 듯해 사뭇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나이를 먹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하나둘 장난감의 세계에서 멀어졌다. 어느 봄날, 서랍장 구석에 비닐봉지로 애지중지 싸매두었던 나의 전 재산(딱지와 구슬들)이 보이지 않아 집안을 발칵 뒤집은 적이 있었다. 대청소를 하던 엄마가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것이다.
"내 재산 다 어디 갔냐고!"라며 미친 듯이 짜증을 내는 내게, 엄마는 자비 없는 '등짝 스매싱'을 날리며 일갈하셨다. "다 큰 놈이 그런 쓰레기를 어디다 쓴다고 모아놔!"
그때는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서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깟 종이 쪼가리와 유리구슬에 내 모든 희로애락을 걸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때 그 시절 TMI] 100원으로 누리던 장난감의 비밀
① 그 많던 '고양이 눈' 구슬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투명한 유리 속에 알록달록한 잎사귀 무늬가 들어 있어 흔히 '고양이 눈(Cat's Eye) 구슬'이라 불리던 그 구슬들. 대체 단단한 유리 속에 어떻게 색깔을 넣었을까 신기하지 않으셨나요?
원리는 이렇습니다. 용광로에서 펄펄 끓는 투명한 유리 쇳물 한가운데로, 색깔이 있는 얇은 유리 쇳물을 주사기처럼 짜 넣습니다. 그리고 이 굵은 유리 가래떡(?)을 일정한 크기로 싹둑싹둑 자른 뒤, 나사선이 파인 롤러 두 개 사이로 굴려 보냅니다. 유리가 식으면서 롤러 사이를 빙글빙글 구르다 보면 우리가 아는 그 완벽하고 영롱한 구형의 유리구슬이 탄생하게 됩니다.
② 왜 그 시절 놀이터에 조개가 많았을까?
강모래의 고갈과 '바다모래'의 등장
원래 건설 현장이나 놀이터에는 입자가 고르고 깨끗한 강모래(강자갈)를 쓰는 게 정석이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수도권 신도시 개발(분당, 일산 등)이 몰아치면서 강모래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나버렸죠. 그래서 건설사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해안가의 바다모래였습니다.
세척 과정에서 살아남은 '강력한 생존자들'
바다모래를 아파트 단지에 깔려면 염분을 제거하는 세척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필터링 기술이 아주 정교하지 않았거나, 놀이터용 모래까지 완벽하게 조개를 걸러낼 필요성을 못 느꼈을 거예요. 덕분에 자잘하고 단단한 조개껍데기들이 모래와 함께 대량으로 유입된 것이죠.
건설사 입장에서는 콘크리트 강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귀찮은 '불순물'이었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모래밭 어디를 파도 나오는 무한한 '천연 게임 아이템'이었던 셈입니다.
※ 이미지 출처
① 구슬 : https://m.bunjang.co.kr/products/253553545
② 팽이 : https://m.blog.naver.com/gjhk8/221511664386
③ 조개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12/read/11247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