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가 지켜낸 것들
1월 21일 수요일
정확히 6년 전인 2020년 1월 20일,
뉴스 속보로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라는 자막이 떴던 그날을 기억하시나요?
곧 끝날 거라 믿었던 '잠시 멈춤'은 무려 3년 넘게 이어졌고, 그 기간은 우리에게 깊고 아픈 흉터를 남겼습니다. 우리나라 누적 사망자 수 3만여 명(2023년 엔데믹 선언 기준, 전세계 400만 명 이상)은 단순한 숫자로 치부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였고 함께 호흡했던 친구와 동료였습니다. 소중한 가족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손 한번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고, 두꺼운 방호복 너머로 소중한 사람들을 작별해야 했던 그 슬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적 상처 또한 깊었습니다. 텅 빈 가게를 지키다 결국 문을 닫아야 했던 수많은 자영업자의 눈물, 일자리를 잃고 막막해하던 가장들의 한숨.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물리적 생명을 집어삼킬 때, 불황은 서민들의 삶을 공격했습니다. 우리가 보여준 'K-방역'의 성과 뒤에는, 이처럼 묵묵히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이웃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 긴 터널을 지나며 우리 사회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삶의 방식과 풍경을 변화시켰습니다.
회식 문화는 가장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3차까지 가던 문화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직장인 회식의 70% 이상이 '1차에서 밤 9시 전 종료'로 바뀌었다고 하죠. 억지로 권하는 술잔 대신, 각자 취향을 존중하며 깔끔하게 귀가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습니다.
일하는 방식도 혁신을 맞았습니다. 실험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재택 근무를 강제적으로 시행하며 우리는 꼭 사무실이 아니어도 일이 돌아간다(오히려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화상 미팅(Zoom 등)은 필수 업무 툴이 되었고, 비대면 근무 또한 많은 경우 효율적인 업무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방역으로 인적인 교류가 불가능해지면서 대학생들은 낭만을 잃었고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줄어들어 혼인이 줄고 출산율이 떨어지며 인구 절벽을 가속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상처와 변화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놀라운 '시민의식'을 증명해 냈습니다. 전 세계가 마스크 사재기로 몸살을 앓을 때, 우리는 보건 당국의 가이드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마스크 줄을 섰고 불편을 감수하며 거리두기에 동참했습니다. 의료진은 탈진해가면서도 현장을 지키며 우리 이웃의 생명을 지켜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주요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은 치명률로 수많은 생명을 지켜냈고 전면 봉쇄(Lockdown) 없이도 방역에 성공하며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한 모범 사례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우리가 겪은 상처는 아팠지만, 우리가 보여준 저력은 위대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오늘, 다시 서울의 출근길을 둘러봅니다. 빽빽한 콩나물시루 속에서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립니다. 마스크 없이 들이마시는 겨울 공기가 차갑지만 상쾌합니다. 우리는 그 긴 전쟁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가끔은 북적이는 인파에 짜증도 나고 출근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6년 전 오늘을 떠올리면 이 '평범한 일상'이 우리가 함께 지켜낸 기적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나 눈을 맞추며 손을 맞잡고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자유. 이 당연한 것들을 잃어보고 나서야 우리는 그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답답한 사무실 공기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진다면 너무 과장일까요? 부디 이 평범한 자유가 다시는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 점심엔 동료들과 마스크 없이 활짝 웃으며 커피 한잔 어떤가요?
출처 기사 :
“국민여러분 덕분입니다” 코로나 의료진이 전하는 감사메시지
https://www.medifonews.com/news/article.html?no=168192
전 세계 코로나 실제 사망자 수, 공식 발표 2배 넘는다”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943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