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몸살인가 엄살인가
"아우 허리 아파"
이렇게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딱 두 가지 종류로 나뉘어 있다. 이미 임신 출산을 겪어보거나 최측근이 겪어보아 이야기를 많이 들어본 사람들의 경우 "다들 그렇다더라, 참어", 임신 출산의 과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는 "네가 운동을 안 한지 오래돼서 그런가 봐, 운동을 좀 해".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어쩌면 그렇게 임신 출산에 대해 아는 사람도 많고 무지한 사람도 많은지, 그냥 내 말을 하소연을 들어줄 순 없는 거야? 나는 분명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다고! 기브 앤 테이크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내 얘기를 차분히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도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고! 다들 그렇다고 하니 참으라는 말은 곧 예민해진 나에겐 이런 말로 들린다. "다들 겪는 당연한 일들인데 뭐 그렇게 유난을 떨어, 그냥 입 다물고 견뎌. 다들 그렇게 애 낳고 멀쩡하게 잘 들 살아" 그리고 네가 요즘 운동을 안 해서 그래, 운동을 해라는 말에는 정말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서 이렇게 반박하고 싶다. "나 요가 지도자 자격증 취득한 사람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 스트레칭하고 셀프 마사지에 폼롤러도 동원해가며 몸 풀고 있어, 그래도 아픈 걸 어쩌라고! 명치가 벌어지고 골반이 저리고 종아리가 퉁퉁 부어서 걸을 때마다 찌릿찌릿 한 느낌인데 그런 느낌을 네가 알아?"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게 되면 분명 난 왕따가 되겠지, 소외감을 느껴도 해야 할 말이라면 하고 살아야겠지만 그냥 어느 순간인가부터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어떤 피드백이 돌아올지 대략적인 예상이 가므로 그냥 마른 입술을 다물기로 다짐해버렸다. 말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소연하고 싶은 것들도 많은데 정말 "할많하않"이라는 신조어가 너무도 내 상황과 찰떡같이 달라붙어서 한번 인용해본다.
"내가 정말 할 말은 많은데, 더러워서 하지 않겠다!"
오늘부터 난 과묵한 여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AM 8:34, 기상을 하고 눈을 뜨자마자 아이폰의 홈버튼을 눌러본다. 아, 오늘 벌써 월요일이구나. 오늘은 꼭 일주일 동안 보일러실에 쌓아온 재활용 박스들과 비닐 등을 수거함에 정리해서 버려야겠다, 음식물 쓰레기도. 그런 다짐을 하며 부엌으로 가 미숫가루를 탄다. 신랑과 나는 아침에 매일 누룽지를 끓여먹거나 밥을 지어먹다가, 어느 순간 위가 둔해지는 것을 느끼고 소화가 잘 안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침에 미숫가루를 두유와 우유 1:1 비율로 고소하게 타서 마시고 있다. 워낙에 신랑이 연애 때부터 미숫가루를 좋아하기도 했고, 나도 아침에 미숫가루를 먹으면 포만감이 쉽게 차서 몸무게 관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나는 오늘부로 임신 31주 5일 차 산모이고 몸무게는 임신 전보다 10킬로나 쪄버렸다. 워낙 마른 편인 몸에서 임신을 하긴 했지만 샤워를 하고 나와 전신 거울로 내 몸을 들여다볼 때면 나 스스로도 흠짓 흠짓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곤 했다. 위기감을 느낀 전 요가 지도자는 급히 이사한 집 근처의 피트니스를 신랑과 함께 등록했다. 3개월 등록하면 추가로 1개월을 연장해준다고 해서 4개월을 등록했다. 2달 뒤면 출산이긴 하지만 출산할 때쯤이면 회원 기간 홀딩도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런데 그러면 뭘 하나, 이 놈의 아가는 밤이고 낮이고 쉴 새도 없이 내 얇은 뱃가죽을 찢어져라 발로 빵빵 차댄다. 움직일 때마다 밑이 빠지는 것처럼 아랫배가 뭉치고 아프다. 한 번은 동네 시장에 장 보러 나갔다가 집을 나선 지 1분 만에 아랫배가 싸해짐을 느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에서 산 귤 봉지와 딸기 봉지를 길바닥에 내려놓고 아랫배를 움켜쥐고 신랑에게 SOS를 친 날도 있었다. "자기야 나 배가 너무 아파, 도저히 못 걷겠어. 아파트 입구가 코 앞인데...." 마침 일찍 퇴근길에 있던 신랑이 다급히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나와 귤과 딸기를 집까지 픽업해서 데려갔다. 그 다음날 산부인과를 가 보니 나는 워낙 마른 체질에 피부도 얇은 편이라서 아가가 무겁게 아래로 쳐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산모 몸이 못 견뎌서 아가가 조산이 될 수도 있다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하나 다행이라고 생각한 점은 "입원하셔야 합니다, 무조건"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 나의 경우를 인터넷에 쳐 보니 29주부터 만삭 때까지 조산기로 병원에 감옥처럼 갇혀서 입원해있다가 출산 한 산모들도 많다고 한다. 나 같이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은 도저히 그런 생활은 영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조건 입원하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내가 알아서 내 몸을 잘 컨트롤해야겠다는 다짐이 머릿속에 깊숙이 박혔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운동도 일주일에 최소 2번에서 최대 3번, 이것도 내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쉬자 라는 관대한 목표를 세웠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지루하지 않은 내 취향의 취미들을 하나씩 시작했다. 우선 나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컬러링 하는 것도 무척 좋아해서 우연찮게 인터넷 써칭 하다가 찾은 유화들을 그림으로 접하고 쉬워 보이는 작품부터 도안과 세트들을 하나씩 자비로 구입했다. 처음에 한 작품의 채색이 끝나자마자 성취감이 있었고, 나는 거침없이 다음 작품의 도안을 통 크게 두 개나 주문을 했다. 지금 나의 목표 중 하나는 아가가 나오기 전인 요 두 달 안에 방금 막 완성한 한 작품을 포함해 새로 주문 한 두 작품까지, 총 세작품을 채색 완성하여 아가가 나오고 나면 엄마가 칠한 그림이라고 보여주고 우리의 집에 인테리어로 걸어두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면 또 언젠가는 아가가 나를 편안하게 놓아주는 어느 시기쯤엔 다시 유화의 개수를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설렘 담긴 바람에서.
내가 기존에 하던 너무도 사랑하는 나의 일은 프리랜서 형식이긴 하지만 외형적인 모습이 중요한 연기자이기 때문에 지금은 배가 만삭에 가깝게 나와있어 할 수가 없다. 물론 지금도 섭외가 들어오긴 하지만 이제 두 달 남짓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신랑과의 합의 끝에 출산하고도 몇 달 간은 좀 일을 쉬기로 했다. 연극영화과 전공을 한 후로 신생 기획사에 발탁이 되어 2007년에 MBC에서 별순검이란 작품에서 '미향'이라는 기생 역으로 출연하여 데뷔를 한 이후로 회사와 연장 계약을 하지 않고 혼자 활동을 하며 정확히 2년 뒤에 연기자 등급을 따냈다. 그때는 당장 뭐라도 될 것처럼 무척이나 설레고 가슴이 뛰었더랬다. 곧 떠오를 슈퍼스타를 꿈꾼 게 아니라 내 목표는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친근한 엄마, 할머니 역이 될 때까지 전공을 살려 연기를 하는 것이 꿈이자 내 최고의 목표였으므로. 중간중간에 안 좋은 회사들도 미팅을 하고, 계약을 할 뻔도 했지만 그때마다 날 곁에서 이끌어주고 올바른 판단을 하게끔 도와주신 건 KBS 공채를 먼저 겪으신 엄마의 조언들이 컸다. 그녀는 지금도 나에게 네가 어서 몸을 잘 추스르고 관리해서 지금 들어오는 섭외들을 전부 촬영해야 할 텐데 라고 하신다. 그녀는 본인이 직접 대중매체로 나를 보는 것보다 그녀의 주변인들이 "딸 티비에 나오는 거 방금 봤어! 예쁘다!"하고 말해주는 것들이 좋으신 것 같다. 그런 말들이 또 공채 기간이 끝나자마자 살림 전선에 뛰어든 그녀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나마 충족시켜줌에 만족하시는 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나는 평생 관리를 해야만 하며 고정적이지 않고 매일매일이 변동이 너무도 큰 이런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음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에겐 미처 이루지 못 한 가슴 벅찬 일이며 나에겐 너무나도 애틋하며 매일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 타이틀 롤에 들어갈 소위 '큰 역'을 맡지 못해서 더 갈증이 나는 걸 수도 있지만 하늘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그에게 주신다라는 말을 믿는다. 아직 내가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해서 나에게 아직 주어지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평생 살면서 이루지 못할 꿈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가족과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향으로 떳떳하게 이뤄 내 보고 싶다. 100세 시대가 도래했으니, 난 그중에 1/3도 채 전진하지 않은 삶인데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난 매일매일을 꿈을 향해서 작은 조각조각을 조심스럽게 배치해가면서 나아가고 있다. 문득 그런 말이 생각이 난다. '누군가의 삶의 과정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산을 하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결국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돌아감의 과정을 수 있다' 고. 내가 지나치게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삶이 긍정과 부정으로만 나뉘어 있다면 당연히 긍정의 길로만 걷고 싶은 건 사람의 본능적인 심리 아닌가? 나는 평생 긍정주의자로 살고 싶다. 똑바로 해도 정 긍정, 거꾸로 해도 정 긍정.
연기자의 길은 여자이자 엄마가 되기 위한 나의 아주 기초 밑바탕의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추가 옵션으로 사람이기에 여자이기에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으며 언젠가는 할머니도 되겠지 라고 생각한다. 애당초 나의 목표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할머니 역을 연기하는 연기자가 목표였으니. 연기자는 연기력보다 기본 바탕에 80%는 경험이 연기력을 만들게 되며 20% 답습을 하는 거라고 그 언젠가 모 선배님께서 드라마 회식 자리에서 이야기하시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당연한 과정인 거라는 생각을 나 자신이 가지고 있음에도 엄마가 되고 임산부가 되는 건 참으로 버겁고 힘들구나. 이렇게 몸이 하루하루 아프고 몸살이 날 것 같이 온몸이 쑤시는 고통의 과정인지 겪어보기 전까진 미처 몰랐지! 얘기로만 백번 듣는 건 직접 겪는 거에 비해서 실감이 눈곱만큼도 나질 않으니... 정말 엄살이 아니다, 그렇다고 몸살도 아니야. 이건 그냥 고통이야. 그나마 위안 삼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 요인들이 있다. 내가 꿈꾸는 롤모델인 배우 선생님들 중엔 이미 임신과 출산을 전부 겪고도 아름다운 중견의 모습으로 활동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 나도 언젠가는 그 선생님들의 후대 배우에 합류하고 싶으며 그럴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지 않겠어? 하는 바람이자 기대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내 바람과 기대들을 떠올리면서 입 다무는 거야.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훨씬 더 설득력도 있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테니! 목표가 있어서 오늘도 내가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