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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ADOOW May 16. 2019

자주 게으르고, 자주 행복하다.

자신의 건전함을 믿으라_프랑크 오하라

지금은 잠시 멀리 두는 중인 나의 전공을 공부하던 시절, 그때 나의 일상은 학교와 집 그리고 술의 반복이었다. 학교에 가면 매일 지적 욕구에 따른 자괴감과 자극을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왔지만 술로 인한 나의 체력적 한계는 일상을 삭제했고, 학교와 술 사이 시간 동안 집에선 잠만 자기에 바빴다. 밤이 되면 난 또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요즘’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다가도 울었다. 그런 반복 속에서 마음이  과도하게 몸을 비난하던 굴레의 시간이었다. 마음은 즉 지능과 의지이고 몸은 그것을 행하는 실천력이나 지구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한 시간 동안 반복되는 괴리감은 일상의 큰 흔들림으로 작용하여 작심은 매번 삼일천하로 끝나던 시간들이었다. 그때, 다행히도 나의 옆엔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속속들이 봐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한날은 선생님과 커피를 마시며 학교를 산책할 때였다.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동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또 요즘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 입 밖으로 나온 얘기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저도 백프로로 작업하고 싶은데 아직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많이 자괴감이 들어요.”

그 얘기를 들은 선생님은 엉뚱하다는 듯 나를 보시며 특유의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백 프로로 작업하는 게 어디 있어. 너 집 가면 빨래해야 하지, 청소해야 하지, 밥 먹어야지, 씻어야 하지, 절대 작업을 백 프로로 한다는 건 불가능해, 아무도 못해 그건.”

작업에 대한 꽤나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의 입 밖으로 나온 가벼운 단어들에 처음엔 농담이신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빨래를 하면서는 그만큼 열심히 작업하고 싶다는 뜻을 설마 선생님이 못 알아차리고 그런 농담을 하셨을 리는 없어-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공을 공부하던 시간, 휴학을 하고 매일 출근하는 삶을 살았던 시간 그리고 조금 다른 전공으로 다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요즘까지도 난 아직 몸과 마음의 밀당을 자주 경험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가 많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점은 나는 이제야 그런 말씀을 하셨던 선생님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나는 자주 게으르고, 자주 행복해질 수 있었다. 자취를 시작하며 손길 닿을 때가 많은 집을 하나씩 정리할 때, 주말에는 밀린 빨래를 하고 집 앞 카페에 가는 것이, 일과가 끝나면 간단하게나마 밥을 해서 먹고, 먹고 난 뒤엔 반드시 설거지를 바로 해야 하며 적어도 욕실 선반 속 수건은 다 쓰기 전에 미리 빨아 두어야 한다는 작은 의지들과 조그마한 일상들은 나의 지구력을 조금씩 키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생활이 있어야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을, 결국 건강하게 생활해야 건강한 작업을 오래 할 수 있을 것이며, 때때로 필요한 만큼 일상과 작업의 퍼센티지를 잘 분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다.  그것은 여전히도 일상생활이 벅차서 허덕이는 나에게 안심과 위로가 되었다. 나는 본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그 감정이 우울로 내려갈 때는 그 감정에 취해 있는 것을 좋아했었다. 아무래도 ‘아름다운 것’을 쫓는 사람은 어느 정도 그런 감정에 빠질 수도 있어야 깊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핑계를 대며 나를 많이 풀어헤쳐두던 사람이었는데 나는 이제 그 감정의 위태로움 위에 올라서는 것이 그리 달갑지가 않다. 기분이 울적해 술이 그립고 방탕하게 굴고 싶을 때, 나는 이제 내일 해야 할 조그맣고 귀찮은 나의 일상들이 생각나 결국 그냥 잠들어 버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의 생활을 열심히 해나가는 지루해 보였던 루틴 속의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나의 친구들도 나와 함께 서울로 터를 옮기고 각자의 위치에서 일상을 자리 잡아 나가고 있는데, 친구들은 작업실이 곧 그들의 생의 터전이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친구들은 코인 세탁소에 가는 요일이 정해졌고, 씻으러는 근처 목욕탕으로 다니다가 최근에 그중 한 친구는 헬스장을 등록해 씻을 수 있음과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는 밤을 새우며 함께 술을 먹고 있던 한 친구가 “내일 주말이니 세탁소 가는 날이네. 이불 빨래해야겠다.” 하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는  ‘생을 알뜰히 챙기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던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의 트윗이 생각났다. 새삼, 술을 먹으면서 먼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우리가 당장 내일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것을 실감하며 이불을 등에 지고 부은 얼굴로 슬리퍼를 끌며 코인 세탁소에 가는 친구를 상상했다.

이러한 요즘에는 삶을 열심히 살아내어 나도 작업을 해내자- 라는 생각에 도달하니 몸과 마음의 합의점이 생겼다. 그러한 일상의 루틴들은 분명 나의 지구력을 키워 줄 것이고 언젠가는 나의 작업에 튼튼한 두 다리가 되어 줄 것임을 믿는다. 요즘엔 그냥, 게으른 몸이 핑계를 대면 정신이 다잡아 주어 겨우 학교에 간다.  읽어야 할 책들이 학교에 가면 매일 생기지만 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가고 대신에 공강과 주말엔 최대한 논다, 여전히 자유로움은 일부분 작업의 동력이 될 것을 믿으므로. 그러면서 틈틈이 마감이 다가오는 공모를 떠올리고 기획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다. 졸업반인 내가 해야 할 것이 여러 가지로 뻗어 있어서 그 가지마다 성장은 더디지만 결국 순차적으로 열매를 맺어 세상에도 내 보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여전히 몸의 시간이 마음의 기준에서는 한참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작업을 하려는 마음이 작심삼일이라는 나의 말에 작심삼일을 삼일마다 하라던 선생님의 현답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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