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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ADOOW Mar 30. 2020

우린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일단 믿으라, 그러면 말이 된다. _최진영

오빠와 토요일과 일요일을 함께 보냈다. 애인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애칭을 지어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냥 자주 불러 제일 익숙한 것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좋다. 내가 오빠-하고 자주 부르는 탓으로 아직 오빠에겐 오빠-하고 부르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 오빠는 나에게 작고 많은 것들을 잘 맞춰 준다. 어디서 언제 볼 지 조차 애인의 의중을 많이 생각하는 나는 이 점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오빠는 카페나 작업실에서 자신의 일을 하다가 내가 일을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나의 동네로 와준다. 그러고 나면 헤어지는 순간까지 우리는 언제 어디를 고민하지 않는다. 일어나 지는 데로, 발이 닿는 데로 그냥 길을 나선다. 토요일 밤엔 동동이를 함께 한강으로 데려가 산책을 했다. 동동이가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금세 오빠를 더 좋아했다. 나는 왜인지 동물들이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에게 믿음이 생긴다. 오빠가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엔 새로운 벚꽃거리를 발견했다. 우리는 꽃놀이를 이야기하며 사람이 없고 꽃은 많은 숨은 장소를 찾아내자고 얘기하곤 했었는데, 딱 그런 거리를 찾은 것이다. 기분 좋은 우연이 겹치는 것 같았다. 동동이와 오빠와 그런 길을 걸었다. 집 근처 이자카야에 들러 맥주를 마시며 오빠가 해주는 이야기에 배를 잡고 웃었다. 오빠는 내가 웃는 것에 신이나 고등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줄줄 해주었다. 오빠가 앞으로도 새로운 사람들을 끝없이 만날 것이며 나에게 이렇게 재밌게 이야기해 줄 것이 상상되니 짧은 미래와 먼 미래에 기분 좋은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밤을 보내며, 일요일 아침을 늦잠으로 맞이했다. 오빠는 누군가와 함께 자면 잠을 잘 못 잔다고 말했었다. 그런 오빠가 신경 쓰이는 이유로 나는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뒤척인다. 해가 뜨고 아침 무렵에야 오빠가 조금 코를 골며 푹 자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나도 안심이 되었는지 삼십 분만 더 자자며 한참을 푹 자버렸다. 나중에 말해주길, 오빠는 그때 나도 코를 골았다고 했다. 오빠는 그런 나의 옆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내가 일어나길 기다렸다고 했다. 우리는 일요일에 무엇을 할지 이것저것 많이 이야기했었지만, 막상 그날 아침에도 우리가 무엇을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아침 중에 오빠는 내 책더미에서 반납하지 않았던 학교도서관 책을 발견했고, 더 미루지 말고 책을 반납하러 가자고 했다. 오빠와 함께하는 일요일에 내 밀린 일을 해치우기 싫어서 싫은 내색을 비췄지만 오빠는 꼭 오늘 해야 한다고 나를 부추겼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에코백에 책을 챙겨 오빠와 함께 집에서 나왔다. 오빠와 나는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커피나 향, 자전거가 그렇다. 우린 이제 너무 자주 가게 된 합정역 근처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이제는 오빠 없이는 쓸쓸해질 동네가 생겨버린 것이 벌써부터 아프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오빠와 함께 있을 때마다 종종 따라오는 공포는 다 나의 마음이 너무 커서 비롯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오빠가 향이 좋다며 매번 뺏어 쓰는 나의 핸드크림이 있었는데, 다 써버려 새 것을 사야 하던 참이었다. 오빠가 나의 핸드크림이 향이 좋다며 찾을 때부터 난 그것을 볼 때마다 오빠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오빠에게 하나 사주어야지- 매번 생각했었다. 오빠가 또 손을 씻고 와서는 나의 핸드크림을 찾으며 손을 내미길래 오빠 것이라며 건네었다. 오빠는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임을 그런 순간에서 알 수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내 것을 사며 자기 것을 샀을 거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오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잘 쓰겠다며 오빠의 지갑에 잘- 챙겨 넣는 것을 보니 그리 흐뭇할 수가 없었다. 오빠는 이제 매일 그 향에 나를 떠올리겠지. 날씨가 너무 좋았던 터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우린 자전거를 빌려 신촌에 가 도서관에 책을 반납했다. 오빠 덕에 더 미루지 않아도 될 일이 하나 없어져서 내심 개운했다. 그런 것들을 챙겨주는 사람이라 좋았다. 우린 이제 서로의 팟캐스트 리스트와 서점 어플 장바구니를 공유한다. 그런 것을 공유할 수 있으므로 우린 함께 서점에도 갈 수 있었다. 평소에 내가 읽고 싶었던 소설 한 권을 사서 나와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는 다는지, 걷는 다는지, 그런 매일 해야 하는 반복되는 작은 일상에서도 오빠는 나를 매번 애틋하게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그릇에 고기를 챙겨주면 화들짝 놀라 바로 나의 것을 나의 앞에 챙겨주는 사람, 오빠와 있으면 그런 작은 것들이 크게 와서 닿는다. 오빠와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나는 맥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용기를 내서 오빠의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덥석 잡지는 못하고 오빠의 손을 만지작 거렸는데 오빠는 그것에 기분이 좋아진 표정을 보였다. 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신이나 손을 한참을 만지작 거리며 걸었다. 맥주를 마시면서는 오빠는 내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연신 물었다. 애인과 나의 글 얘기를 한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원래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며 대답을 피했지만, 오빠는 자연스럽게 내 답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었다. 종종 예전에 만났던 애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올 때, 내가 눈치는 빠른 탓에 질문하는 의중을 꿰뚫어 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마치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면접을 보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다행히도 오빠의 질문들은 그렇지가 않아서 나의 경계를 풀어헤쳐 주었다. 결국 테이블에 땅콩 안주까지 집어 들어 사람이라 가정하며 내 글에 대해 열띤 설명을 해버렸고, 오빠는 내 손에 쥐어진 땅콩을 보며 웃었다. 그렇게 오빠와 아쉬운 시간이 지나갔고 오빠를 합정역에서 보냈다. 매번 헤어지면 먼저 연락을 하는 쪽은 나의 쪽이었는데, 이번엔 오빠도 아쉬웠는지 돌아서자마자 메시지가 먼저 왔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함께 보내며 잘 가라는 인사를 보냈다. 나는 똑같이 오빠의 자전거 타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내며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에, 나의 애인과 나의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감격스러운 시간들을 드디어 가질 수 있음에 참 감사했다. 글의 얘기를 할 때만큼은 반짝이는 나의 눈을 누군가는 봐주기를 한참 기다렸으므로. 그런 기분을 마음껏 누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가 벗어두고 간 오빠의 잠옷 바지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잠에 드는 순간까지 이러한 하루를 되돌려 감기 하다가, 휴무인 게 어색한 월요일에 여유롭게 눈을 떴다. 여유로움에 손이 책으로 뻗어져 어제 오빠와 간 서점에서 산 책의 작가의 말을 읽었다.


 -또 많은 날 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분명 살아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버린다. 그러니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 일까. 알 수 없지만, 사랑하고 쓴다는 것은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이다. 살다 보면 그보다 좋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더 좋은 것 따위, 되도록 오랫동안 모른 채 살고 싶다.-


이러한 구절이었는데 나의 현재의 마음에 꼭 들어맞아서 한참을 곱씹었다. 그때, 오빠에게 어제 준 핸드크림 사진과 향이 참 좋다는 메시지가 왔다. 나는 순간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는 읽어보진 못한 책의 제목을 떠올렸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울렁거리는 기분들을 꾹꾹 눌러 덤덤한 문장으로 오빠에게 답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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