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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Oct 18. 2024

가치의 단일화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푼짜리 오페라』 독후감

트레바리 '이참에 읽자' 북클럽,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푼짜리 오페라』

[개요]

극문학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두 희곡인 〈서푼짜리 오페라〉와 〈억척어멈과 자식들〉을 읽었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근대에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해진 사회를 런던의 하층민 사회를 배경으로 비판하고, 〈억척어멈과 자식들〉은 17세기에 종교를 빌미로 일어난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의 상업성을 비판한다.


거래는 내가 가진 것과 상대가 가진 것을 교환하는 것이다. 거래를 통해 우리는 각자 필요한 것을 얻는다. 다만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내게 없으면 나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돈으로 다양한 재화를 대신한다. 물건, 시간, 능력, 그 외 누군가 필요로 하는 것에는 모두 값이 매겨진다. 하지만 돈이 점점 더 많은 가치를 대신하게 되면서 돈은 다른 가치들보다 더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거지들의 왕 피첨은 행인들의 동정심으로 돈을 번다. 그는 거지들에게 행인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성경 격언이나 분장 도구를 대여해 거지들이 돈을 벌도록 하고, 그들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사업을 확장한다. 돈을 제대로 벌어오지 못하는 노동자는 가차 없이 해고된다. 거지를 해고하는 장면에서 요즘은 예술가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피첨의 대사는 예술마저 자본의 논리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피첨의 딸 폴리는 그의 노후 자금이다. 좋은 남자에게 시집 보내기 위해 금이야 옥이야 키운 것인지, 폴리는 책을 좋아하고 진실한 사랑을 믿는 낭만적인 여인이다. 그런 폴리는 도둑들의 왕 매키와 사랑에 빠진다. 매키는 도둑이지만 경찰서장 브라운의 오랜 친구로, 브라운이 매키의 범죄를 눈감아주는 대신 매키는 브라운과 돈을 나눠 가진다. 매키와 브라운은 그들의 양심과 돈을 바꾼다.

피첨의 소중한 노후 자금인 폴리를 노리고 결혼한 매키는 노후 자금을 날리게 된 피첨에게 쫓기는데, 피첨은 매키의 전 동거인인 창녀들을 돈으로 매수해 매키를 잡는다. 창녀들은 매키와의 사랑을 돈으로 바꾼다. 인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의 동정심, 부모/연인의 사랑, 양심은 돈으로 교환된다.

돈에 대한 사람들의 맹신은 거지들을 향한 동정심을 고용주가 가져가도록, 딸에 대한 사랑을 아버지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도록, 연인에 대한 사랑을 자신에게 표현하도록, 직업의 의무 대신 자신의 욕심을 지키도록 사람들을 부추긴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해피엔딩과 그 역시 돈 덕분에 해피할 수 있는 엔딩이라는 것, 이 결말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피첨의 대사가 씁쓸하게 느껴진다.

돈은 결국 숫자다. 숫자는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로 읽히는 절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숫자를 아는 모두가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숫자라는 질서는 다량의 자원들을 하나의 움직임으로 엮는 힘이 있어 온 나라의 힘이 집결되는 전쟁에 사용된다. 전쟁은 윤리적으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일단 시작되면 결국 사람들은 좋든 싫든 전쟁에 기여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게 된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원래의 경제 체제가 아닌 새로운 경제 체제가 만들어진다.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 전쟁은 그저 다른 형태의 경제 생태계일 뿐이다.

〈억척어멈과 자식들〉의 억척어멈 안나는 전쟁터에서 군대를 따라다니며 물건을 팔는 종군 상인이다. 안나와 군인들은 전쟁을 통해 돈을 벌어 이득을 취한다. 그래서 이들은 전쟁을 끔찍이 여기면서도 찬양한다. 모병관은 전쟁으로 먹고 살려면 뭔가 기여를 해야 한다며 첫째 아들 아일립을 군대로 데려가려 한다. 하지만 안나는 자기 자식들이 죽을까 봐 군대에 가는 것은 반대한다. 안나는 가족들과 군인들의 점을 쳐보며 자식들이 모두 죽게 될 결말을 보고 아일립을 조심시키지만, 상사에게 혁대를 파는 동안 아일립은 모병관과 함께 떠난다.

3년 뒤 둘째 아들 슈바이처카스도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출납계장으로 금고를 지키는 일을 맡았는데, 그가 억척어멈과 함께 있는 동안 가톨릭 군대가 쳐들어와 억척어멈은 포로가 된다. 하지만 장사꾼은 종교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종군상인이 없는 가톨릭 군대에 잡힌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안나는 군목과 함께 가톨릭교도인 척 하기 위한 깃발과 고기를 사러 자리를 비운다. 첫째 아들 아일립 때와 마찬가지로, 안나가 자리를 비운 사이 둘째 아들 슈바이처카스가 가톨릭 군대에 끌려간다. 아들의 목숨을 걱정하는 와중에도 억척어멈은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하며 값을 흥정하다가 시간을 너무 많이 끌어 슈바이처카스는 결국 총살 당하고, 억척어멈은 시체 버리는 곳으로 옮겨지는 아들의 시신을 지켜만 본다.

이후 평화와 전쟁이 반복되며 전쟁은 계속 이어진다. 억척어멈은 두 아들 없이 벙어리 딸 카트린과 장사를 하며 16년이라는 세월을 버틴다. 그러다 한 마을에 잠시 머물며 피난 지역에서 새 물건을 사오기 위해 자리를 비운다. 역시나 억척어멈이 자리를 비운 사이 가톨릭 군이 마을로 진입해 농민들을 위협하고, 카트린은 그들이 기독교 도시 할레를 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북을 쳐 할레 시를 깨운다. 그 대가로 카트린은 목숨을 잃는다. 억척어멈은 농민들에게 카트린의 장례비를 주고, 첫째 아들 아일립이 죽은 것을 모른 채 그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군대를 따라간다.

억척어멈은 전쟁 중 장사 활동을 하는 동안 자식을 모두 잃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전쟁을 생계 수단으로 삼는다. 그녀는 자식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을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생계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찬양하는데, 이들 덕분에 전쟁은 계속 생명을 연장해 나간다. 하지만 일개 소시민인 억척어멈에게 전쟁으로부터 이익을 얻지도 주지도 않는 완전무결한 선택지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윤리적 가치들에 값이 매겨지고, 단일화된 가치들은 줄세워져 비교되고 거래된다. 그런 거래들이 국가 단위로 커진 결과가 전쟁이다. 단일화는 효율과 소외를 동반한다. 모든 선택에는 소외가 따르지만, 돈에 대한 선택은 너무 많은 소외를 가져왔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 돈을 제외하고 거래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돈의 효율을 누릴 수밖에 없다면, 내가 누리는 효율만큼 숫자 뒤에 가려진 소외된 가치들을 볼 줄 아는 시선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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