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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라톤 Apr 02. 2024

일용할 양식이 뭐야?
오늘 밥을 준다고?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일입니다. 먹고사는 일보다 뭔가 거대한 담론을, 정치구조, 외교 경제 등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고 멋있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먹고사는 일만큼 긴급하고 고민되는 일은 없습니다.

결제일보다 더 중요한 이벤트는 사실 없습니다. 마른 수건의 물기를 쫙 짜내듯 가진 모든 돈을 털어서 결제를 마친 후 항상 감사하며 “휴우…지나갔다” 안도의 숨을 쉬며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일처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 고개를 넘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며 역량을 기릅니다. 사실 리더십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돈 문제 해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덕목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능력은 단연코 하루를 버티는 힘이며 하루가 쌓여 일주일, 한 달, 일 년, 인생으로 퍼져나갑니다. 믿음은 자립하여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매일 먹고사는 일을 감당할 때 자랍니다. 도망가고 싶지만 가족과 공동체를 생각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우리를 현실의 땅으로 잡아당깁니다. 잡아당기는 그 힘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부르심이 만약 내가 원해서 기쁨으로 저요!! 하고 가는 길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대부분 부르심은 어쩔 수 없이 머무르는 곳에서 뿌리내립니다. 저요!! 하고 갔더라도 곧 잡아당긴 하늘의 뜻이라는 실체를 마주하고 좌절하며 몸부림칩니다. 일용할 양식은 바로 그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진 삶을 책임지는 하나님의 손길 전부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오늘은 일용할 양식을 통해서 삶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필요를 아신다.  

마태복음 6장 31-32절입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일상에서 먹고 마시고 입을 것에 대한 잠깐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염려하여”에 초점을 맞춰볼까요? 걱정하며 “아 이제 뭐 먹고살지?”라는 고민은 좌절, 낙심의 상황에 처했을 때 나오는 한탄에 가깝습니다. 감사를 주제로 말씀을 함께 살폈을 때 감사의 첫 번째 조건이 무엇이었죠?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억함으로 주께서 베푸신 손길로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며, 그의 주권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주인은 돈입니다. 바로 앞에 나오는 6장 24절입니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희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흥미로운 것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면 하나님 아니면 석가모니나 자연 힌두에서 섬기는 다른 신을 언급하는 것이 논리에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니면 재물을 섬길 수밖에 없다고 일갈하십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모르거나 거부하니 그들은 재물, 돈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섬기기에 그들의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이 하늘 아버지는 바로 나를 통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하나님, 나의 예배, 삶을 받기 합당하신 하나님입니다.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삶을 드리기로 결정한 회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통해 만난 참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광야 학교에 입학하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돈이 주인 행세를 하는 세계에서 우리를 끌어내셔서 가르치시고 경험하게 하셔서 하늘의 뜻이 실제로 삶에서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언제? 바로 매일의 오늘입니다. 그분은 내일 필요할 것이 아닌 매일의 오늘, 그의 자녀인 내가 필요한 것을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광야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들이 현실의 필요를 배고픔으로 느끼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머리로 하늘의 영광이 배고픔의 필요를 채우고 열두 광주리나 남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푹 빠질 때에도 여전히 우리는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이기에 배고프고 옷 입어야 하고 출근하고 일해야 합니다. 별반 이방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별한 우리의 빛을 보시고 하늘의 창고를 여시사 우리의 일터에서 채우십니다. 정확하면서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했다는 것으로 자랑삼지 못하게 딱 필요한 만큼만 주십니다.”

2. 하루를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한 만큼 양식을 주신다.

출애굽기 16장 18-21절입니다.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21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만나가 찾아왔을 때 그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다음날까지 놔뒀습니다. 그런데 썩었지요 벌레가 나고 냄새로 났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너무도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만큼만 거두고 남겨두지 않고 다음날에는 그날에 주시는 것만 먹고사는 연습을 40년 동안 반복했습니다. 

“하루의 공급하심 하루의 은혜로 족하다”를 배운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더욱 철저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곤란합니다. 책임감도 준비성도 없잖아요?’

네 맞습니다. 준비하고 걱정하고 가슴을 졸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예수님도 일용할 양식, 즉 하루에 필요한 만큼만 주시는 대로 먹고 만족하며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왜일까요? 잠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배웁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마무리하는 모든 여정이 잠을 경계로 이루어집니다. 잠을 통해 우리는 참 안식과 평안을 얻습니다. 동시에 완벽한 무기력함과 생명을 가져가도 손쓸 수도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확인합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바로 창조의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시간의 경계는 하루, 오늘, 매일이었습니다. 창조 순간부터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지속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입니다. 반드시 인간은, 피조물은 어디에 있든지 저녁과 아침의 경계를 허물며 오늘을 맞이합니다. 시공간을 뚫고 하나님의 양식이 삶을 채웁니다. 저녁에 되고 아침이 되어 다시 생명을 얻었으니 생명의 주인께서 주시는 양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의 방식이자 천국의 방식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가 일용할 양식 바로 앞에 배치된 이유입니다. 오직 하늘의 아버지 자녀들이 하늘나라의 통치 가운데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공급과 사랑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을 차려주는 엄마에게 그렇게 큰 사랑과 은혜를 빚졌는지도 모릅니다.

3. 그 양식으로 나의 길이 열린다.

일용할 양식은 단순히 먹을 것의 공급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먹을 것이 공급되는 방법과 위치를 찾아헤맵니다. 직업과 소명의 경계선에서 우린 고민합니다. 과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살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자녀들의 매일의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동시에 다른 직업과 재능을 통해서 그 통로를 다양하게 준비하셨습니다. 

부르심의 길은 억지로 끌려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지만 사실 그곳에서 가장 나에게 적합한 직업과 사업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바다같이 넓은 직업의 세계에서 획일적으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줄 세워 학벌 지상주의를 탄생시킨 교육은 200년도 채 되지 않는 억압 책입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다양성과 존재 의미를 성적으로 줄 세워 획일화시키려고 도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무너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 푸른 초장과 혹독한 자연에 맞서며 살기 위해 기술을 갈고닦으며 창조자께서 허락하신 달란트를 발굴하며 살았던 세계가 훨씬 유래도 깊고 문명을 발전시킨 힘이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들어가 고센 땅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출애굽기 46장 31-34절입니다. 그냥 넘어 들어가지만 정말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33   바로 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기이다  

가나안 땅에서 먹고살기 위해 목축을 했던 야곱의 가족들은 목축을 천시하던 이집트 사람들의 특징 때문에 독립된 영토인 기름진 고센 땅을 받습니다. 그곳에서 자치권을 획득하고 강력한 부흥을 이룰 수 있는 초석을 닦습니다. 하나님이 꿈으로 말씀하신 기근이 없었다면 식량을 찾아 이집트에 올 일도 없었을 것이고 요셉을 만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대부흥을 맛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직업은 또 어떻습니까? 부르신 가나안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목축업으로 그들은 자치권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말씀으로 사는 독립된 영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먹고 살길과 더불어 부르신 땅을 허락하셔서 다스리게 하십니다.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던 직업과 일터가 하나님의 통치로 이미 예비된 여정임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일용할 양식을 통해 부르심에 순종하는 법을 배울 뿐 아니라 허락하신 새 땅을 불하 받는 일이 이어집니다. 영토 국민 주권이 갖춰지니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우리 삶에 대한 강력한 하나님의 도전입니다. 도전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만 의자 할 수밖에 없는 삶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죄와 사망의 땅에서 가장 힘든 일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일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 통치하시도록 삶을 위탁하는 여정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삶입니다.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나의 생각과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때 제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맺음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삶은 나의 무기력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의지하는 삶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한심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인으로 섬긴다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삶을 촉구하십니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경험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입니다.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오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막다른 곳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새로운 문을 열어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끕니다. 좌절의 마음을 붙잡고 그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할 때 우리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려면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행동의 변화가 생길 수 없습니다.  그 감정을 다스리는 힘은 일용할 양식을 부어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또한 모두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아픔은 지나가고 좌절과 아픔도 모두 지나갑니다. 영원한 것은 영혼, 천국의 빛으로 빚어진 하나님의 숨결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빛으로 빚으신 영혼의 그릇인 육체가 살아갈 길을 반드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찾을 것이며 열리는 문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경험하며 빛의 길을 따라 한 걸음씩 걸을 때 바로 그 문이 열려 소망의 빛으로 삶을 감쌀 것입니다. 바로 그 삶으로 인도하실 주님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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