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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라톤 Apr 22. 2024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태복음 6장 13절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시험에 들면 죄의 사슬에 메우고 사슬에 메인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악은 어둠으로 가득한 종속의 공간이며 그곳에서 소망과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다시 말해 악은 지옥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을 말합니다. 

현실이 지옥인 삶, 삶 자체가 지옥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헬 조선이라는 단어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힘으로 모든 천체와 빛까지 빨아드리는 천체를 뭐라고 부르죠? 블랙홀이라 부릅니다. 왜 블랙입니까? 모든 것을 빨아당겨 한 가지 검은색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악하면 무슨 색이 떠오릅니까? 당연히 검은색이죠.

왜 악하면 검은색이 떠오를까요? 모든 것을 빨아들여 검은색으로 만들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빛과 각기 아름다운 색깔들이 사라지고 하나로 섞여 사슬에 메이기 때문입니다. 검은색 물감에 다른 물감을 섞으면 모두 검은색이 됩니다. 흰색을 섞어야 옅어집니다. 빛으로, 깨끗함만이 악을 희석시킬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습관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함을 살폈습니다.

악은 질문을 거부합니다. 의견이 없고 오직 종속된 사슬만 있을 뿐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는 자유를 뺏고 억압하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게 겁박합니다.

문제는 바로 시험에 빠지는 순간 내 인생과 영혼의 울부짖음을 내가 틀어막고 그대로 죽음의 길로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오직!! 악에서 이 올무에서만 구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의 이유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악(악한 자)에서 구하시기 위한 (다만)이란 단어는 영어로는 but, 헬라어로는 알라 그러 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전할 때도 여전히 악, 대적 마귀는 우리를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간절한 예수님의 소망이 담겨있는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길을 만드시기 위해 그 악을 이기는 십자가의 부활로 우리의 삶을 끌어내셨습니다. 오늘은 2가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를 삶에 펼치기 위한 전략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실존하는 악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라 

전 시간에 나눈 것 중 핵심은 시험에 들면 내가 시험의 올무에 빠졌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냥 올무에 빠진 삶이 당연하게 삶을 지배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땅 비유 말씀을 듣고 내가 좋은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치명적인 함정입니다. 좋은 땅은 30배 60배 100배의 말도 안 되는 수익률을 보여줘야 하는데 단순히 신앙생활 잘 하는, 교회 일 잘하는 목사 말 잘 듣는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거짓말입니다.

좋은 땅은 완전히 패러다임이 전환된 삶으로 실제 기존의 수익 대비 30배 60배 100배의 수익을 경험하는 일인데 정말 극소수만이 이 길을 걷습니다. 저도 최근에 이 말씀의 실체를 깨닫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 말씀입니다.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자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능력과 권위를 주신 후에 그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경험한 제자들

은 본게임으로 합류합니다. 5천 명의 기적입니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쭈우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 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여라” 하십니다. 능력을 경험했으니 실제 하는 사람들을 먹이는 실존 문제에 능력을 검증하도록 하십니다. 단순히 우리는 이 본문을 예수님의 기적과 같은 능력, 하나님의 공급하심, 우리의 작은 것을 드렸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은혜로 돌아온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천천히 처음부터 9장 1절부터 읽어보니 “너희들이 먹여라”가 예수님의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임을 증명한 내용이지만, 예수님의 궁극적인 의도는 “너희가 먹여라” 좋은 땅으로 훈련을 받는 여정에서 권능과 능력을 입은 자들은 결국 30배 60배 100배로 퀀텀점프할 수 있는 완전히 달라진 접근 방식을 하늘의 뜻으로 이 땅에서 경험하도록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죠.

여전히 제자들은 현실의 높은 벽만을 바라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 안사면 안됩니다.

이것이 실존하는 악에 사로잡혀 전혀 권위와 능력을 받았음에도 살던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면 바로 권위와 능력도 포기하고 마는 것을 거품 물고 쓰러지는 아이와 아버지 일화를 통해 우리를 분명하게 알지 않습니까?

실존하는 악은 평범한 우리를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입었음에도 익숙함에 사로잡혀 거대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막아버립니다. 파리 한 마리가 방에서 나가려고 합니다. 문이 닫혀있는데 계속 그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며 나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데 반대편에 삐익하고 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 파리는 그곳으로 가려는 생각조차 안 하고 계속 창문에 머리만 박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더 열심히 해도 나갈 수 없습니다. 파리가 방에서 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제자들은 권위와 능력을 입었음에도 살던 대로 사 먹어야 합니다. 돈이 없습니다. 마을로 보내세요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먹여라"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럴 의향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존하는 악이 능력과 권위로 하늘의 통로를 뿜어내는 것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축사하시고 2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오셔도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자의 길을 가고 싶어만 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실존하는 세계의 악은 우리를 시험의 올무에 가두고 더 이상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예수님은 “사 먹으라고 하세요”라고 했던 제자들에게 하늘의 창고를 여는 기적을 보이신 후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며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자신을 누구라고 물어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의 대답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9장 23-24절입니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구원받아 천국 창고를 여는 좋은 밭이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자신이 추구하던 인생 패러다임을 완전히 버리고 죽이고 쫓아오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실존하는 악이 우리의 삶에 덮여 시험의 올무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2. 실존하는 악은 실존하는 빛, 복음으로 승부하라

악도 실존하지만 빛, 복음도 실존합니다. 둘은 전쟁합니다. 선와 악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영토전쟁을 치릅니다. 우리가 예수의 보혈로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빛의 세계, 복음의 세계,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세계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현실, 우리가 육체로 밟는 땅은 악이 주인 행세를 하는 곳입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점령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거짓으로 선의 세계를 조작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입으신 능력과 권위를 부어주셨지만 여전히 우리는 과거에 살던 대로,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루하루 허덕이며 사는 습관의 올무에 빠져 시험에 들고 악의 세계의 세계관대로 삽니다. 열심히 하면 다 된다는 올무에 빠져 여전히 그대로 습관대로 땅을 바라보며 열심히 삽니다.

잘못된 길에서 열심히 할수록 더 깊은 늪에 빠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여라” “제자를 삼아라” 아니 도대체 무슨 수로 2만 명을 먹이며 무슨 수로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으로 살며 말씀을 가르쳐지키도록 제자를 삼는단 말입니까?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자신의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삶에 직접 적용해서 좋아 밭이 돼서 실존하는 복음과 천국 창고의 문이 열려 우리의 삶에 쏟아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방식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일말의 인간이 자신을 자랑할 거리를 남기시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도 버려야 합니다. 상황과 환경 가운데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쫓아 말씀이 이끄는 길로 부끄럼 없이 전진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실존하는 악에서, 시험에서, 늪에서 빠져나올 유일한 방법입니다.

향유 옥합 여인, 혈루증 걸린 여인,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중풍병자, 맹인, 죽은 나사로 모두 그들은 사람들에게 끝난 인생이라 조롱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버려두고 주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선포된 말씀의 시대가 아닌 기록된 말씀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사실 난이도가 좀 더 높은 것 같기는 합니다만 대신 우리에게는 완성된 성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삶을 뒤집어야 합니다.

다만(but) 악에서만큼은 구할 하나님의 손이 필요하다는 주님의 기도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이미 시험의 올무에 걸려있으니 하나님의 손만이 그곳에서 꺼낼 수 잇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은 반드시 매일 우리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요? 그건 습관대로 올무에 빠진 채로 살기 때문에 나오는 악의 세력의 방해공작을 받은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매 순간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모를 뿐, 늪의 소리에, 과거의 습관과 환경의 올무에 걸려든 채 그것만 바라보기 때문에 못 들을 뿐입니다.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은 상황과 환경 가운데 일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 바로 그 모든 공급하심과 일하심과 준비하심을 경험하는 열쇠입니다.

맺음말

극한의 한계에 몰리는 상황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영역에 그것 아니면 이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존심도 버리고 시작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의 장으로 때로 감당될 정도의 끝까지 밀어붙이시는 이유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악의 세계에서 생존하고 복음의 길로 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먹여라” “제자를 삼아라” 먹이라고 하신 후 기도로 하늘의 문을 여셨습니다. 먹일 수 있는 분량을 채우는 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명령과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십니다. 눈을 뜨고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비로소 제자를 삼는 사역을 시작할 수 있고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 하늘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부르신 땅에 쏟아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반드시 이 경험을 할 것입니다. 함께 합시다. 혼자서는 못합니다. 찾아냅시다. 내 삶의 재정의 문도 열리는 방법을 찾고 교회의 대부흥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동안의 방법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너무 큰 대가를 치르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바꿔야 합니다. 될 때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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