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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Nov 08. 2023

발리 시장에서 생긴 일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우붓의 시장을 걷다 보면 노점마다 형형색색 천이 가지런히 내걸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알록달록하니 여행자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이것. 바로 사롱(Sarong)이다. 남아시아 국가에서 긴 천을 허리에 둘러 입는 복장을 말한다. 전통 바틱 기법으로 염색해, 총천연색의 색깔과 무늬를 자랑한다.


사롱은 여행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건을 모두 갖췄다. 가볍고, 싸고,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발리의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숄로도, 해변에선 수영복을 가리는 스커트로도, 가볍게 깔고 앉는 매트로도 사용 가능하니 말이다.


아름다운 색깔의 인도네시아 사롱(위 사진은 글에 나오는 특정 상점과 연관이 없습니다).


각설하고, 이 사롱을 사려고 들른 우붓 시장의 맨 끄트머리에 위치한 이 문제의 상점. 주인아저씨는 온갖 감언이설로 내 귀를 홀리더니(“너는 피부가 하야니까 모든 색깔이 다 잘 어울릴 거야”, 등등) 난데없이 50만 루피아(한국 돈 약 42,000원)를 부른다. 원래 이렇게 비싼 건가 싶어 살짝 당황하니, 크게 선심 쓰듯 갑자기 가격이 쑥 내려갔다.


가게를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진 않다. 알고 나니 사롱은 적게는 오천 원부터 가격이 형성된단다. 고급은 다르다지만, 천편일률적인 물건을 떼다 파는 작은 시장 한편에 있는 상점에서 그리 고급 물건을 가져놨을 리도 없는 터.


그 주인아저씨, 날 상대로 한몫 단단히 챙긴 것 같다고 방방 뛰니 M이 위로하며 말을 건넨다.


“기분 많이 상했겠지만, 이런 일은 여행 중에 한 번쯤 누구나 겪는 일이고, 중요한 건 지금 여행을 즐기는 마음일지도 몰라. 아직도 이 사롱은 너에게 잘 어울리고, 네 여행은 막 시작했으니까. “


그래. 누구나 여행하다 바가지 한번쯤은 쓸 수 있지.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내 눈앞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는 걸. 그날 발리 시장에서 있었던 일은, 나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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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Sunyoung Cho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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