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당연한 얘기지만, 이혼소송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갈등이 극심해졌으니 갈라서자는 선택을 했을 것이고,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상태에서 소송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안티는 돌아선 팬’이라는 말이 있다.
한 때 나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사람이 적이 되면 가장 무섭다는 말이다.
나는 이혼소송을 하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이혼소송이 다른 법적 분쟁에 비해 힘든 점은, 내가 공격하고 또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한 때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이라는 점이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사생활을 속속들이 밑바닥까지 들춰내거나, 인신공격까지 불사하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뿐인가. 결혼제도에서 원가족과의 관계를 떼놓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상, 서로의 가족에 대한 비방과 비난으로 이어지는 일도 허다하다.
※ 참고로, 법률서면에서 변호사의 정리(각색) 과정은 대략 이러하다.
-갑돌이가 적어 보낸 진술서:
갑순이 저 인간은 아주 소 xx 개 xx 나쁜 xx
소갈딱지가 간장종지 같은 인간!
-변호사가 정리한 문장:
이해와 포용이 전혀 없는 태도로 평소 배우자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부부 사이의 일은 둘만 아는 것이고, 완전한 사생활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혼소송은 그 ‘부부의 일’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정싸움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감정싸움’에만 매몰되곤 하는데, 다시 말해 싸움의 초점을 착각하는 것이다.
이혼소송에서 판단받는 대표적 항목들은, 1) 이혼여부, 2) 위자료, 3) 재산분할, 4) (아이가 있는 경우) 친권자 및 양육권자, 5) 양육비, 6) 면접교섭이 있다.
여기서, 상대방의 ‘잘못’ (바람, 폭행, 폭언, 기타 유책사유들)을 반영하는 항목이 [위자료]다.
위자료는 무조건 인정받는 것은 아니고, 위자료를 청구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구체적인 주장과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소송의 종류를 불문하고 위자료가 정말 낮은 편에 속한다.
이는 이혼소송에서도 다르지 않은데, 상대의 잘못에 대한 주장과 증거를 상세히 제출하여 인정을 받는다 해도 그 액수가 실무상 1,500만 원-2,000만 원 남짓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수 천만 원 이상의 위자료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사실관계가 특이한 일부 사례의 경우다).
반면, 재산분할의 경우 아파트 한 채만 있더라도 분할하는 액수 자체가 위자료보다는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5억짜리 아파트를 대출 없이 가지고 있는 부부의 경우 한쪽 배우자가 재산분할을 40% 인정받느냐, 50% 인정받느냐 하는 차이가 5,000만 원의 격차를 불러온다.
나눌 재산 없이 위자료만 다투는 경우라면 당연히 위자료에 목숨을 거는 것이 맞지만,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모두 다투는 사건의 경우 액수상 더 중요한 싸움은 당연히 재산분할일 것이다.
그러나 이혼소송 당사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적 분노 때문에 ‘상대방 비난하기’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혼 소송까지 온 이상 상대방에 대한 할 말을 밤새 늘어놓아도 모자란 상태라는 건 당연히 이해가 간다).
이 때는 변호사가 당사자에게 객관적인 조언을 해주고, 방향을 설정해주어야 한다.
갑돌: 제가 할 말이 많아서요. 1998년 7월 25일 아침에 있었던 일부터 지금까지 배우자에게 서운하고 화났던 일들을 총 50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전부 제출해 주세요.
변호사: (할 말을 준비하며 숨을 고른다)
상대방의 귀책에 대한 주장과 증거를 이미 제출했다면, 그 잘못에 대해 열 마디를 하든 백 마디를 하든 위자료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즉,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서만 계속 지적한다고 해서 소송에서 승소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참고로, 재산분할과 양육권은 위자료와는 별개다. 즉, 유책과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재산분할의 경우 상대방 명의의 재산을 조회하고 재산형성에 관한 각종 자료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제출하는 일들이 필요하다.
만약 양육권 다툼이 있는 사례라면, 내가 아이를 어떻게 잘 양육할 계획인지를 입증하고 판사를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상대방과 서로 꼬투리를 잡고 맹비난하는 진흙탕 싸움을 반복하다 보면 초점이 빗나가 나머지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는 것이다.
이 초점을 잡아주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 중 하나다.
이혼소송은 향후 홀로서기 할 냉혹한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을 내가 양육해야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때론 위자료가 포기의 대상이 되거나 협상의 카드로 사용될 때도 있다.
A 씨의 경우도 그랬다.
이혼사유는 아내의 외도였는데, 그의 아내는 외도를 들킨 사실을 알게 되자 아이들도 두고 집을 나가버린 상태였다.
가출 후 며칠 만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는데, 조용히 협의이혼을 요구했다고.
이미 외도 증거는 충분한 상황이라, A 씨는 아내와 협의할 생각이 없다며 당장 소송을 진행해 달라며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소송을 진행하면 A 씨가 상당한 재산분할을 아내에게 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A 씨 명의 아파트의 실거래가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던 상황인 데다, 미래에 수령할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금도 상당했다.
A 씨에게 차분히 설명을 드렸다.
아내의 유책(외도)이 있으니 아내로부터도, 상간남으로부터도 당연히 위자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위자료는 한 사람당 많아야 2,000만 원 남짓일 것인데, 아내가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을 청구한다면 최소한 40%가량은 받아갈 것이라고.
A 씨는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냈다.
아내는 결혼생활 중 숱하게 외도를 반복하며 유흥을 즐겼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본 적도 없는데 재산분할을 왜 해줘야 하냐며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그 큰 현금을 어떻게 마련하냐며, 그럼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막막해했다.
당연히 A 씨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외도를 해서 집을 나가버린 것은 상대방인데, 재산분할로 훨씬 많은 돈을 주게 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하지만 A 씨가 이혼소송을 제기해서 아내도 A 씨에게 재산분할을 청구한다면, A 씨가 아내와 상간남으로부터 받을 위자료는 총 3~4천만 원에 그치는 반면 아내가 A 씨에게 받아갈 재산분할금은 수억 원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오랜 논의 끝에, 결국 A 씨는 아내와 협의를 보기로 했다.
A 씨의 아내는 빠르게 이혼을 끝내는 것을 원했고, A 씨 입장에서는 최대한 재산분할을 적게 주어 향후 아이들을 데리고 살 기반을 지키는 게 중요했기에 다행히 양측에서는 원만한 협의가 이루어졌다.
A 씨의 아내는 (소송에서 다퉜더라면 40% 정도는 받았을) 재산분할금을 20%가량만 받고 이혼하는 것에 동의했고, A 씨는 아내와 상간남을 상대로 외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기로 동의했다.
결국 이 협상으로 인하여 A 씨는 1억 원 이상의 금전적 이득을 보았고,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다.
물론 모든 선택의 기준이 돈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싸움의 초점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웠기에 후회 없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혼이 늘 ‘사이다 결말’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소송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꼭 질문을 던져야 한다.
뭣이 중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