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 007 아이점령작전
누군가 내게 이혼소송에서 가장 힘든 쟁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백 번을 물어도 <양육권>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혼과 위자료, 재산분할은 어디까지나 부부 사이의 다툼이지만, 양육권은 아이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다.
물건이나 돈을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새끼'와 관련된 문제기에 부부에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반반무많이'하듯 기계적으로 정할 수도 없고, '옛다 기분이다!'하고 선심 쓰듯 양보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양육권에 대한 의사는 법원에서도 이혼 동의 여부 다음으로 가장 먼저 확인하는 항목이기도 하다.
갑돌 : 아이는 제가 키우겠습니다!
갑순 :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내가 키워야지!
갑돌: 저 인간이 키우는 건 절대 못 봐요
갑순: 누가 할 소리?!
법원: 그럼... 아이는 공평하게 5대 5로....
갑돌, 갑순:....!
부모가 친권행사자 및 양육권자에 동의가 된 경우 법원은 이를 그대로 따른다.
즉, 아이를 누가 키울지 엄마 아빠 사이에 이미 합의가 되었다면 양육권 다툼은 할 필요가 없다.
(변호사들이 내심 안도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가 서로 자녀를 양육하겠다고 하는 경우 (또는, 안타깝게도 둘 다 '난 안키울련다. 네가 키우라'며 미루는 경우)에는 재판부의 법적인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법원에서는 '양육환경조사'라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가사조사관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나 보조양육자 (양육을 도와주는 사람)의 존재, 향후 양육계획, 아이들과의 관계,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명백히 밝힐 수 있는 연령인 경우) 자녀들의 의사 등을 살핀 후 그 내용을 재판부에 보고한다.
이 때, '내 의뢰인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또는, 상대방이 아이를 키우면 안 되는 이유)를 담은 구체적인 서면을 증거자료와 함께 제출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다.
그런데, 실무상 양육권 판단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은 소송 중에 누가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지 (즉, 아이가 지금 누구랑 지내고 있는지) 여부인 듯하다.
특히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 미만의 어린 연령인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때문에, 이혼소송에서는 자녀를 선점하기 위한 비밀작전(?) 세우는 상황이 흔히 발생한다.
아이를 누가 키울지 부모 사이에 합의가 되지 않은 경우, 법원에서는 소송 중 임시양육자를 지정한다.
추측컨대 임시양육자 지정제도가 생긴 이유는, 판결을 통해 최종 양육권자가 정해지기 전 기나긴 소송 기간 동안 비양육자가 주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는 한편 주기적으로 자녀들과의 만남 ('면접교섭'이라 부른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바람직한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임시양육자가 최종 판결에서도 그대로 양육권자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임시양육자 결정 전에 자신이 먼저 아이를 데리고 있으려는 싸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자녀가 최소한 초등학교를 다니는 연령이라면 전학 등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하루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잠적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동이 자유로운(?) 미취학 아동일 경우 하루아침에 아이를 뺏기기도 한다.
상대방이 출근한 사이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린 뒤 소송을 시작하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아 어린이집 하원을 시킨 뒤 그대로 부모님 댁에서 잠수를 타는 등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어리고 부모 사이 양육권 다툼이 있는 경우 변호사는 '아이를 뺏기지 않게 조심하라'고 조언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갑순: 변호사님! 변호사님! 퇴근을 해서 왔더니 남편이 애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버렸어요. 아이를 왜 데려가냐고 따졌더니, 법대로 하자고 해요. 어떡해요?
평소 아이를 주로 돌보았던 쪽이 아이를 데리고 가 버린 경우라면 차라리 낫다.
변호사로서 가장 어렵고 난감한 때는, 평소 아이 양육에 참여하지도 않고 양육 의지도 없었던 상대방이 하루아침에 말없이 아이를 데려가버린 뒤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다.
이 경우, 진짜로 아이를 양육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악감정 때문이거나 이혼소송에서 유리한 입장을 만들기 위한 목적일 때가 많다.
평소 아이의 주양육자였던 쪽에서는 하루아침에 아이를 뺏겼으니 하늘이 무너지는데, 아이를 다시 데려올 수 있는 법적인 절차는 길고 험난하기만 하다.
(소송 중 '아이를 내게 데려오게 해 달라'는 신청을 '유아인도 사전처분'이라고 하는데, 사전처분을 신청한다고 해도 그 결정이 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리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시양육자가 상대방으로 결정되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피가 마를 수밖에 없다. 변호사로서 가장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는 20대 젊은 여성이 이혼 상담을 왔다.
그의 남편은 다양한 이혼사유를 가진 '종합선물세트'같은 사람이었다.
외도, 폭언, 폭행,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무관심까지. 이혼을 하고 싶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유책사유가 많았다.
그와 남편 사이에는 4살 (만 2세)의 아들이 있었는데, 발달지연이 있어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혼하면 양육은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으니, 아내는 아기는 당연히 자신이 키워야 된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그 사람은 아이 기저귀 한 번 간 적이 없어요.
아이 발달문제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고요, 당연히 치료(센터)도 간 적이 없어요.
그리고, 싸울 때마다 늘 '애랑 같이 나가라'고 하던 사람인 걸요."
아내의 말에 따르면,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뒤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이 없을 정도로 양육에 무관심했다.
밖에서 유흥과 외도를 반복하느라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며칠 전 참다못한 아내가 이혼 이야기를 꺼내자, 당연한 듯 '아이는 니가 키우라'고 대답했다고.
"이대로 소송을 진행하면 아내분이 양육권자가 될 확률이 높지만, 혹시나 남편이 임시양육자 지정 전에 아이를 데려가버리는 상황을 조심하세요."
나의 조언에 아내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람은 아이를 키울 생각도, 아버지로서의 최소한의 관심도 전혀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게다가 남편은 밤에 일을 나가서, 현실적으로 아이를 돌볼 여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모든 상황에 주의하라는 조언과 함께 상담을 마치고, 며칠이 지난 뒤 아내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변호사님, 아기가 사라졌어요!"
전말은 이랬다. 아내는 아이를 생각해 남편과 최대한 원만히 이혼을 하고 싶었고, 남편에게 다시 한번 구체적인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아내는 당연히 남편으로부터 재산분할도, 양육비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남편은 "내 집인데 왜 네가 권리를 요구하냐"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 참고로, 부부사이에서 '내 명의 집'이라고 해서 부부공동재산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에 관해서는 추후 연재 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런데 얼마 뒤, 평소대로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찾아간 아내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몇 시간 전 남편이 시어머니와 함께 어린이집을 찾아와 아이를 하원시켰다는 것이다.
남편은 그 길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법대로 하자'는 말과 함께 아내의 연락을 모두 차단해 버렸다.
겨우겨우 시어머니와 연락이 닿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모질게 비난하면서 "아이는 우리가 키울 거니 그런 줄 알라"고 했다.
친정부모님과 함께 시댁을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하며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이의 임시양육자가 결정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부모 모두가 아이의 친권자인 데다,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큰 문제없이 지내고 있다면 경찰에서도 강제로 아이를 뺏어와 엄마에게 돌려줄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며칠 만에 남편과도 연락이 닿았는데, 남편은 "다 포기하고 몸만 나간다고 하면 양육권 주는 건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아내는 그 이야기를 전하며, 아이를 뺏기면 어쩌냐며 펑펑 울음을 쏟아냈다.
추측컨대, 아내의 이혼의사가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은 본인도 이래저래 법적인 절차를 알아봤을 것이다. 본인이 유책배우자이니 위자료를 주어야 한다는 것도, 부부로서 산 기간이 몇 년이 되었으니 얼마간의 재산분할을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아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루아침에 납치하듯 아내에게서 아이를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남편의 목적은 아내를 안달 나게 해서 재산분할도, 위자료도 포기시키려는 것뿐이었다.
남편의 전략이 적중하듯, 사무실에 찾아온 아내는 울면서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이미 아내는 몇 주간 아이를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남편이 (발달) 센터 치료도 안 가고,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있어요. 며칠 전에 치과 진료를 받아야 했는데 그것도 안 가고... 변호사님, 저 그냥 다 포기하고 조기 합의해서 아기 데려올래요."
벼랑 끝에 선 아내의 절박한 마음은 이해가 되었지만, 나는 끝까지 아내를 설득했다.
얼마 후면 첫 조정기일이 예정되어 있고, 현재의 상황들은 재판부에 낱낱이 보고하고 (일러바치고) 있으니, 유아인도 결정을 기다려보자고.
사실, 유아인도 결정을 받는 것은 쉽지는 않다.
상대방이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가, 앞서 말한 대로 결정을 받더라도 짧아야 수개월이 걸린다.
아이의 거취에 관해 결정하는 것에 신중한 재판부에서는 최종 판결 때까지 결정 자체를 미루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하루아침에 엄마에게서 아이를 빼앗은 남편의 행동을 재판부에서 곱게 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잠수를 타버린 것도 괘씸한데, 위자료나 재산분할을 포기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힘든 싸움이지만, 끝까지 해봐요."
긴 설득 끝에, 아내는 남편의 협박과도 같은 제안을 거절하고 계속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남편을 상대로 유아인도 사전처분을 신청하고, 결정이 나지 않더라도 소송 중 주기적으로 아이를 볼 수 있도록 면접교섭을 요청했다. 첫 조정기일 이후엔 적어도 아이를 볼 수 있을 것이란 일념 하에 아내는 버티고 또 버텼다.
소송 과정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난하고, 지저분했다. 남편이 면접교섭 일정을 지키지 않아 허탕을 치고 오거나, 제발 아이를 제 때 병원에 데려가달라며 아내가 을이 되어 애원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문제는 그때마다 법원에서 재빨리 대응을 해주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정말 다행히도, 남편의 '좋은 아빠 코스프레'는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이 아이를 인질로 삼아 아내를 협박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것을 소홀히 하는 정황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결국 몇 달 만에 아내는 유아인도 사전처분 결정을 받게 되었다.
서로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양육권을 원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혼소송에서 양육권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이자 전략으로 쓰일 때가 많다.
가장 씁쓸한 지점은, 이 과정에서 진짜 아이를 위한 마음이나 배려는 뒤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부모 사이에서 불안해할 아이들의 감정은 물론이고, 이혼 후 비양육자와의 관계 또한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부부는 이혼을 하면 남이 되지만, 엄마아빠로서의 역할은 남는다. 부부 중 한쪽이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비양육자가 아이와 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상대방이 밉다고 해서, 아이와 상대방의 부모자식 관계까지 통제하려 하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