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불법이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가.
모든 소송은 ‘증거싸움’이다.
그나마 이혼소송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일들을 다루기에 객관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갈등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 절차나 방법들이 있긴 하지만 (가사조사, 양육환경조사 등), 이 역시 어디까지나 소송이기에 증거가 많을수록 좋은 것은 똑같다.
특히, 이혼사유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외도]의 경우 증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 외도라는 것이, 바람을 피운 사람은 교묘하게 흔적을 지우는 반면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 쪽에서는 법에 걸릴만한 일들이 너무 많은지라, 증거 확보가 나날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남편 갑돌이가 곤히 잠든 어느 날 밤.
갑순이가 불현듯 이상한 촉이 들어 갑돌이의 휴대폰을 뒤진다.
비밀번호 잠금이 걸려있어 고민하다가, 단순한 갑돌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갑순이는 몇 개의 숫자를 조합해 금세 갑돌이의 비밀번호를 풀어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외도의 흔적들을 마주하게 된다.
갑순이는 갑돌이의 휴대폰에서 찾아낸 외도 증거들을 잔뜩 안고 곧바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간다.
변호사는 평소 갑돌이와 휴대폰을 공유하고 있었냐고 묻는다.
‘아뇨, 제 명석한 두뇌로 풀어낸 비밀번호이지요 음핫핫핫!'
갑순이는 뿌듯하게 웃지만 어째 변호사의 얼굴은 똥 마려운 듯 난처한 표정이다.
변호사: 남편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몰래 풀고 메신저를 열람한 것은
형사상 비밀침해죄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갑 순 : 네?! 범죄라고요?!! 잘못은 저 놈이 했는데요?!
이뿐만이 아니다.
상간자에게 따지기 위해 집에 찾아가면 주거침입 고소의 위험이, 직장에 찾아가 난동을 부리면 업무방해의 소지가 있다.
외도 증거를 잡기 위해 녹음기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도 당연히 불법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외도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고소장이 날아드는 것은 정말 흔한 일이다.
즉,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 것만으로도 열받고 서글픈데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는 것이다.
물론, 불법으로 증거수집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즉, 고소가 들어오지 않으면 별 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권리를 침해받는 사람 (배우자나 상간자)가 고소 등으로 문제를 삼으면 엄연한 전과가 되기에 변호사는 처음부터 해당 증거의 불법성을 고지할 수밖에 없다.
반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소송에서 해당 증거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소송에서 증거를 채택해 주는 것은 판사의 재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뢰인들은 손 안의 증거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증거를 소송에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전과가 생기는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묻을 것인가.
한 젊은 여성이 어머니와 함께 상담을 오셨다.
남편의 외도 증거를 들고 왔는데, 애석하게도 남편의 구글 아이디에 몰래 로그인해 잡은 불법 증거였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남편은 치밀한 성격인 데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각종 법에 빠삭한(?) 사람이라, 이 증거로 외도를 문제 삼으면 분명히 고소를 할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의 애정행각을 목도하니 치가 떨려서 참고 넘어갈 수는 없고, 바로 소송을 걸자니 법적인 문제가 생길까 봐 고민이 되어 변호사를 찾았다는 것이다.
옆에 계신 어머니께서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저희 딸이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
혹시나 전과가 생겨서 문제가 될까 봐요...”
오랜 이야기를 나눈 뒤, 나는 해당 증거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공무원 임용 이전의 벌금 기록은 임용 결격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혹시나 남편이 이를 문제 삼을 경우 어머니와 딸이 엄청난 걱정과 불안함 속에 정신적 고통을 겪을 것이 명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서로의 법적 공방이 어디까지 지저분하게 번질지도 가늠할 수 없으니 해당 증거를 사용하는 건 득보다 실이 커 보였다.
아내는 억울해 죽겠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지만, 결국 모녀는 상대방이 고소를 남발하고도 남을 사람이라며 나의 조언을 따르겠다고 했다.
법적인 리스크를 고지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의 마땅한 의무이지만, 이럴 때면 의뢰인의 억울한 마음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옮겨와 하루 종일 맘이 무겁다.
(+ 여담이지만, 이 의뢰인은 다행히도 얼마 뒤 하늘이 도왔는지 다른 증거가 저절로 굴러들어 오게 됐다. 남편과 크게 싸운 상간녀가 의뢰인에게 연락을 해서 외도를 낱낱이 자폭한 것이다.
나는 의뢰인을 대리해 무사히 이혼을 마쳤고, 위자료를 받아냈다).
드라마나 영화 속 변호사처럼 늘 통쾌한, 사이다 결말을 가져다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끔은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해주다가 내담자들에게 ‘도대체 되는 게 뭐냐’며 핀잔을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명백히 보이는 사실에 대하여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철칙이고, 안 되는 걸 된다고 해서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드는 건 변호사로서의 양심에도 맞지 않는다.
증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어디까지가 불법인지를 명확히 알고, 내가 어디까지를 감수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조금 전 소개한 젊은 여성의 사례처럼 남편의 고소 남발이 자신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면 해당 증거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문제 삼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하거나, 고소가 들어오더라도 약간의 벌금 등을 감수해서라도 사이다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정답은 없다.
그런 고민 없이 무작정 모든 증거를 소송에 쏟아 넣으면 문제가 불거지고, 많은 후회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 소송은 늘 사이다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내가 가진 증거가 무엇이고,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준비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