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사유, 이런 것도 가능한가요?

헤어짐의 정당성에 대하여

by 솔변

"이런 것도 이혼사유가 되나요?"



이혼상담을 할 때 가장 흔하게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변호사님. 이런 것도 이혼이 되나요?’다.



아마도 이는, 바람이나 폭행 등 뚜렷한 사건이 없는 한 법적인 이혼사유가 안 된다는 오해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하지만 상담자들의 우려와 달리 대부분의 사안들은 (심지어 단순히 성격이 안 맞는 이유라 하더라도) 무난히 이혼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다.




갑돌: 이혼하겠습니다! 이혼사유는 갑순이의 부먹 때문입니다!
갑순: 누가 할 소리! 저야말로 이혼할래요.
저 인간이 찍먹파인줄은 몰랐다구요!
법원: 예 그럼 재산분할로 넘어갑시다~



이혼소송에서 부부가 서로 이혼하기로 동의했다면, 법원은 더 이상 두 사람의 이혼사유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머지 문제 (재산분할이나 양육권 등)로 다툴 뿐이다.



하지만 한쪽이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 이혼을 원하는 쪽에서는 이혼 사유를 법적으로 인정받아야만 한다.



우리나라 민법 제84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상 이혼 사유로는 여섯 가지가 있다.

법조문에 쓰인 말들은 괜히 어렵고 복잡하게 쓰여있으니 (도대체 이 문제는 언제 해결이 되는가!) 쉬운 말로 풀어보자.




1. 배우자에게 부정(不貞)한 행위가 있었을 때

▶ 저 인간이 바람을 폈다.


2. 배우자가 악의(惡意)로 다른 일방을 유기(遺棄)한 때

저 인간이 나를 버리고 집 나가서 안 들어온다.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시부모, 장인, 장모 등)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저 인간도, 저 인간의 집구석도 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저 인간이 우리 엄마(아빠)한테...! 감히...!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때

사라진 배우자를 찾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6. 그 밖에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내가 이혼을 결심한 이유 (주관적임).




법조문에서 보듯, 6호 (그 밖의 중대한 사유)는 굉장히 포괄적이고,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우리는 여기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체 이혼을 할 만한 ‘중대한’ 사유란 무엇일까?



어떤 집에서는 욕실을 건식으로 쓰느냐 습식으로 쓰느냐 하는 문제가 천년의 사랑을 가뭄 든 땅처럼 쩌저적- 갈라지게도 하는데, 다른 집에서는 욕실의 습기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누가 봐도 풍비박산이 난 –일명 콩가루- 가정인데, 그래도 이혼은 아니라며 부부의 관계를 굳건히 지켜내기도 한다.



즉, 이혼을 할 만한 사유냐 아니냐는 것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결혼생활에서 생활습관의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대부분의 이혼사건에서는 ‘유책배우자가 제기하는 이혼소송’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이혼사유를 위 민법 840조 6호'에 해당한다고 보아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도 이혼판결이 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유책배우자가 거는 소송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이혼사유로 인정을 받을 확률이 높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이혼에 있어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한 사람이 감히 양심도 없이 이혼소송을 먼저 거는 것은 받아주지 않겠다!’라는 의미다.



여기서 잘못한 사람이 누구냐를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젠데, 실무에서는 ‘외도나 폭행 등 명백한 사건의 유발자’에 한해 유책배우자로 보곤 한다. (즉, 내 배우자인 저 인간이 아무리 나쁜 놈이더라도 무조건 이혼소송에서 유책배우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법적인 설명이 길어져 자칫 글이 지루해질 뻔한 중대한 위기에 처했으니 얼른 빠져나오도록 하자.



정리하면, ‘헤어짐의 정당성’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창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이혼사유에 대해 나의 확신이 필요할 뿐이다.





이혼의 도화선이 되어버린, 어린이 박물관 입장료 3,000원.




이혼상담을 하기 전, 나는 대략적인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방문자에게 간단한 사전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한다.



설문지의 문항 중에는 <이혼사유>가 있는데, 대부분은 짧은 단어로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답변으로는 ‘배우자의 외도, 성격차이, 경제적 사정, 가출’ 등이 있다.



이 날도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 사전 설문지를 빠르게 눈으로 훑고 있는데, 이혼사유에 적힌 짧은 문장에서 눈길이 멈추고 말았다.




Q. 이혼사유는 무엇인가요?
A. ‘어린이 박물관 입장료 3,000원.’





콘텐츠에서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확 끄는 제목이 필수적이라고 했던가.

이 답변을 본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어린이 박물관 입장료 삼천 원>에 온통 잠식되어 버렸다.



상담실로 걸어가는 내내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린이 박물관 입장료 3,000원이 무슨 연유로 이혼사유가 된 것일까.

박물관에서 엄청난 부부싸움이라도 벌어진 걸까?



상담실에 들어가니, 수더분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앉아 계셨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결혼생활을 설명했다.



남편과는 꽤 오랜 기간 결혼생활을 유지해 왔는데, 두 사람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슬하에 있는 두 아이들도 문제없이 잘 자라주었다고 한다.



없는 살림으로 시작한 결혼이었지만 결혼생활이 길었던 만큼 지금은 재산도 알뜰살뜰히 모은 상태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를 찾기 어려운 단란한 가정으로 보였다.




“카드를 긁을 때마다
남편한테 전화가 올까 봐 심장이 뛰어요.”





그의 남편은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지만, 늘 허리띠를 과하게 졸라맸다.

문제는 허리띠를 꽉 조여매는 그 알뜰한 소비습관이 가족들에게만 한정된다는 거였다.



밖에서는 ‘술도 밥도 잘 사는 김 과장’으로 불리는 남편이었지만, 아내가 긁는 카드의 결제 액수가 본인 기준에 높게 나왔다 싶으면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 화를 내곤 했다.



아이들을 키우고 나서야 직장생활을 시작한 아내는 남편보다 현저히 소득이 적었고, 취직을 한 뒤에도 경제권은 전부 남편에게 있었다.

아내는 늘 남편 명의의 카드를 사용해야 했고, 그때마다 결제 내역은 남편에게 고스란히 보고되었다.



아이들도 클 만큼 크고, 아내도 직장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자신처럼 바보같이 사는 사람이 없더란다.



카드값 고지서가 나오는 날마다 하루 종일 남편의 눈치를 봐야 했던 자신의 모습이,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최저가 제품을 고르던 날들이, 남편보다 돈을 못 번다는 이유로 인신공격이나 화를 고스란히 참아내야 했던 순간들이 마음속에 상처로 켜켜이 쌓여 있었다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이 모든 응어리가 한 번에 뻥, 하고 터졌던 것이 바로 <어린이 박물관> 사건이었다.





아내는 저녁을 먹고 나면 운동 삼아 동네 공원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하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저녁 산책을 하는데, 예고 없이 비가 쏟아져 몸이 쫄딱 젖었다.

정자 아래에 서서 기다렸지만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고,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탓에 몸이 덜덜 떨릴 만큼 추웠다고.



그때, 주변 사람들이 어린이 박물관에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저녁 행사로 열려있는, 난방이 빵빵한 어린이 박물관의 입장료는 3,000원이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 추위를 피하고 몸을 말리고 있는데,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의 첫마디는 ‘3,000원을 왜 긁었냐’는 것이었다.

비를 맞아 추워서 박물관에 들어왔다고 하니 ‘한심하다, 돈 아까운 줄 모른다. 3천 원이 뉘 집 애 이름이냐’는 고성이 되돌아왔다.



늘 듣던 말이었는데 그날따라 눈물이 펑 터졌단다.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한참 동안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배우자에게 자신의 가치가 3,000원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니, 이 사람과 평생 살 자신이 한순간에 없어졌다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요,
다들 3,000원 때문에 이혼하는 사람이 어딨 냐고 해요.
남편도 그런 이야길 법원에서 받아줄 것 같냐며 비웃더군요.”




그리고 그는 다른 상담자들처럼 물었다.

“이런 건 이혼 사유가 안 되겠죠?”라고.



하지만 ‘어린이 박물관 입장료 3,000원’은 결정적인 도화선이었을 뿐, 상담자의 마음에는 혼인기간 동안 묻어왔던 수많은 일들과 그로 인한 아픔들이 있었다.



주변의 비웃음과 달리 그의 이혼 결심은 확고했고, 그는 약 1년의 소송 끝에 무사히 이혼 판결을 받아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나는 상담을 온 손님이나 의뢰인에게 “이혼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이는 이혼사유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이혼을 해야 하거나 하면 안 되는 사유’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이혼을 해야 할 사유인지’ 자신에게 되묻는 것이다.

만약 그 물음에 ‘YES’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혼 사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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