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프러포즈, 그리고 이혼 프러포즈.
결혼 생각이 있는 남녀가 연애를 하다 보면 으레 ‘나랑 결혼해 줄래?’하는 순간이 온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또는 호텔에서 꽃다발과 반지를 건넬 때, 연인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감동이 피어오른다. 미래에 대한 설렘과 인생 2막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한 순간이다.
우리는 이것을 ‘웨딩 프러포즈’라 부른다.
갑돌: (노래를 부르며) 나랑 결혼해 줄래~
갑순: (눈물 펑펑)
하지만, 결혼생활이 늘 아름답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 인생: [알림] 결혼 실전 모드로 전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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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결혼을 ‘인륜지대사’라 한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사라는 뜻인데, 달리 말하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바꿀 만큼 엄청난 일에 뛰어드는 것이다.
결혼으로 인한 삶의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실,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들마저도 시행착오와 갈등은 필히 겪을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평생 다른 무늬의 나이테를 그리며 살아온 성인 두 명의 인생이 어느 날 갑자기 ‘2인 삼각’ 레이스가 되었으니 쉬울 리 있겠는가.
갑돌: 하낫! 둘! 하낫 둘!
갑순: 둘! 하낫! 둘! 하나!
갑돌: ?
갑순: ?
더 이상은 나의 배우자 (또는, ‘저 인간’)와 인생의 2인 삼각을 완주할 수 없다고 깨달았을 때,
우리는 ‘이혼 프러포즈 (이혼제안)’를 던지게 된다.
프러포즈와 달리 이혼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우리 이혼할래?’는 고상한 편. 고성과 욕설이 오가거나 한바탕 눈물을 쏟기도 한다.
"우리... 이혼하자."
결혼 프러포즈는 극복 불가능한 현실적인 문제나 일방의 변심이 없는 한 대부분 ‘YES’의 대답으로 귀결되지만, 이혼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우선, 이혼에 동의하더라도 그 외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따라온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있는 경우 누가 양육할 것인지, 양육비는 얼마로 할 것이며 비양육자와의 만남은 어떤 주기로 할 것인지, 재산분할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이혼 과정에서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위자료는 얼마를 줄 것인지 등등.
부부가 이혼 여부 및 나머지 사항들에 대해 원만히 합의(의사합치)가 된 경우 순조로이 협의이혼으로 끝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들도 상당하다.
가장 원초적인 불협의 이유로는 한쪽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다.
갑돌: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이혼은 절대 없어!
갑순: (흙을 가져와 뿌린다).
또는, 이혼엔 상호 동의했으나 앞서 말한 나머지 조건들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권 등)을 놓고 서로의 생각이 달라 도무지 협의가 안 되는 경우다.
무엇보다 이혼 이야기까지 나왔을 때는 부부 사이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닳고 닳은 상태기 때문에 -증오와 혐오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싸움으로 끝난다.
그 외, 특수한 상황들 (한쪽의 가출, 두문불출, 생사 모름, 교도소 수감 등)도 있다.
배우자와의 협의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이혼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찾는다.
(협의가 다 된 경우에도 원만하고 조속한 마무리를 위해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모든 절차를 설명할 순 없기에 이 설명은 다음으로 미뤄두자).
그리고는 상대방에게 ‘이혼하자’는 내용이 담긴 소장을 보낸다.
이후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재판을 하고, 합의(조정)를 시도하고, 각자의 주장과 증거가 담긴 서면을 법정에 제출하며 법적 공방을 펼친다.
내가 하는 일도 주로 이런 것들이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더 이상 이혼을 쉬쉬하지 않는 시대라 하지만, 여전히 이혼은 쉽지 않다.
두렵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 때 가족을 이루었던 사람과 남남이 된다는 결심을 하는 것부터가 어렵지만, 자녀가 있는 경우 그 고민과 갈등은 배가 된다.
2인 삼각이 되었던 부부라는 팀의 끈을 풀고 다시 세상에 홀로서기를 할 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엄습한다.
그래서, 흔히들 이혼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마침내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라고들 한다.
한 번은, 재판을 나서는 길에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중년 여성을 마주쳤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약 1시간가량이 지나 재판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건물 앞 기둥 옆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찾으시는 게 있냐고 말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두어 시간 전 상담 예약이 되어있었으나 나타나지 않아 취소 처리한 손님이었다.
연락을 받지 않기에 상담을 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참 전부터 건물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사무실에 함께 올라와 오랜 시간 밖에 계셨던 이유를 물었더니,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을 넘는 게 너무나도 어려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혼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알고 –그의 배우자는 많은 유책사유들이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이혼하리라 결심을 해서 상담도 예약했는데, 막상 변호사 사무실 건물 앞에 도착하니 그 문턱을 넘는 게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이게 맞나’, ‘내가 조금만 더 참고 살아볼까’, ‘그래도 이렇게 살 수는 없는데’, 하는 수만 가지 생각을 반복하느라 노쇼를 하고 말았다며 손님은 죄송하다는 사과를 건넸다.
살면서 법원 한 번 가본 일 없는 사람들에게는 소송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질 것이기에, 그분이 느꼈을 감정이 십분 이해되었다.
하지만 그날, 건물 앞을 서성이던 손님의 발걸음을 붙잡았던 것은 단순히 법적 다툼이나 소송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이혼에 대한 두려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변호사에게는 매일같이 처리하는 사건들 중 하나지만, 당사자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늘 “이혼 별거 아니다”를 외치며 살았던 나는, 그날 이혼의 무게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결혼하는 모든 부부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 같은 엔딩을 맞이하면 좋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국 이혼 프러포즈를 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혼이라는 이별의 길에 발을 내딛기까지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는 조력자, 상담자, 또는 정보 제공자의 역할을 한다. 앞으로 펼칠 이야기들이, 이혼의 문턱 앞에서 말 못 할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