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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온실

~  온실지기의 착각 ~

by 강신옥 Ma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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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입춘 때였다.

‘입춘에 장독 깨진다’는 옛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파가 몰아쳤다. 봄꽃대신 곳곳에 눈꽃이 내렸다. 문턱까지 와서도 성큼 다가서지 못하고 아장아장거리는 봄을 마중이라도 나가려는 마음으로 온실이 있는 식물원을 다녀왔다.      

 


 식물원 바깥 정원은 초록대신 찬바람만 가득했다. 아직 봄기운이라고는 얼씬도 못 하는 외부정원을 추위에 쫓겨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내부 식물원, 온실로 들어갔다. 살 것 같았다. 자동문이 열리고 온실로 들어서자 봄으로 순간이동한 듯했다. 온실의 포근함이 온몸을 감싸주었다. 움츠렸던 어깨도 풀리고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열대관과 지중해관으로 나뉜 온실을 돌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온실이지만 이렇게 얼어붙는 한파에 온실 속 열대를 거닐고 있으니 초록 별천지에 와 있는 듯했다. 초록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열대우림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곳곳에 물을 주고 손질을 하는 관리자들이 눈에 띄었다. 열대가 아닌 곳을 열대로 만들어 주고 있는 관리자들 덕분에 쭉쭉 뻗은 가지에 마음껏 활짝 잎을 펼친 관엽식물들이 선명하고 윤기 나는 초록을 뽐내고 있었다. 자식 돌보듯 알뜰살뜰 보살피는 관리자들의 능숙한 손길에 발길을 멈추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빛바랜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수십 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2학기 동안 온실담당을 한 적이 있었다.

온실담당은 모두가 선호하는 특별우대 청소구역이었다. 운동장 모퉁이에는 교실넓이 정도의 유리온실이 있었다. 물조리개로 물을 주는 간편한 일이었기에 교실청소보다 훨씬 수월했다. 1960년대, 학급당 여든 명에 가까운 콩나물시루 같은 다인수 학급에서 단 세 명만 뽑는 온실담당은 그야말로 특혜였다. 선생님께 인정받았다는 괜한 자부심까지 덤으로 얹어지는 일이었다. 어쩌다 세 명 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휴일에도 나와서 물을 주어야 하니 어느 정도 착실하다고 인정은 받았나 보다. 세 명은 모두 여자였다. 남자는 장난치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선생님 말씀이 곧 법인 시절이라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온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수업 후에 온실에 들어서면 벌써 마음부터 편했다. 복잡한 교실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이었다. 우리 셋만의 온실이었다. 층층이 쌓인 화분들은 우리가 돌봐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우리를 힐링해 주는 피로회복제였다. 우리는 신이 나서 수다를 떨며 즐비해 있는 식물들에게 열심히 물을 주었다. 온실 속에는 수도까지 있어서 물 주기도 편했다. 물조리개로 물을 분사하는 재미도 즐겼다. 셋이 사이좋게 구역을 나누어 재잘거리며  먹이 주듯 물을 주었다. 물을 주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 꽃잎들을 치우면 끝이었다.


 식물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다.

물을 얼마나 주느냐는 오로지 내 마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온실에 살았던 식물들이 가엾고 안쓰럽다. 너무 미안하다. 물을 주는 주기도 양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여름엔 온실 문을 열면 푹푹 찌는 열기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빨리 물을 주고 나가고 싶었다. 서둘러서 물을 흠뻑 흠뻑 주었다. 겨울에는 온실이야말로 가장 따뜻한 피난처였다. 겨울 속 여름이었다. 우리만이 누리는 특혜였다. 온실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 물을 여유 있게 주다 보니 또 많이 주었다.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과 달리 일요일에도 눈이 빨리 떠졌다.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서였다. 휴일 아침엔 작은 쪽문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운동장을 걸으면 텅 빈 고요가 좋았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교정에 마치 특권이라도 누리듯이 마음 놓고 걸었다. 운동장 둘레에 하늘로 치솟은 풀라타나스 나무도 은행나무도 초록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휴일에도 물을 주러 일찍 왔다고 숙직하신 선생님들께 칭찬을 받을 때도 있었다. 칭찬이 우리에겐 아침밥이 되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배고픈 줄도 모르고 열심히 물을 주고 선생님들 심부름까지 할 때도 있었다. 때로는 수다 떨고 놀다가 해가 중천에 떠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천대받았던 식물이 선인장이었다. 예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마음 놓고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가시만 보였다. 꽃도 피울 줄 모르는 줄 알았다. 예쁜 꽃도 못 피우는 선인장을 왜 키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을 맞출 사이도 없이 그저 물만 주면 끝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선생님께 인정을 받아 2학기 마칠 때까지 온실을 담당했다. 우리도 늘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 후 학창 시절에도 직장 생활하면서도 나는 식물에 관심이 없었다. 꽃이 아름답다는 것은 알지만 눈에 들어올 여유도 없이 살아왔다. 특히 선인장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는 먼 나라 식물이었다. 선인장도 꽃을 피운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었다.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퇴직하고 나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꽃다운 나이를 다 지나서였다. 꽃이 좋아지면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는 말이 맞나 보다. 요즘은 꽃 보느라 가던 길을 멈추기도 한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새뜻한 연둣빛에 매료되기도 하고 초록에 마음의 쉼을 얻기도 한다.       

 


 퇴직 후 어느 다육식물 판매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갖가지 선인장을 정식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선인장은 흙이 마른 후에 물을 줘야 하고 물을 너무 자주 주면 뿌리가 썩는다.”라는 꽃집 주인의 말이 귀를 지나 가슴까지 들어왔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었다. 수없이 들어왔을 말인데도 늘 흘려보냈던 말에 그제야 무릎을 쳤다. 온실담당 기억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무식하게 물을 주고 관리를 했던가. 지난 간 일이지만 그때 선인장들이 골병들지 않았을까. 뿌리가 썩어가고 있다고 아우성을 쳤을지도 모른다. 선인장들의 항의는 대단했으리라. 수십 년이 지나서야 선인장 가시에 수없이 양심이 찔렸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날 다육식물 몇 가지를 사면서 선인장 화분도 몇 개 사 왔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돌보았다. 눈길을 자주 주었다. 물을 주고 싶어도 흙이 마를 때까지 참았다. 기다려 주었다. 둥근 줄기에 털이 붙은 가시 잎으로도 알록달록 꽃을 피울 때는 대견하고 신기해서 손뼉을 쳐 주었다.      

 


 상대야 어찌 되었든 나의 방식으로 물을 주고 키운 온실지기였다.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한 꽃이 어디 선인장뿐이겠는가. 나를 거쳐간 꽃처럼 예뻤던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겹쳐 생각이 났다. 어디선가 원망의 화살을 날리고 있지는 않을지 자꾸 겸연쩍어진다. 그래도 나름대로 꽃을 피우듯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대견스럽다.


 온실에서 큰다고 다 잘 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시 관리하는 사람이 해야 할 몫이 따로 있었다.

식물 하나하나마다 다 다르다는 것을 그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물도 빠짐없이 주고 사랑했노라 자부심까지 가졌다. 착각은 자유지만 자기만족일 뿐이었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물만 많이 주면 최고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일요일까지도 굳이 가서 물을 줘야 했을까 싶다. 그때 꽃들은 감당할 수 있었을까.      

 


 온실을 순회하는 내내 속죄하는 마음에 하나하나 더 오래오래 바라봐 주었다. 애틋한 마음에 휴대폰 사진으로 자꾸 담았다. 신의 선물이라는 올리브 나무, 그때 가장 괴로웠을 선인장, 노란 꽃잎으로 미소 짓는 수선화, 보랏빛 분홍빛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수국, 오밀조밀한 제라늄, 멋쟁이 칼라리움,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야자수 등등 저장해서 마음에 품어왔다.


 영상이지만 그들은 다시 내 마음의 온실이 되어 주었다.

아쉬움이 있기에 그리움도 자라는 온실이다. 오래된 온실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 심어진 제자들과 우리 아이들도 꽃과 함께 피어오르곤 한다. 이젠 저마다에게 안식처 같은 온실이 되어주고 싶은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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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과 지역을 초월한 온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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