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이지만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지난 10월부터 부쩍 음악회가 많아졌다.
지자체에서 코로나로 묶였던 관련 예산을 소진? 하기 위해서 꾸려진 음악회나 행사가 예전보다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주변 지인들, 생계형 음악가들의 바쁜 일상이 참으로 다행으로 느껴진다. 나 또한 일주일 전까지 바쁜 일상을 보냈다. 직접 공연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일도 있었지만 지인 음악가들의 연주회를 찾는 일도 더불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공연표를 구매해서 참여하기도 하지만 무료 공연도 많다. 졸업시즌이고 연말이라 코로나가 주춤한 때에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가 다시 활기를 찾았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설령 철저히 계획하고 연습한 결과물이라고 하더라도 크고 작은 실수는 항상 있다. 실수는 단순히 '연습부족'으로 알고 더 반복하면서 '몸에 붙이려고 하는 노력'에 보통 주력하는데 어제 내가 보았던 학생의 연주도 그랬다. 리허설을 할 때엔 무슨 음원을 듣는 것처럼 연주가 매우 훌륭했다. 내가 알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연주가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연주를 시작하자 작은 실수들이 계속해서 쌓여갔고 리허설에서 보여주었던 자신감을 점점 잃어갔다. 연주를 마치고 돌아가는 예술가를 따라가서 한마디 건네주고 싶었다. '연습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고...
다른 음악가의 연주를 갔었다. 학위를 위한 연주를 두 군데 갔었는데 거기서도 실수가 있었다.
연주자의 프로필을 보았다. 지금 일하면서 맡고 있는 직책이 서너 개나 되는 생계형 음악가였다. 공부를 위해, 생활을 위해, 한 가지 음악 활동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한 것 같았다. 활동을 더 늘리거나 프로필에 없는 다른 일을 하며 수입을 불리는 수밖에 없는 예술가였다. 연주에 온전히 시간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텐데 얼마나 힘들게 준비했을까? 그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연습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1분 동안 소리 내서 청중 앞에서 연습 없이 읽는다고 가정해 보자. 큰 실수 없이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글의 줄 바꿈, 띄어쓰기, 의미, 어미나 동사선택 같은 여러 요소들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 말이 지연되거나 혀가 꼬이고 말끝이 올라가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쓴 글을 가까운 사람 앞에서 읽어보는 일도 긴장된다. 그런데 내가 쓰지 않는 어휘와 문장은 필사를 하든 읽어내든 편할 수 없다. 연습으로 어느 정도는 내 몸과 의식이 따라갈 수 있겠지만 원작자가 심혈을 기울여서 몇 달 몇 년 동안 빚어낸(작가의 냄새가 가득한) 작품을 연주자와 배우는 시간을 들일수록 작품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작품 자체가 되기는 어렵다. 작품을 넘어서는 연주(원작을 위배하는 과도한 해석)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대본과 악보에 적힌 바로 그! 자체의 작품을 말한다.
실수는 줄여야 하는 것이지 실수를 안 한다는 뜻은, 억세게 운이 좋거나 짜인 대로만 해서 오히려 거짓에 가깝다. 작품을 신성시하지도 않지만, 남의 말을 대신하는데 실수가 전혀 없다? 내가 가진 자연을 거스르는 부분에서 움찔하지도 않는다? 작품을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면 매우 오만한 사람이거나 정신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지만 정말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는 게 실수라는 뜻이다.
실수도 많이 하면 상품성이 떨어진다. 찾지 않는다. 하지만 실수를 했다고 그 사람이 불량품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서 연기하고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이 어려움이 얼마나 당연한지 실수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 실수 자체로 나를 오판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실수인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목표를 위해 땀 흘리며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
실수로 좌절할 시간이 없다. 빨리 깨닫자. 지금 내가 얼마나 대단한 과업 앞에 직면해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