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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Sep 17. 2022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백수일기1. 백수생활 4년차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더욱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는 말과 짤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요즘 내 인생은 참으로 그러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고 싶을 때 잔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눈을 뜨면 아침을 먹어야 한다. 평생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던 버릇이 있어서 거르면 상당히 허전하다. 먹었으면 움직여야 한다. 실내에 종일 있으면 답답하니까 햇볕을 쬐면서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활동량이 찼다 싶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움직이면 허기가 진다. 또 챙겨 먹는다. 대충 가장 나른한 오후시간이 된다. 나른함을 느끼며 잠에 마음껏 빠져든다. 


더 이상 잠이 필요없어지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더욱 말똥한 정신을 만들기 위해 커피를 진하게 한잔 마신다. 글을 읽는다. 책이든 흥미를 끄는 다른 종류의 텍스트든 상관이 없다. 무언가를 읽는다. 해가 진다. 저녁밥을 먹는다. 하루 동안 쌓인 집안일을 하고 나면 밤이다. 달리러 나가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둘 중 하나를 한다. 샤워를 한다. 잠자리에 눕는다. 


하루가 끝났다. 그리고 다음날도 대충 비슷하다.


백수의 하루는 이렇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시간이 남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다. 어떤 날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부족하다는 느낌도 든다. 내가 시간을 너무 펑펑 쓰는 걸까?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빡세고 치열하고 정신없고 뜨겁고 차갑고를 반복하다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격렬한 시기가 있었다. 잠은 쪼개서 자고 휴일하루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쉼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의 나는 한참 쉬고 조금 움직인다. 한참을 쉬어야, 그제서야 움직일 마음이 든다. 태생이 한량인데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걸까? 


공식 백수가 된지 4년차. 하지만 아직도 나는 더 쉬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의 치열했던 내가 낯설고, 그런 과거를 낯설어하는 내가 또 낯설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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