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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ler Oct 03. 2021

게임에 참가하셨습니다 (feat. 오징어게임)

오징어게임에 대한 줄거리 감상평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가 게임을 디자인하는가


우리는 게임의 참가자가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익숙해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녔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본격적인 내신시험을 보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공부의 양이 많다거나, 점수가 나쁘다거나 라는 문제 이전에 근본적으로 왜 시험문제가 이런 식으로 나오냐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제일 컸다. 배운 지식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다. 


세기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시험에 엄마는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는 꼰대 같은 조언을 계속하고, 아이는 의구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적합한 답을 찾는 훈련을 계속했다.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혹은 크게 뛰어나지 않다면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치열한 경쟁 하에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서 규격화 경험을 한 후에 취업이란 것을 하겠지.


그렇게 비슷비슷한 이들이 모여 또 다른 456명의 참가자 그룹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 게임의 그룹에 속해있다. 

얼핏 오징어게임의 456명은 인생 실패한 사회 밑바닥 그룹이기에 모인 것으로 보이지만, 글쎄다. 우리는 돈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누군가의 500만 원과 누군가의 60억이 주는 무게감이 같으니 그들은 한 그룹이 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속했던, 그리고 속해 있는 그룹들 또한 각기 다른 성향과 목표를 가지고 있겠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촘촘하게 어떻게든 나라는 사람이 포함될 그룹이 존재한다.


기본 구성은 같다. 출제된 과제가 있고 참가자들은 그 과제를 풀어내며 경쟁을 해야 한다. 그것이 시험 합격이던, 회사 매출이던, 승진이던, 재산증식이던.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탈락한다.


사회의 밑바닥이라고 하는 그룹에도 합의된 룰이 있고, 사회가 인정하는 안전하고 안락한 조직 안에도 항상 매뉴얼이 있다. 어디는 조금 더 격식을 갖추고 합법적이면서도 우아해 보이지만, 조직에 해가 되거나 목표에 다다르지 못하면 탈락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뭐, 살려는 드릴게 정도 차이? 


그래서 각자 게임의 룰에 순응한 다음에는 경쟁에 몰두할 뿐이다. 살기 위해서. 

어떤 부분은 불합리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조금만 손을 보면 더 좋은 매뉴얼이 될 듯했지만, 참가자들은 아무리 불공평하다고 불평해도 룰에 손댈 자격도, 힘도 시간도 없다. 그 게임을 만든 이들이 우리와 다른 층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언제부터, 어떻게 그 자리에 가 있는 것일까. 




결국 경쟁에서 누가 우승하는가


오징어 게임에서도 어떤 게임은 물리적 힘이 유리했고, 어떤 게임은 요령이, 혹은 경험이 유리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을 통과하는 자들이 모두 그에 맞는 유리한 요소를 가진 자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의 주인공은 가족에게는 너무나 무심하고 책임감 없지만 집 밖에만 나가면 너무나 사람 좋고 인간미 넘치는, 덕분에 미움받지 않고 얼렁뚱땅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년 아저씨이다. 이 또한 두 가지 측면에서 너무나 현실적이다. 세상 둥글둥글 능글능글 사는 것이 장수의 비법이라는 것. 그런데 그런 사람들 조차 가족이라는 이름의 지인들에게는 매우 무례하고 이기적이라는 것.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 기를 쓴다. 어려운 뽑기 완성을 위해 주어진 바늘을 달구던, 미련하지만 절실하게 핥아대던, 주어진 바운더리 안에서 주어진 모양대로 뽑아낼 수만 있다면  누락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여기서 꼼수와 아이디어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웃프게도 운 좋게 쉬운 과제에 걸린 이라도 모두 패스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통과자들의 수는 다음 경쟁에 필요한 정도이다. 


항상 경쟁해야 하는 게임은 나의 능력뿐 아니라 운과 주변과의 유기적인 상관관계까지 끊임없이 시험하도록 디자인되어있다. 내가 가진 한 두 가지의 강점과 한정된 지식으로는 그 교묘한 게임의 트릭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매번 주변의 영향을 받고,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순간의 선택으로 탈락 여부가 결정되고 생존자들은 회가 거듭될수록 변화한다. 흔히 성장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도 현실이다. 


소수 그룹은 강자에게 필요할 때 사용되고 존재가치가 불필요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지만, 현실사회는 여전히 도덕책이 아니다. 내가 가장 불리하고 불행하고 힘없는 것 같지만, 또 나보다 더 약한 자들이 나타나 나를 교란시킨다. 그들을 도울 것인가 밟을 것인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은 절대 그르지 않다. 


어쨌든 게임에는 항상 우승자가 있다. 

이번 오징어게임의 최종 우승자는 달라진 헤어스타일만큼이나 달라진 눈빛으로, 또 새로운 결정을 하고 발을 내딛는다. 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통장잔고에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그렇다면 그동안 오징어게임의, 그리고 다른 수많은 게임의 우승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게임은 계속되어 왔고 여전히 참가자는 모집 중이고 어디에선가 경쟁은 진행되고 있는데.


적지 않은 우승자들은 모히또에서 몰디브를 한 잔 할 수도, 과거를 회상하며 가면을 쓰고 현재 게임을 즐겁게 보고 있을 수도 있을 듯하다. 무엇을 하며 그들은 행복해할까. 


우리가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경쟁의 우승이 인생의 성공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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