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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ler Dec 24. 2020

그리고 베를린에서_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20세기에 배우고 21세기에 살기_10

***넷플릭스의 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나서 생애 처음으로 유럽행 비행기를 탔었다. 지구 반대쪽 학교에 도착한 후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배정받은 기숙사 아파트에는 웬 털북숭이 게르만 남학생이 있었다. 그가 나의 룸메이트며 부엌과 편의시설을 같이 써야 함에 기절초풍했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길로 학교 행정실로 돌아갔다. 남학생 룸메이트는 착오 같으니 다시 배정해달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나를 직원은 이상하게 보며 침실을 중복 배정받았다는 말인지 재차 물었다. 행여 내가 언어가 안되어 소통이 안 되는 것처럼, 더 심하게 말하면 뭔가 덜떨어진 어린아이가 무조건 우기는 것처럼 보면서. 


아마도 2020년이었으면 직원도, 나도 조금 다르게 접근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처음 혼자 해외에 나온 갓 20살 모태솔로였고, 그곳도 한국인 유학생이 흔하지 않을 때였다. 

이미 기숙사 배정은 끝났고, 누군가 너처럼 바꿔달라고 올 경우에만 개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그 직원이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친절이자 완곡한 거절이었지만, 나는 대기 의자에 앉아 무작정 기다렸다. 그 투룸 아파트에서 남학생과 한 달 동안 생활하는 것은 당시 나로서는 남녀 간의 동거였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진짜 누가 바꾸러 왔는지, 불쌍한 동양 아이가 버티고 있는 것이 딱해서인지 몰라도 다행히 그날 중에 다른 기숙사로 옮겨서 여학생 룸메이트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보다 20센티는 더 커 보이는 서양 여자애가 큰 수건 하나 대충 걸치고 나오거나 아침에 남자애가 부엌에서 커피 내리는 걸 보는 건 뭐 바꾸나 안 바꾸나 마찬가지였을 것 같긴 하지만. 


이후 비행기 탈 일은 더 늘어났고 서로 다른 문화배경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가치관과 생각들을 보고 들으며 담대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당황한다. 세상에 이렇게 수많은 다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에 대한 판단을 어찌해야 하는지 아직까지도 배우는 중인 나에게 넷플릭스 4부작 미니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매우 흥미로왔다. 전통과 공동체의 목표만이 최우선인 하시디즘 공동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에스티가 성장하면서 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뒤를 쫓는 남편 얀키. 


에스티가 성인 여성이 되면서야 비로소 직접 알게 된 공동체에서의 사회적 역할과 그에 대한 이질감, 그러면서도 동시에 베를린 친구들에게 느끼는 거리감은 나에게도 낯선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해외여행 자율화가 된 것은 겨우 1988년. 이전까지는 사업이나 업무적인 일이 아닌 관광으로 해외를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고, 외국인은 신기한 존재였다. 88 올림픽이라는 계기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졌고, 제한된 음악과 영화 등으로만 접했던 서양문화를 직접 경험하러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시간적 여유가 가능했던 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배낭여행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경상도 극보수 아빠와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엄마에게 교수님을 팔아 어학연수라는 치트키를 들이밀었던 것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 친정엄마는 나에게 말했었다.

"왜 갑자기 네가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했는지는 이해가 안 갔지만, 보내줘야 할 것 같았어. 나는 못해도 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미 경험이 있던 에스티의 엄마와는 달리 나의 엄마는 비슷한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엄마의 촉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상초월이다. 


그 이후 방학이면 계속 해외로 나가던 나를 보고 엄마는 이 아이가 유학을 선택해 한국을 떠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 마음먹고 유학 뒷바라지를 각오했는데, 너무나 허무하게도 나는 국내에서 취직하고 결혼하는 평범한 삶을 택하더란다. 의아함과 안도감에 더불어 뭔지 모를 실망감이 더해졌다던 엄마. 그랬다. 나는 홀로 서야 하는 객지 생활보다는 가족의 곁을 택했고, 그렇다고 한국의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모습도 안 되면서 어중간한 글로벌 시민으로 살고 있다. 물론 지금 21세기의 서울은 윌리엄스버그와는 다른 환경이라서 가능했을 테지만.  


그래서 탈출한 에스티를 이해하면서도 나는 마지막까지 행여 그녀가 임신도 했고, 애타는 얀키를 보아 나고자란 고향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그녀의 탈출을 응원하다가 아이 핑계, 남편 핑계라니! 그동안 꿈을 접었던 엄마들이 생각났던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숨길 수 없는 대한민국 꼰대의 가치관이 툭 튀어나와 버린 것일까. 


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야, 그동안 단순히 조연으로만 보고 있던 얀키의 행로가 궁금해졌다. 

그는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엄마와 가족을 거역하지 않으며 단정하게 자란 청년이다. 수많은 대한민국의 아들과 남편들처럼. 

까끌한 모래를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았던 에스티가 스스로 베를린으로 떠난 것과는 달리, 공동체의 규율과 전통에 한치의 의심 없이 자란 그는 어쩔 수 없이 에스티를 쫓아 베를린에 가서 새로운 문물과 인물들을 만나고 문득문득 생각에 잠긴다. 처음에는 에스티를 쫓는 것이 보수적인 남편의 오기인지, 뒤늦게 임신을 알고 핏줄에 대한 집착인지 싶었는데 그도 변하고 있었나 보다. 


이제 에스티는 떠났고 얀키의 선택만이 남았다. 떠날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혹은 윌리엄스버그와 베를린을 오가며 살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하던, 가발을 벗은 에스티처럼 머리카락을 자른 얀키도 스스로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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