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태엽을 되감아

이른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by 언디 UnD

내가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이 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송출되는 클래식 FM. 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기 때문에 방송이 시작할 때 즈음, 혹은 시작한 직후부터 출근길에서, 종종 선곡이 너무 좋을 때면 출근 후 사무실에서까지 조금 더 오래 들을 때도 있다. 가까이 속삭이는 DJ의 숨소리 때문일까, 신기하게도 라디오 방송에는 사람의 호흡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듯, 흘러가는 삶이 담긴 갖가지 사연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내가 번거롭게 고르지 않아도 선곡에 따라 음악은 정해진 시간만큼 흘러나온다. 사람의 소리가 나지 않는 악기의 음성을 듣고 있으면 상념에 빠지기도 하고, 자고 일어난 뒤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맑은 머리를 좋은 것으로 채우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가끔 잠을 설치고 뒤숭숭하게 어지러웠던 머리가 정리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DJ는 목소리로 만나는 사람이고, 방송 시간대가 워낙 이르다 보니 그의 목소리에서 그날그날의 컨디션이 느껴지는 거다. 특히 방송이 시작되는 초반 부에는 굉장히 피곤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대중교통 안에서나 도로 위에서 만나는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피로감 같은 느낌이랄까. 왠지 모를 동질감과 짠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7시 방송을 시작하기 위해 DJ와 스태프들은 몇 시에 일어나서, 언제 머리를 감고, 몇 시에 집을 출발해서 방송국에 도착한 것일까. 그들도 몸이 무거운 어느 아침엔 늦잠이란 걸 자버리기도 하겠지? 분위기 있게 멘트를 읊는 DJ가 실은 새집 머리를 해서 헐레벌떡 방송 시작 직전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혼자 싱긋 웃어보기도 한다.


방송국의 보이지 않는 광경을 떠올려보며, 과거의 추억으로 옮겨간다.

20대 초반의 나는 드라마 피디가 되고 싶었다. 다른 어떤 일로도 밤을 새 본 적이 없는 내가 드라마 때문에 해가 뜰 때까지 말똥 하게 깨어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잘 만들어진 영상과 스토리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강력하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기 때문일까. 내가 만든 이야기와 연출한 영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몰래 움직이고,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조용한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이루기 어려운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젊음을 핑계 삼아 그저 꾸고 싶은 꿈이었다. 언론고시를 하겠다며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스터디도 하면서, 언젠가는 방송국에 입성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가득 찬 날들이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일을 하고 있던 친언니의 소개로, 방송국에서 한 두 달 정도 (무급)인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자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언니가 CP님들이랑 관계를 수더분하게 잘했던지 어린애 한 명 정도 비집고 제작환경을 구경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셨던 것 같다. 라디오 1달, TV 1달, 한 겨울 1월 중순에 시작된 나의 방송국 인턴 생활 중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 날의 기억. 2012년의 내 생일이다.


방송국에 간 첫날, CP님은 학교 후배라며 나를 반가워하시더니, 라디오 프로그램을 1,2주 정도씩 돌아가면서 견학할 수 있도록 각 프로그램의 PD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붙여주었다. 나는 건너 건너의 간접적 친분을 명분 삼아, 외부인도 내부인도 아닌 어정쩡하고 쑥스러운 모습으로 출근을 했다. 눈이 많이 내리던 추운 계절이었다. 아무것도 요구되는 일도, 하는 일도 거의 없었지만, 아무도 안 먹이는 눈칫밥에 배부르다고 뭔가 해야 될 것 같고 괜히 쫄아있기도 했다. 막내작가를 도와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거나 출연자들을 안내하는 등 소소한 일을 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방송하는 모습을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 정도가 다였는 데도 말이다.


이런 나를 가장 편안하게 대해주었던 프로그램이 바로 그날의 추억이 담긴 9-11시의 아침방송의 스탭과 DJ였다. 우연히도, 메인 작가님 이름과 내 이름이 같아서 모두가 이 사소한 우연을 반가워했고, 누군가 작가님 이름을 부르면 나는 본능적으로 깜짝깜짝 놀라곤 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가 부스 안 DJ와 모니터에 떠 있는 메모장으로 소통하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실시간으로 문자 메시지 사연을 바로바로 전달하는 모습도 직접 보게 되니 신기했다. 나는 보통 사연에 잘 당첨이 되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 날만큼은 왠지 특별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용기를 내서, (PD와 작가 바로 옆에서) 문자 메시지 사연을 보냈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이번 해에는 어느 때보다 더 특별한 생일을 보내게 되어서 기쁘네요. 오늘 아저씨(DJ 호칭)가 축하해주시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작가님이 알아챘는지 모르는지는 몰라도 그 사연을 소개 목록에 넣어주었다. DJ 아저씨는 처음에 그게 나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광고가 나가는 동안 그 사연의 주인공이 나임이 밝혀지고, 대놓고 요청한 것 같이 축하 인사를 받게 되었다. 아저씨는 갈색 종이 커피 슬리브 위에 축하 편지를 써주셨다. 내용은 그냥 말인지 뭔지 모르는 아무렇게나 끼적인 문장이었지만 대충 축하한다는 뜻 같았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11시에 방송이 끝나면 보통 다 같이 점심을 먹고 PD, 작가들은 그다음 날 방송을 준비하거나 오후 업무를 보는 일과였고, 나는 할 일이 없으니 바로 퇴근을 했다. 그들은 자주 말했다. 라디오 PD 같은 꿀 직업이 없다고, 업무 강도가 센 게 아니다 보니 라디오 PD들은 성격들이 다 여유롭고 좋은 편이라고. 일주일 정도 함께 해보니 그 말이 약간 이해가 갔다. 그날도 평소처럼 방송국 근처에서 모두 함께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려는데 아저씨가 다른 스태프들은 먼저 보내고 나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선물을 사주시겠다고 했다.

"어, 네? 어 , 아니에요 아니에요!"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뭔갈 이분한테 받아도 되나?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아저씨는 나를 끌고(?) 근처 미샤 매장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종업원들도 놀란 눈치였다. 연예인이 어떤 여자애를 데리고 들어와서는, 선물 고르는 걸 기다리고 지켜보고 있으니. 정말 웃긴 게 아저씨도 이런 일을 자주 해본 것 같지는 않았다. 화장품은 0.1도 모르는지 고민하는 시선이 이리저리로 튀는 게 느껴졌다. 근데 나도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가 않아서, 당황스러워하면서 쭈뼛거리고 있자, 아저씨는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포장된 상태로 디스플레이된 제품을 시크한 척 골라서 계산대로 가셨다. 계산하는 직원을 마주한 아저씨와 나. 여러모로 많은 물음표가 떠다니고 있는 매장이었다. 더 웃긴 건,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한 사람에게 주는 사은품을 그 금액만큼 사지도 않은 아저씨가 달라고 졸라 매장 직원으로부터 받아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저씨는 집에 가는 나에게 쿨하게 인사를 건네고 가셨다. 나는 아저씨가 너무 따듯하고 어색해서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 프로그램과 살갑게 나를 대해 주시는 아저씨가 꽤 좋았던 것 같다. 매주 목요일이면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젊은 후배 가수들이 부스 안에서 생 라이브를 하곤 했다. 나는 보이는 라디오 카메라를 확인하는 역할로 부스 안에 앉아, 눈 앞에서 그들의 모습과 소리를 두 눈과 두 귀에 가득 담을 수 있었다. 다른 세상에 숨어 귀한 걸 엿보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는 예술가였다. 방송 중간에 광고 음악을 따라 기타를 치기도 하시고, 재치 있는 낙서도 자주 하셨다. 아저씨는 술을 매우 좋아하셨는데, 자주 숙취가 가득한 상태로 방송을 시작하셨고 광고 음악이 나올 때 부스 밖 소파에 누워계시기도 하셨다. (앗, 이런 걸 실토해도 되는 걸까? 갑자기 조금 걱정이 된다.) 가장 인상에 남은 건, 아저씨는 항상 출근하셔서 오프닝 멘트를 직접 작성하셨다는 거다. 메인 작가가 있는데도. 매일, 항상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하루는 아저씨가 공익 캠페인 같은 프로그램의 내레이션 녹음이 있는 날이었고, 나는 또 할 일 없는 사람이니까 스튜디오에 따라갔다. 아저씨가 대본을 잘 볼 수 있게 준비해드리고, 함께 앉아 아저씨 목소리를 듣는 역할(?)이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물었다.

"왜 드라마 PD가 되고 싶어? 연예인 보고 싶어서 그래?"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저는 드라마가 너무 좋아요."

"영화 뭐 재밌게 본 게 있어?"

"... 영화요?..."


그때 나는 영상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고, 영화 같은 영상 콘텐츠를 많이 보고 자란 배경도 아니었기에 자신 있게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 인상 깊게 본 영화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잘 준비해둬야겠다고 그때 속으로 다짐했다.


"드라마 PD, 너무 힘들어. PD 말고 작가를 해보면 어때?"

지금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지만, 나는 이 말이 아저씨가 나의 역량이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 거라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작가는 싫고 드라마 PD를 하고 싶다고 고집스러운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아저씨는 왜 나한테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그냥 철없이 방송일을 선망하는 눈앞의 어린 사람이 걱정되어 보였을까? 아니면 진심 어린 조언이었을까? 아저씨는 정말 내가 PD가 될 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결국 나는 드라마 PD가 되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될 리는 없을 것 같다. 근데 이야기가 담긴 글은 지금 이렇게 쓰게 되었다. 아저씨 말이 옳았을까.


실낱 같이 가느다랗게 닿았던 인연이 때로는 가장 마음속 깊은 곳에 남기도 한다. 아저씨는 사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소탈하고, 편안한 사람이었다. 연예인 같지 않았지만, 또 그 점이 가장 연예인스럽게 느껴졌다. 아마도 아저씨는 나를 기억도 못할 것 같지만, 나는 그에게 수많은 수진이들 중 한 명으로 스쳐 지나갔겠지만.

눈이 펑펑 왔던 그 추웠던 겨울, 김창완 아저씨가 남겨준 그 추억 하나가 같은 계절의 나를 웃음 짓게 해 준다. 참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그럴 만한 사이는 아니어서 아쉽다.

아저씨 소식을 기사로 찾아보니, 최근에 앨범을 내셨다는데, 음악이 역시 아저씨답다. 멋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Dks9-Y9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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