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도 줄 서는 가게들

커피 한 잔, 케익 한 조각, 빵 하나를 위한 간절한 기다림

by 언디 UnD

연말 연초 날씨가 참 추웠다. 어제는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동네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운전으로 오고 가는 차 안에서도 손 발이 시릴 정도였다. 일을 보고 돌아오는데, 근처에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가 있다는 게 떠올라 즉흥적으로 네비를 찍고 향하게 되었다. 으슬으슬하게 도는 한기에 헤이즐넛 시럽이 들어간 라떼 한 잔이면 몸에 따듯한 기운이 돌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평소 잘 가던 곳은 아니어서 미리 머릿속으로 입구의 위치를 더듬어가며 내비의 남은 거리를 보는데, 당황스럽게도 입구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 어 하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매장 코앞까지 와버렸고, 별수 없이 급히 차선을 변경했다. 기껏해야 한두 차 정도 앞서버렸나 해서 비상 깜빡이를 켜고 미안함을 표시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정리 모자를 쓴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창문을 두드린다.

"저기요, 지금 여기 뒤에 차들 스타벅스 가려고 내내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 뒤에 보세요."

말을 듣고 돌아보니 감히 스벅 대기줄이라고 생각지 못한 정도로 차가 100m 정도 이어져 있었고, 나는 그 도로 위 차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쏙 끼어든 얌체가 되고 만 것이었다. 헉. 이럴 수가! 스벅이 뭐길래.

"아 제가 미처 몰랐네요"

아저씨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이, 잔소리처럼 "자 여기 앞에서 빙 돌아서~" 라며 다시 그 대기줄로 들어오는 방법을 설명해주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커피를 안 마셔도 될 것 같아 "아 아니에요. 그냥 저 나갈게요"하며 황급히 개미지옥의 머리 부분에서 빠져나왔다.

생각해보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싯적에 맛집 찾아 이곳저곳 찾아다닐 때에도 거의 하지 않았던 '줄 서기'를 최근에 세 번이나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말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케익집, 그리고 몇 년 전 즐겨가던 카페가 새로운 체인점을 냈다고 해서 가본 그곳까지.


케익집에 갔을 땐 사실 더 놀랐던 기억이다. 첫 방문 때는 이미 마감이 되어 케익을 사지 못했기에 두 번째 방문은 일찌감치 오픈보다 20분 정도 이르게 도착해 있었다. 나도 나름 근성이 있는 빵쟁이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가게 오픈 20분 전,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찬바람이 쌩쌩부는 그 언덕길에 말없이 줄 서 있었다. 왠지 모를 패배감에 나도 할 말을 잃었고.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던데, 불황을 모르는 가게가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30분간을 더 기다려, 원래 두 조각만 사려던 케익을 종류별로 하나씩 사들고 나왔다. 다시는 못, 아니 안 올 것 같아서. 하지만 나의 빠른 포기와는 상관없이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오픈 2시간도 되지 않아 매진되었다는 인스타 공지글은 이어졌다. 크리스마스용으로 제작되는 32000원짜리 조각 케익 4개 세트는 1시간도 되지 않아 예약이 마감되었단다. 320만 원을 이틀, 아니 몇 시간 만에 벌어들이는 대단함에 감탄했다.


그다음 언급한 카페를 갔을 때에도 상황이 엇비슷했다. 내가 들어갈 때만 해도 한산하던 카페가 이내 포장 손님과 쿠팡 이츠 배달 아저씨들로 가득 차는 기염을 토했다. 나는 쫓겨나듯 포장된 물건을 들고 급하게 그곳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사람들이 집밥만 먹다 보니 입맛이 물려서 뭔가 군것질거리가 당기나?'

그 카페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꽤 활발하게 관리되는 편인데,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오픈을 하자마자 배달 주문이 10개가 밀려들어왔다는 둥, 모든 제품이 솔드아웃되었다는 둥 사장님의 행복한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코로나는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지만 또 누군가에겐 기회인 게 분명하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들마다의 경쟁은 더 심해지고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사가 잘 되는 곳은 원래 맛도 있는 가게일 테지만, 명백히 코로나가 제시하는 새로운 환경과 시스템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반응할 수 있는 조건의 가게들만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시장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좁은 경쟁의 문은 소비자를 더 안달 나게 하고, 어쩌면 대체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하게 되어 독점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도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상태로, KBS에서 방영하는 '코로노믹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전 세계 각 국의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경제적/사회적 실상을 보여주고 그 해법을 고민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떤 나라, 특정 계층의 사람들은 아예 마스크조차 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일거리를 잃고 집세를 내지 못해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무료 급식처를 찾아가고 식품 무료 나눔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 코로나를 기회로 특정 글로벌 기업의 주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산을 하루아침에 1.5배 2배씩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하루에 500개 이상 택배를 나르면서 과로사의 두려움에 떠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비행기 객실 내부를 청소하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길거리로 내몰린 아주머니가 있었다. 달콤한 것을 기다리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하찮은 기다림이었다.

그들도 길 위에 서서, 길 위를 뛰어다니며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고 있다. 내게 주어진 노동시간이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선에서 끝나기를.

이 코로나의 불행이 끝나기를.


실제 상황은 진짜라서 할 말을 잃게 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본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글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글재주의 한계를 느낀다.


부디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조금 더 돌아보고, 기다릴 만한 가치 있는 것을 바라고, 기다림에 합당한 삶을 맞아들이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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