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하고, 자주 잊어버리는 다짐
20대 후반 정도이던 어느 날. 가까운 친구 같은 이의 죽음을 처음 경험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지인이긴 했지만, 마흔이 채 되지 않은 꽤 젊은 나이였다. 사망 원인은 간밤의 심장 마비.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이해되지 않는 죽음의 이유. 박사 학위가 있었고, 내가 아는 한 정말 열심히 살던 사람이었고, 다른 이들을 도와주기를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사랑하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직업이었던 남자였다. 아마도 그는 그 전날 학교 일을 너무 열심히 했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과로로 피로가 쌓여 몸이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또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를 상상하든, 그게 무엇이든 이 세상에서의 그의 현존은 갑자기 불이 꺼진 방처럼 빛이 사라져 있었다. 풍경이 아름답고, 햇빛이 따스한 날이었다.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그가 호흡하지 않게 된 것 이외에는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는 이상하게 태연한 시간이었다. 그를 알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를 모른다고 고개를 돌려버린 것 같은 서운함이 내게 서렸다. 눈물이 구멍에 가득 찼다.
왜 지난 몇 달, 어쩌면 1년이 넘을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나는 그에게 그 쉬운 카톡 메시지 하나 보내지 않았을까. 안부 묻지 않았을까. 그를 추모할 수 있는 방법은 별 다른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추억을 하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가 남긴 트위터를 뒤적거리며, 시시껄렁하게 나눈 대화들과 나에게 베푼 친절한 농담 몇 마디를 곱씹고, 대화를 캡춰해서 저장하는 것뿐이었다. 이젠 새롭게 생성되지 않을 텍스트와 바이트 수십 개들. 그것을 외장하드 깊숙이 집어넣으며, 나는 어찌할지 모르는 감정도 마음 구석 안쪽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이내 부들부들 떨었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면서, 가까이 도처에 깔려 있는 죽음이 느껴져서,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게 뭔지 모르는데도 무서워하는 나 자신의 나약함이 두렵게 느껴져서.
신은 왜 다른 존재의 죽음을 보는 일을 허락할까. 죽음을 늘 까먹지 말라고. 죽음이 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지표라고 장엄하게 빗대어 말해주는 걸까. 지금까지 어느 누구의 역사든 이렇게 흘러왔고, 너도 저렇게 될 거고, 주변 모든 사람도 맞이할 그것이기에 일상적인 죽음을 언제이든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뜻일까. 다른 사람의 죽음을 목격할 때 인간은 유일히 겸손해지고, 힘이 빠진다. 평소에는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있지.
비슷한 맥락에서 스스로가 (깊은, 혹은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알았을 때 유사한 인식 체계가 발동되는 것 같다. 죽음을 기억하라. 아프다는 건, 병을 진단받는다는 것은, 마치 죽음의 예고편을 건네받는 기분이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보다도, 그것이 주는 직접적인 고통 때문보다도, 그게 죽음이라는 끝과 종이 한 장으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의 상상력은 무섭다. 별 거 아닌데, 싶다가도 내가 지금까지 붙들어온 세계가 통째로 뒤집히고 흔들리는 기분이 몰아닥친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놀라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렇게 되겠지. 인생의 죽음과 죽음의 징후들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면서 그걸 배워왔고, 앞으로는 더 절실히 배우게 될 거다. 하지만, 죽음은 나눠가질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것일 텐데, 인간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그것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해결 불가능한, 받아들여야만 하는 가장 유일의 궁극적인 지점. 회피하거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근데 둘 다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나는 죽음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서 알람이 울린다. 이 척척한 기분과 불쾌한 절망감은 나에게 더 살라고 알려주는 신호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제는 나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보고 마음의 진정함이 원하는 곳으로 조금씩 옮겨가라는 뜻이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마무리 짓고 싶은지,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자문해봐야 되겠지만, 신이 준 인지력보다 더 큰 망각과 무뎌짐이 질문을 삼켜버린다.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다짐했던 모든 것들은 이내 일상의 감각들로 덮여버린다. 구원을 소망하지조차 못하게 되는 '그냥적인 삶'이 죽음보다 더 추악하고 고통스러운 것일진대, 나는 죽음에 무뎌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더 민감하고, 더 생명력 있게 죽음에 반응해야 할 것이다. 생명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그 시간을 껴안고, 아프게 사랑 해갈 수 있는 힘을 낼 정도로는 살아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