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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시간의 경계에서

by bigbird

첫눈, 시간의 경계에서

​우리는 유독 '첫 번째'를 소중히 여긴다. 첫사랑, 첫키스처럼, 그 시작점에는 언제나 특별한 의미와 순수한 떨림이 담겨 있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눈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내리는 첫눈은 우리에게 단순한 기상 현상을 넘어 하나의 이벤트, 하나의 낭만으로 다가온다.
​젊은 시절의 첫눈은 연인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았다.
온 세상이 새하얗게 덮이는 그 순간, 가장 먼저 사랑하는 이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지금, 눈 와. 첫눈이야."

그 짧은 한 마디에는 세상의 모든 낭만과 설렘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 눈이 얼마나 내리든, 그 눈의 무게는 오직 사랑의 설렘만큼 가벼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음의 감정이 메마르고 일상의 무게에 지쳐버렸다.
눈이 오면 아름다움보다 교통 체증과 미끄러운 출퇴근길이 먼저 걱정되는 현실적인 어른이 되었다. 순수했던 감탄 대신 한숨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제는 그저 무덤덤하게 창밖을 바라볼 뿐이다.
공원에서 아이들이 환호하며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을, 혹은 귓불이 빨개진 젊은 남녀가 통화하며 설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랬었지.

나도 한때는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은 채, 꼬리 흔들며 눈을 반기던 어린 누렁이처럼 순수하게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어,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그 찰나에 황급히 전화를 걸곤 했었지.

​지금, 그 설렘은 추억이라는 따뜻한 액자가 되어 내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다.
변한 것은 눈이 아니라, 그 눈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무게였음을 깨닫는다.

그랬었구나,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그리고 잠시나마 그 따뜻한 시절의 나를 그리워해 본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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