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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Dec 30. 2021

당일치기 혼자 목포여행(1)


회사를 가는 평일이었으면 일곱 시에도 겨우 일어났을 테지만, 일요일이라 다섯 시 이십 분에도 번쩍 눈이 떠졌다. 놀러 간다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월요일에 휴가를 내고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월요일 밤늦게 귀가해서 다음 날 출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왔다. 일요일로 하루를 당겼다. 강릉을 갈까 하다가 최근에 스쳐서 다녀오기도 했고 거긴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목포로 행선지도 바꾸었다. 꼭 목포여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대학교수로 있는 선배가 최소한 뭘 먹어야 될지를 알려줄 것 같아서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형도 만날 수 있었겠지만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 몇 군데를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딱히 뭘 보자고 간 것은 아니었다. 목포 하면 떠오르는 곳은 유달산 말고는 없지 않은가. 물론 목포를 둘러싼 수많은 섬들이 있지만 당일치기 여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곳이다. 목포 시내로 일정을 한정해야 해서 예약을 하면 1천 원이 할인되는 해상케이블카 표만 미리 사두었다. 혼자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의 목적은 그냥 떠나는 것이다. 잠시지만 서울을 벗어나기만 해도 현실감은 훅 떨어진다. 서울 바깥도 누군가 현실에 발 딛고 사는 곳이지만 서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지방 도시의 풍경은 서울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겐 색다르다. 그러니 기차든 버스든 비행기든 뭐든 잡아타고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어느 도시 기차역 앞 카페에서 하루 종일 있다고 오는 말도 안 되는 돈 낭비를 하더라도 시간 낭비로는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잠을 자지 않는 하루짜리 여행이라 짐은 간소하다. 카메라(삼각대는 생략), 노트, 필기구, 키보드를 가방에 되는 대로 쑤셔 넣었다. 기차 시간에 거의 맞춰서 집을 나와서 버스정류장 근처에 왔는데 보조배터리와 충전기를 모두 안 챙겨 온 걸 알게 되었다. 둘 중 하나라도 있었으면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거다. 핸드폰에 기운을 불어넣는 배터리의 부재는 단절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걸 챙기러 집으로 돌아간다면 용산에서 출발하는 목포행 KTX를 제 때 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잠시 산수를 해보았다. 배터리가 부족하게 되면 당장 KTX 승차권을 보여줄 수 없고 여행지에서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카드 대용으로 쓰지도 못하게 된다. 다행히 100% 충전을 했으니 그걸로 버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배터리를 양보했다. 대신 불안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기로 했다.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습관적으로 열어보는 것만 줄여도 큰 문제가 생길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이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을 가시지 않았다. 조마조마하며 자제하는 수밖에. 여전히 95% 이상 남은 배터리를 보면서도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면 안 그런 척 해도 핸드폰에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단절이었다. 그 공포를 이겨내기보다 핸드폰을 통한 연결을 연장하기 위해 자제를 선택했다. 취약하고 어리석은 인간.


차가운 새벽 공기를 밀어내며 쇠로 만든 매끈한 물체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일요일 새벽시간에 기차를 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내 공기는 잠들기 딱 좋은 온도로 순환되고 있었다.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의 리듬이 달라지며 역에 정차할 때 선잠을 깼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들판에 가득했다. 전라도의 너른 평야 어디쯤을 달릴 때는 지평선에 저절로 가슴이 후련했다. 달리는 방향 왼쪽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해는 눈부셨다. 기차는 타기만 해도 기분이 묘해지는 교통수단이다. 목적지가 어디든 객차에 앉아 바퀴가 내는 박자에 몸을 맡기는 순간 누구든 낭만적인 여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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