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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an 12. 2022

당일치기 혼자 제천여행(1)

지방도시 여행하며 잘 놀기

나이가 들고 남의 일처럼 느꼈던 은퇴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면 경제적으로 노후 대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노는 연습을 하는 것도 차고 넘칠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런 연습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올해는 여행하고 글을 쓰기로 했다. 여행에는 네 가지 조건이 붙어 있는데, '혼자서', '하루 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지방 소도시'를 다녀온 경험을 글로 남길 작정이다. 적게는 10개, 많게는 20개 정도의 도시를 생각하고 있다. 운 좋으면 책도 낼 수 있기를 기대하며.(출판업 하시는 분들 연락 주시라, 열심히 해 볼게요).



제천의 인구는 14만 남짓. 시내 인구는 10만 정도. 그 나머지는 면 단위 시골에 흩어져 살고 있다. 제천하면 떠오르는 것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의림지. 청풍명월 호반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그나마도 충주, 단양과 나눠 쓰고 있다. 근래에 케이블카와 옥순봉 출렁다리가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행정구역상 제천 소속인(!) 옥순봉은 단양 8경에도 속해 있어 니 꺼다 내 꺼다 하는 소동도 있다.



대개 지방 지자체 이름 뒤에는 성주의 참외, 충주의 사과, 영동의 포도, 해남의 고구마와 같이 특산물 하나씩 붙기 마련인데 제천은 그런 게 없다. 원주와 단양 사이에 끼어 있는 무채색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북에서도 제일 북쪽에 있는 도시다 보니 사투리는 거의 강원도에 가깝고 서울의 1.5배 되는 면적의 74%는 산지이라고 한다. 충북의 최남단인 영동은 경북 김천과 전북 무주를 접하고 있으니 같은 충북이라도 영동과 제천이 주는 느낌은 이렇게 다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천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여행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여태 태어나서 만난 제천 사람이라고는 대학교 1학년에 기숙사 같은 층에 있던 생물학과 동기가 유일했다. 제천은 미지의 도시였고 그래서 궁금증을 자극했다. 무채색의 존재감 낮은(제천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방 소도시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제천을 찾을 일이 없을 것 같다. 지방 소도시 기행 두 번째 도시로 제천이 간택되었다.  



제천으로 가는 가장 쉬운 대중교통은 기차다. 청량리에서 원주를 거쳐 안동, 경주로 가는 중앙선의 길목에 제천이 있다. 태백선의 기점이기도 한 제천은 KTX 이음이 개통되면서 청량리에서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요금은 15,400원이다. 두 시간 정도 걸리지만 서두를 일이 없어서 9,200원만 내도 되는 무궁화호를 탔다. 목적지가 목적이 아니라 여정 자체가 목적인 여행에는 느린 기차도 좋다. 일곱시 삼십 오분 기차를 타려니 이제 막 기차에서 내려서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놀리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평일에 휴가를 내고 여행을 하다 보면 그날 하루만큼은 '어머, 출근들 하세요? 저는 놀러 가요.' 하는 마음이 든다. 12시가 지나면 마차가 호박으로 변할 테지만. 



미세 먼지가 심했다. 그 미세 먼지에 엉긴 안개는 더 심했고, 안개에 가려서 윤곽선이 또렷해진 아침 해는 밤새 내린 서리를 녹이지 못했다. 기차는 도심을 벗어나 미세먼지, 안개, 서리가 만든 풍경을 가르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무채색 필터를 씌운 듯한 풍경 가운데를 달리는 기차는 이런 데서 내리면 뭘 타고 어떻게 목적지로 가야할 지 의구심이 들 만큼 휑한 곳에 있는 작은 역에 빠짐없이 정차하며 제천으로 향했다.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종착역 동해까지 가는 승객은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한산한 월요일 아침 객차에서는 모두가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제천역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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