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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an 03. 2022

당일치기 혼자 목포여행(4, 끝)


배도 든든해졌겠다 커피 생각도 나고 해서 추억의 장소인 대반동 해수욕장까지 걸었다. 카페놀이야말로 혼자 여행의 정수 아닌가. 목포대교와 고하도가 다른 각도에서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26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글을 한 편 썼다.


내가 대반동을 어떻게 알았겠어.

목포역에 내려 택시 무작정 잡아 타고 바닷가 아무 데나 가자고 하니까 택시 기사님이 데려다 주신 곳이 대반동 해수욕장이었어.

목포에서는 바닷가 하면 말 그대로 아무 데를 의미할 텐데 우울해 보이는 젊은 녀석이 가면 좋을 것 같은 데를 고르느라 나름 고심했겠지. 그래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이름이 대반동 해수욕장이었어. 그가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어딘지 몰랐을 거야.

그렇게 내려준 해수욕장은 컴컴했어. 26년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분위기는 여태 또렷해. 내 등 뒤의 검은 산은 유달산이었고 검은 바다 건너편 실루엣으로 보였던 섬은 고하도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지.


스물한 살의 사랑은 뜨겁기도 했지만 그만 차가울 때도 많았어. 냉담하기만 하던 그녀를 견디지 못해 대책없이 서울역으로 향했고 아홉 시 몇 분인가에 출발하는 목표행 무궁화를 탔지.

꼭 목포여야 했던 것은 아니었어.

서울에서 제일 먼 곳으로 가서 연락을 끊고 싶었지.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고 생각했으니까.

대전역에서는 우동도 한 그릇 사 먹었던 것 같아.

그렇게 남으로 남으로 달려 새벽에 목표에 도착하니 갈 데가 어딨어? 그래서 택시 탄 거지.

바다 보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 보면 먼 산 보면서 한 숨 쉬는 주인공의 뒷모습 그냥 멋있어 보이잖아.


대반동 해수욕장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어. 목적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게 혈기왕성한 스물한 살이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목포에서 다시 비둘기호를 타고 광주로 가서 해남을 거쳐 배 타고 노화도까지 갔다가 서울로 가는 24시간의 여정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었지. 나의 그 객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이 더 단단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녀가 마누라가 되어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언젠가 한 번쯤은 26년 전 객기의 24시간을 그대로 재현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해.

혼자 당일치기 목포 여행 와서 대반동에 왔더니 해수욕장은 2006년에 폐쇄되었고 손바닥만 한 모래사장만 사람들의 기억을 돕고 있더라.

그 사이 대반동은 유원지가 되었고 목포대교와 해상케이블카가 목포의 새로운 명물이 되어 있더라.


26년 전 어느 새벽에 앉아 있던 그 언저리에 있는 카페에 앉아 달달한 커피 마시며 해바라기 하고 있으니 뜨거웠지만 서툴렀던 나의 20대가 생각나네.

뭐... 40대가 되었어도 여전히 서툴지만...


겨울이라 해가 짧다. 목포에 내려오자 마음먹었을 때 막연한 생각은 근대도시 목포의 흔적을 찾아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노닥거리다 보니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다시 한번 여전히 한산한 1번 버스를 잡아 타고 시내에서 내렸다. 목포근대역사관이 목적지였다. 기분 탓이었을까. 2021년 목포는 1920~30년대 목포보다 더 생기가 없어 보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의 풍경은 이질적인 근대 건축물 몇몇과 함께 영화 세트장 같았다. 거리에 사람은 없었고 관광객마저도 발길이 뜸한 2021년 12월 목포는 짠했다. 근대역사관 1,2에 전시된 목포의 어제가 오늘로 힘겹게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목포뿐 아니라 서울, 수도권이 아니어서 시골로 불리는 대부분의 지방도시가 그럴 것이다. 근대도시 목포는 다음번 방문 때 조금 더 본격적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최소한의 불만 켜진 도시에서 혼자 할 일이 많지 않아 예정보다 빨리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되는 대로 KTX 시간을 당겨서 예약을 변경하고 목포에서 마지막 식사. 동선이 허락하는 곳에 있는 선배 추천 식당을 보니 중화루라는 중국집이 눈에 들어왔다. 목포에서 해장국에 이어 짜장면이라니. 중화루는 목포에서 이름난 노포인데 중깐이라는 짜장면으로 유명한 곳이다. 짜장면이 뭐 특별할 것 있나 싶은데 소면에 가까운 면발과 유니짜장 비슷한 짜장소스가 독특했다. 서울서는 구경해 본 적 없으니 이것도 목포의 별미라면 별미. 남도에 왔으니 다섯 끼 정도는 먹어줘야 했지만, 해장국, 회무침, 짜장면으로도 충분했다.

종착역 목포에서 또 다른 종착역 용산역까지는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깜깜해진 차장 밖은 볼 것이 없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여행의 마무리가 기차라서 특별히 더 좋았다.


[비용]

Ktx 왕복 105,600

케블카 21,000

해장국 10,000

준치회무침 8,000

짜장면 7,000

커피 & 차 12,000

버스 4,200

입장료 2,000


[일정표]

05:30 집

06:31 용산역 KTX

09:01 목포역

09:15 해남해장국(뼈해장국)

10:00 목포해상케이블카(북항-유달산-고하도-유달산-북항)

13:10 선경준치횟집(준치회무침)

13:50 카페 델마르

16:00 목포근대역사관 1,2

16:40 중화루(중깐)

17:10 카페유달역

18:03 목포역 KTX

20:45 용산역

21:30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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