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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an 01. 2022

당일치기 혼자 목포여행(2)


세 시간도 안 돼서 목포역에 도착했다. 깊은 심호흡을 하자 어디선가 바다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목포는 항구 아닌가. 막상 내리고 보니 여행 일정을 구체적으로 짜두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는데 선배가 점지해 준 해장국집이 목포역 바로 앞에 있었고 우선 밥이라도 한 끼 먹으면서 목포에 적응해야 할 것 같았다. 항구의 도시 목포에서 아침부터 뼈해장국이라니. 해남해장국엔 아침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도 자리가 꽉 차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식당 안을 가득 채운 유명인의 사인과 방송 출연을 기념한 사진들이 정신없이 걸려 있었다. 어수선한 가운데 가장 위에 있는 메뉴를 주문했다. 처음 가 보는 식당에서는 항상 메뉴판 제일 위에 있는 걸 주문한다. 돼지뼈해장국. 남도 밥상은 반찬부터 죽여준다는데 해장국집답게 밑반찬은 김치와 깍두기뿐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밖에 안 된다고 투덜거릴 필요가 없을 만큼 두 반찬이 모두 맛의 균형이 탁월했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해장국은 맑은 국물이었다. 뼈가 세 덩이 들어 있었고 채소는 채 썬 파뿐이었다.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뭐 이래? 국물을 맛보는데 심심한 듯하더니 깔끔한 맛이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속이 풀어지다니. 굳이 이 집을 추천해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항구라고 바닷가라고 해산물만 먹지는 않지. 어디서도 먹어 본 적 없는 새로운 맛이지만 기꺼이 다시 찾을 만했다. 그래, 여기는 남도다.

목포역 건너편에서 1번 버스를 타니 목포해상케이블카 북항 스테이션까지 15분 정도 걸렸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버스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고 창밖에 보이는 거리에도 사람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북항-유달산-고하도-유달산-북항으로 돌아오는 케이블카의 왕복 노선은 22,000원. 목포에서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저녁 먹고 올라가는 일정이니까 어느 정도 시간을 때울 일정이 필요했고 케이블카만 한 것이 없었다. 지자체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애를 쓴다. 소멸해가고 있는 지방도시를 살리기 위해 빠지지 않는 아이디어다. 돈이 많이 들긴 하지만 케이블카만큼 도시의 풍경을 한 방에 바꿀 만한 것도 없다. 소중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으로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그 의미와 별개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은 지역민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 누가 더 옳고 누가 그른지를 단칼에 잘라 재단할 수 없다. 세상일이 다 그런 거지. 케이블카로 효과를 거둔 데가 몇 군데 있다. 여수, 통영, 밀양 등등.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객들이 할 거리를 만들어 주었고 그 덕에 사람이 모인다. 발붙이고 사는 사람의 숫자를 늘리는 데는 큰 기여를 못했겠지만 그나마 관광철이라도 도시가 왁자하게 살아나게 했을 것이다. 저 거대한 구조물이 흉물스럽기만 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다른 도시에서 케이블카를 타면서 아쉬웠던 점은 케이블카의 목적지에 딱히 할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케이블카 타는 것 자체와 케이블카에서 보는 풍경에 만족해야 했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그 자체의 체험보다는 유달산이라는 중간 기착지와 고하도라는 목적지에서 즐길 거리들이 있다. 케이블카가 교통수단의 역할도 한다. 유달산에 내려서 정상까지 걸어 올라간다. 왼쪽으로는 목포 앞바다에 총총히 떠 있는 섬들과 목포대교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목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산책도 하고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에 대적할 높이가 없으니 압도적이다.

유달산에서 바다를 발아래 두고 건너편 섬으로 넘어간다. 그 섬의 이름은 고하도. 긴 구간을 케이블로 연결하자니 유달산의 높이만으로 부족했는지 중간에 엄청난 높이의 기둥을 세웠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이 155미터. 그 기둥이 그 자체로 명물이 되었다. 높이가 너무 높으면 현실감이 없어져서 무서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등 뒤의 유달산, 눈앞의 고하도와 겹쳐지며 멀어지는 수많은 섬들, 좌우로 펼쳐진 항구 도시 목포의 전경, 거대한 조선소. 분명 우리나라지만 이국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낯선 풍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낯섦을 찾는 것이 여행이라면 이건 진짜 여행이다. 혼자라서 아깝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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