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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혼자 김제여행(4)

돌과 흙으로 쌓아 만든 호수

by 오궁


여행에서 맛집이 빠질 수는 없지만 혼자 하는 여행, 더구나 대중교통이나 도보를 이용하는 여행이라면 선택의 폭이 좁다. 가능하면 동선에서 골라야 한다. 점심을 먹기로 정한 곳은 벽골제에서 2킬로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있는 고각이라는 중식집이었다. 해물짬뽕이 나름 유명한 집이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2킬로 미터 정도면 걸어서 다녀와도 왕복 1시간 정도니까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몇 시간을 걸어 벽골제에 닿고 보니 고민이 되더라. 오로지 짬뽕 한 그릇 먹자고 한 시간을 걸어야 한다? 더구나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을. 나는 거기서 가까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끼니를 때웠어야 했다. 어쩌면(실제로 그랬지만) 김제에서의 유일한 끼니가 될 수 있는데 계획대로 하자는 마음이 지배했다. 체력적 분수를 헤아리지 못한 결정이었다.


벽골제에서 부량면 소재지에 있는 고각까지 가는 길은 고통스러웠다. 차들이 오가는 큰 길가에 있는 인도로 걷는 시간은 유쾌하지 않았다. 도착하기까지 30분 내내 버스 한 대 지나가지 않았으므로 시골버스를 타보겠다는 생각을 버린 결정을 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발은 아파왔고 어깨는 무거웠다. 어째 바람은 들판길을 걸을 때보다 더 세진 느낌이었다. 춥고 배고픔의 정석이었다. 그래, 결국 기억에 남는 건 고생한 일뿐이지 하면서 걷다가도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고생해서 뭐하나 싶은 마음도 불쑥 솟았다. 이미 시작한 일, 돌이킬 수 없이 계속 걸었더니 드디어 부량면 소재지에 도착. 고각은 면 소재지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 있어서 여러 개 서 있는 표지판을 잘 따라가야 나온다. 이런 데도 식당이 있고 영업이 되는구나 싶은 곳이다. 쾌적한 실내에 자리를 잡고 그제서야 숨을 돌린다. 이 집 짬뽕 먹으려고 김제역에서 여기까지 7~8킬로미터를 걸어왔어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무심한 주인장이 뭐 드실 거냐고 해서 전복홍합짬뽕을 주문했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고 한다. 맛은 우리가 아는 해물짬뽕 맛이다. 맛있는 편이다. 소스가 독특한 탕수육으로 유명한데 혼밥인데 탕수육까지는 무리였다. 들어와서 앉는 손님마다 여기를 누가 다 알아서들 찾아오지 하면서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대화를 나눈다. 그래, 현지인 아니라면 인정!


고통스러웠던 그 길을 되돌아갔다. 속까지 든든하게 채웠지만 체력이라는 것이 그리 쉬 회복되지는 않으니 즐거울 리 없었다. 애초의 계획대로 행하였으니 김제역 앞에서 커피 찾느라 허비한 시간보다는 보람이 있었고 떼까마귀떼의 어마어마한 군무를 멀리서 봤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 택시라도 부를걸. 히치하이킹이라도 해 볼걸. 버스시간이라도 물어볼걸. 차라리 안 갔어야 했나…


벽골제는 지평선과 함께 김제의 상징이다. 사적 제11호인 김제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저수지와 제방을 일컫는 말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30년(백제 비류왕 27년)에 처음 쌓았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중수축 기록이 있다고 한다. 현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은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까지 뻗어 있는 2.5킬로미터의 제방과 수문, 중수비이다. 과거에 저수지였을 벽골제 상류는 지금은 전부 논이다. 전라도와 충청도의 이름이 호남과 호서가 된 것은 벽골제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반계수록의 기록이 있다니 지역을 가를 만큼 큰 호수였을 것이다.


3천 원의 입장료를 내면 벽골제 관광단지에 입장할 수 있다. 벽골제의 제방은 관광단지 밖에서 볼 수 있지만 상징과도 같은 수문 장생거를 보자면 단지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벽골제의 위용을 제대로 보자면 그래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단지 안에 3층 높이의 전망대가 있다. 워낙 탁 트인 곳이라 그 정도 높이에서도 시야는 거칠 것 없이 시원하다. 벽골제는 돌과 흙으로 쌓아 올린 긴 제방이라 그냥 시골서 흔히 보는 천변의 그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망대에 올라 벽골제와 한때 호수였을 지역을 상상하면서 보고 있으면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고 만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한 저 제방 너머에 엄청난 양의 물이 있었다니. 경사가 완만한 곳이니 겨우 몇 미터 높이로 쌓은 둑은 얼마나 넓은 면적의 호수를 만들었을까. 아마 바다처럼 넓었겠지.


평야의 도시답게 벽골제 관광지는 넓고 쾌적하다. 주차장도 무지하게 넓다. 한옥으로 지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좀 뭔가 아쉽다. 건물은 화려하고 세련되게 지었는데 그 속은 어떻게 채워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체험형 프로그램들이 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들인 돈에 비해서는 알맹이나 지역 특성이 없어 보였다. 공원 밖에는 벽골제 관련 예산 더 따게 되었다고 축하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던데 거기다 뭘 더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고민이 많겠지만 한옥으로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속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일이 유행처럼 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다. 그래 건물 예쁘게 잘 지었네, 그런데 거기서 뭐 하지? 그래도 꽃 피는 봄이 와서 들판에 파릇해지고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가을이 되면 여기도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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