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도 비가 많았다.마당 여기저기 퍼런 이끼가끼고축축하게 젖어있다. 여름 내 넣어두었던 제습제엔 물이 가득 차 있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를 쓸고 곰팡이를 닦아내니 온몸이 땀이다.
첫 신혼집은 지하 단칸방이었다.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지상의 방 두 칸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때 이삿짐을 싸며 발견했던 것은 구석구석 빠짐없이 피어있던 곰팡이었다. 싱크대 안쪽과 냉장고 뒤, 장롱 안과 뒤, 가죽재킷과 책장의 뒷면에 까맣고 파란 곰팡이가 빠짐없이 피어 있었다. 우리가 밥 먹고 눕던 그 공간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그 후 곰팡이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특히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면 엉뚱하고 괴로운 상상으로 쿰쿰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에 붙어 있는 것처럼 떠나질 않는다.
현미경으로 본 곰팡이 포자
곰팡이는 없는 곳이 없다. 적정한 기온과 습도만 맞으면 어디든 생긴다. 창고는 물론이고 싱크대 안 쪽, 잘 쓰지 않는 프라이팬, 다용도실 선반 아래, 변기 뒤쪽, 양치컵 아래 움푹 파인 곳, 타일의 줄눈, 책꽂이 뒤, 벽에 닿은 소파의 뒷면, 문 손잡이 볼트가 박힌 홈에하얗고 푸르스름한 포자들이 엉겨있다.
락스에 담가 둔 걸레로 곰팡이를 닦아낸다. 에어컨 모드를 제습에 놓고 군데군데 작은 제습기도 틀어놓고 장롱과 서랍장 안엔 제습제를 넣어둔다. 집안에 떠도는 락스 냄새가 곰팡이를 잡아먹는 것 같아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곧 락스 냄새를 없애려고 공기 청정기를 튼다. 또 다른 강박이다. 곰팡이에 대한 강박이 냄새로 이어지고 나는 에어컨과 공기 청정기에 기대 강박을 달래며 여름 습기를 견디고 곰팡이와 싸운다.가을 한 달 정도를 제외하면 일 년 내 그러는 거 같다.
곰팡이 포자
락스로 닦아낸 곰팡이는 보란 듯이 며칠 후에 또 생긴다. 곰팡이 완벽 차단제 같은 것은 말 뿐이다. 곰팡이는 그 자체로 완벽 차단이 되지 않는다. 여름 장마철뿐만 아니라 안과 밖의 기온차가 심한 한겨울에도 다른 계절에도 곰팡이는 언제든 다시 생긴다. 세제로 닦아내 깨끗해 보인다고 해도 곰팡이의 포자는 숨어있다. 어둡고 폐쇄된 곳은 그 어느 계절을 막론하고 특유의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보이는 곰팡이는 닦아내거나 환경을 제한하는 등 조치를 취하면 되지만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곰팡이는 어쩌나. 은밀하게 나도 모르게 내 안에 피어있을 곰팡이는 어떻게 하나. 정리되지 않은 채 등 돌리고 끊어버린 관계의 기억이 푸르딩딩한 포자를 퍼뜨린 지 오래다. 주기적으로 배달되는 세금고지서처럼 나를 방문하는 우울과 권태가 곰팡이를 꽃피게 한다.미래에 대한두려움과 불안, 지우고 싶은 선명한 기억이 적정한 환경을 제공하며 곰팡이는 번진다. 이 곰팡이는 무엇으로 닦아내야 할까. 내 안이 어두워 책장에 꽂힌 언어들도 공허하다.
*"고모장지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들창문, 이중창문, 덧창문 창이란 창은 모두 열어 환기를 하자. *"암돌져귀 수돌져귀 비목걸새 크나큰 장도리로 뚱딱 바가 가슴에 창을 내" 소리 없이 번지는 포자를 날려버리자. 맹렬한 햇빛 아래 팔을 벌려 빛을 맞아들이자. 따가운 햇빛은 구원이구나. 몸의 솜털이 햇살아래 반짝거린다.시원한 바람이 북쪽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이 곧 들리리라. 두꺼운 외투도 다가올 계절에 덮을 이불도 나도 햇빛과 바람을 쐬며 거풍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