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i Sep 02. 2024

OPEN WATER, 강 수영에 도전하다

색연필 그림일기 2



"자기야, 우리 강 수영 나가자.^^"

"강 수영? 오우~ 그런 걸 왜.... 음.... 글쎄????"

"왜? 싫어?"

"ㄷㄷㄷ 무서워."

"ㅋㅋㅋㅋㅋㅋ 안 무서워. 괜찮아. 자기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어. 60이 넘었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구~"


수영 크루이자 나의 수영 사부인 친구가 강 수영을 제안했다. 수영을 오래 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대회와 오픈 워터 등의 경험이 많은 그녀는 우리 지역의 북한강에서 오픈 워터가 열린다고 했다. *바다와 강, 호수, 수로 등 야외에서 개최되는 장거리 수영 경기를 오픈 워터 스위밍(OPEN WATER SWIMMING)이라고 하는데 보통은 오픈 워터라고 한다. 야외의 자연환경에서 치러지므로 수영 기술뿐 아니라 경기 중 발생하는 기상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 등이 요구된다. 모든 영법이 가능하나 통상 자유형으로 치러지며 5, 10, 15km의 마라톤 수영이다. 2008년 29회 베이징 올림픽에서 정식 수영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광주 세계 수영 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선 북한강 리버마켓이라는 프리마켓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번 강수영은 프리마켓의 다양한 체험행사의 하나로 처음 실시되는 거라고 했다. 기록을 겨루는 대회는 아니지만 1.5km의 거리를 완주해야 하는 수영이다. 미사리 경정장이나 여주 이천보 등에서 오픈 워터 스위밍이 열리곤 했지만 북한강에서 열리는 건 처음이란다. 수상 스키나 보드 등을 타는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는 것이다. 자동차로 오고 가며 바라보던 강물 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다니....


나는 겁이 많다. 언젠가 시골의 개울에 놀러 갔다가 커다란 바위 아래로 미끄러진 적이 있다. 개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깊이가 깊었고 바닥에 발이 닿지 않자 큰 공포를 느꼈다. 그런 경험은 두어 번 더 있었고 바닥이 닿지 않는 물은 무섭다. 체력도 자신이 없다. 그동안 수영을 매일 해 왔어도 1.5 ~ 2km 내외(50m 기준 30~40바퀴) 넘지 않았고 그것도 실내 수영장에 국한된 기록이었다. 이런 얄팍한 지구력과 경험이 전무한 내가 오픈 워터라니, 그것도 북한강에서.... 강에선 수상스키나 바나나 보트를 타는 거 아닌감? 앞도 보이지 않고 발은 당연히 닿지 않을 텐데.... 게다가 나는 60이 넘었다구.... 컴컴했던 물속이 자꾸 생각나서 겨드랑이 아래 오소소한 소름이 돋았다.


친구는 "해 보지 않을래?"의 권유로 시작해 "해 보자"의 청유를 주입하더니 결국 "신청한다"며 통보를 했다. 6명의 수영 회원들이 함께 가기로 뜻을 모으는 사이 '강 수영? 까짓 꺼~' 하는 마음이 생겼고 오픈 워터 대비 헤드 업 훈련을 했다.


8월의 끝자락, 햇살이 쨍쨍한 행사날이 되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깬 나는 공연히 마당의 풀을 뽑으며 콩닥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뭐라도 좀 먹으려고 했으나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공연히 찬물만 들이켰다. 미리 수영복을 입고 안전풀부이를 비롯한 준비물을 챙겨 나섰으나 오리발을 두고 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등 평소와 달리 허둥댔다. 첼로 연주를 듣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한 사람처럼 강에 들어가기도 전에 두려움 속으로 가라앉았다.


1시가 되어가자 우리는 다소 비장한 마음으로 선크림을 발랐다. 뜨거운 햇빛 때문이었을까? 모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전신 수영복을 입은 40대의 어린 친구가 소변이 마렵다고 하자 우리는 강에 들어가라며 낄낄거렸다. 그런데 당초 계획된 거리보다 단축된 거리를 수영한다고 했다. 처음의 1.5km가 1km로 줄더니 출발 직전엔 500m라고 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장난해?" "전신 수영복 샀다구!" 하며 호기롭게 떠들었지만 내심으론 '어쿠, 다행이야.' 했다. 주최 측의 경험부족으로 군과의 협의가 잘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참가 명단에 사인을 하고 번호표를 받아 풀부이에 부착을 하자 곧 출발한다는 안내가 들렸다. 응원차 와 준 선배 언니가 사진을 찍어주었고 출발하라는 소리와 함께 물에 뛰어들었다. 반환점이자 목표인 노란 부표는 저 멀리 보이는데 수초가 다리를 휘감았다. 놀라서 물속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름이 돋았다. 안전부이를 잡고 발차기로 수초지대를 벗어나면서 팔을 뻗어 수영하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갈 땐 따뜻했는데 강 중심을 향해 나갈수록 물은 시원했다. 그러나  앞에 가는 사람의 오리발을 보고 가라고 했는데 오리발은커녕 앞으로 뻗은 내 손조차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담그고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물속은 너무 어두웠다. 예상은 했지만 실내수영장과 전혀 다른 물이었다. 낭패감이 들면서 덜컥 겁이 났다. 설상가상 몸에 힘이 들어가니 가라앉았다. 수영인들이 평소 하는 말 중에 '힘들  힘을 빼라'는 말이 있다. 허리에 매단 안전풀부이를 확인하고 몸의 힘을 뺐다. 몸이 편해져서 주변을 돌아보니 언제 다가왔는지 강 수영을 권유한 그녀가 웃으며 "너무 좋아!" 하고 소리 질렀다. 또 다른 친구 역시 내 오른쪽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들을 보니 겁이 사라졌다. 나는 살짝 머리를 들고 찰랑거리는 수면에 비친 희뿌연 햇살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북한강에서


다행히 강물은 얌전히 흘렀고 바람은 살살 불어주었다. 물에 들어오면서부터 나를 살펴주던 친구가 옆으로 와서 "누워서 하늘을 봐!" 하고 말했다. 강에 누워 본 하늘은 높고 맑았다. 섬 같은 구름이 나를 내려다보고 강물은 뺨에 닿았다. 앞서가는 친구의 오리발이 희미하게 보였고 그 오리발을 보며 수영을 하다 보니 노란 부표가 다가왔다. 비로소 호흡이 안정되었고 물살이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물은 찰박거리며 내 몸에 흘러넘쳤고 나는 전완근이 가득 차도록 강물을 잡아 밀어내고 또 밀어냈다. 친구가 "다 왔어!"라고 했다. 머리를 드니 출발지에 서 있는 사람들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다리에 감기는 수초를 떼어내며 일어서는데 살짝 어지러웠다. 나중에 들으니 몸을 일으키면서 피돌기가 다리 쪽으로 내려가느라 어지러운 거라고 했다. 평소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오리발을 벗는데 누군가 "멋지다!"하고 소리 질렀다. 수영을 끝낸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출렁거리는 물결에 반사된 햇살이 얼굴에 어른거렸다. 500m든 1.5km든 중요하지 않았다.


"수영의 기술은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순도에 달려있다. 그 일에 집중하면 할수록 다른 일은 안중에도 없어진다. 더는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고 지금 하는 일 그 자체가 된다.(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중에서)"


새롭게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낯선 경험을 하게 되면 나는 스스로의 실존을 확인받곤 한다. 놀랍게도 내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 존재를 잊지 말라는 듯 집요하게 이르잡는 어떤 실체가 내게 확인을 거듭해 주기에 확인받는다고 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삶의 의미라고 여긴다. 강물 속에서도 그랬다. 사람들은 비가 내린 뒤가 아니라서 강물이 맑다고 했고 내가 보기에도 맑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발 또한 바닥에 닿지 않았다. 강물은 맑은 것이 아니라 깊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 발이 닿지 않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강은 두려운 거다. 내 존재의 심연과 삶의 불확실성이 강과 닮았다고 느꼈다.


강에서의 수영 실존의 모습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고 던져진 삶은 자주 잔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야 했고 발밑의 아득함만 느껴지는 불확실함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아왔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두려웠던 것보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어서 무서웠다. 자주 포기하고 싶었고 고단했다. 그런데 가장 깊은 강 중심으로 나아갈수록 두려움은 어느덧 익숙해졌고 강물은 시원했고 햇살이 강물 아래를 비추며 밝혀주는 것이 보였다. 물 위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노란 부표로 인도해 주는 앞사람의 희미한 오리발은 내 삶의 벼랑 끝에서 가끔 만났던 그 무엇이었다.


누군가 물었다. 강에서 굳이 왜 수영을 하느냐고. 그런 걸 왜 하냐고. 삶에는 작은 순간들이 있고 그 안에는 반짝이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우리가 몰입하는 어떤 순간에 달려있다. 그 순간에 나는 '순도 높은' 희열을 맛본다. 이 희열은 철없는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고 내가 반짝이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남루한 것은 나의 타성과 편견이지 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모든 것을 원하면서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한다. "그 일에 집중하면 할수록.... 더는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고 지금 하는 일 그 자체가" 되는 경지로 뛰어오르게 한다. 심연 속에서 새로운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은 생이 끝날 때까지 반복되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또 다른 차원으로 진화할 것이다.


500m라는 짧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들에게선 강물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또 한 번 스스로를 넘어섰다는 의미이면서 동지애였다. 40대와 50대의 친구들도, 나와 같은 60대의 내 친구들도 모두 스스로를 넘어섰다. 스스로 넘어선 자는 모름지기 생맥주를 마실 자격이 있다. 우리는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친 후 프리마켓으로 몰려가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마셨다. 응원차 오신 선배 언니가 김치전과 떡볶이를 사 주시며 본인이 한 것보다 더 자랑스러워해 주었다. 서로에 대한 아무런 판단 없이 서로 웃고 격려했다. 이 또한 순도 100%의 기쁨이다.


누가 또 물었다. 강수영을 다시 할 거냐고. 오픈 워터의 맛을 알게 해 준 친구는 9월에 무슨 대회가 있다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지만 나는 모른다. 무언가를 시도했고 그만큼의 벽을 넘었. 내가 강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든 안 하든 강물은 도도히 내 안에서 흐르고 있었고 앞으로도 흐를 것이기에, 거친 오픈 워터를 60년도 넘게 해 왔는데 뭘 새삼스레 한다고 할까.... 오픈 워터의 맛을 알게 해 준 친구야, 고마우이~. 이 글을 본 그녀는 내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크~ 저놈의 주둥이, 입만 살아서는 ^^.... "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날 여주의 남한강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지 어떨지....

 

"노라는 수영장을 서른 번 더 왕복했다. 마음이 차분해졌고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오로지 그녀와 물뿐이었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중에서)






* 네이버 백과 사전 참조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